프리덤스쿨 수료 간증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업이 힘들어졌다. 급기야 지난 5월엔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7년 전 사업을 시작하면서 불면증에 생겼다. 평소 예민하기도 했지만, 일의 특성상 연중무휴이고 제때 식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한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술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3~5번은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숙취로 힘들어하면 아내가 술을 못 마시게 할까봐,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데도 태연한 척 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토요일에 술을 마시고, 주일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이 더 그랬다. 그러면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고민했다. 술을 살까말까. 결국 ‘오늘만 사자’하고 술을 사들고 귀가했다.
5월 이후 사업체를 정리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에 이제는 대놓고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다툼은 더 심해지고,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창피했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을 공감해주지 않는 아내가 미웠다. 미운만큼 술을 더 마셨고 좌절했다. 보다 못한 아내는 나에게 프리덤스쿨에 참여해 볼 것을 제안했다. 나는 실패한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업이 망한 것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패배자들이나 가는 곳에 참가해 볼 것을 권유하는 아내가 용납되지 않았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하느냐고 거부했다.
2주차 과정 때였다. ‘거친 파도(세상)에서 능숙하게 파도 타는 서퍼의 모습’, ‘강하고 담대함,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상상하라고 했다.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지난날의 고민이 일시에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내 맘속에서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탄식이 나왔다. 진정 내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일까, 마지막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충실히 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음주습관은 여전했다. 과정 6주차 나눔 시간이었다. 나는 뭔지 모를 내면의 덩어리가 터져 나와 소리 내어 울었다. 어릴 때 말고는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조원들이 내 등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었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사탄의 손목을 자르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맞선다.”
조원들과 내가 통성으로 기도했다. 내 등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고, 내 속으로 화끈한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기도해주던 조원들의 손바닥이 십자가가 되어 내 등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 날 이후 정말 신기하게도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업실패에 대한 자책과 타인에 대한 원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놀라면서도 걱정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프리덤스쿨을 통해 묵상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큐티와 기도로 하루를 열고, 말씀을 생활화하게 되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 33:3). 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있다. 지금 내 일상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은혜로워졌다. 앞으로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프리덤스쿨에서 배운 내용들을 적용하면서 삶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 강태욱 형제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