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리 목사의 신앙에세이>
크리스천과 갈등
갈등(葛칡 갈,藤등나무 등)이란 칡 넝쿨과 등나무 넝쿨을 말한다. 이 둘이 얽히면 풀기 어렵다. 풀기 어려운 상황과 대립이 연계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갈등이라 부른다. 그래서 갈등이라는 말 안에는 ‘대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성경에는 많은 갈등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서와 야곱이다. 리브가가 두 아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두 형제는 엄마의 뱃속에서 서로 싸웠다.
“먼저 나온 아들은 빨갛고 온몸이 털옷과 같아서 그 이름을 에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의 동생이 나왔는데 손으로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했습니다”(창세기 25:25,26)
에서와 야곱은 태어나는 순간에도 갈등 속에서 시작한다. 한 아기는 발뒤꿈치를 잡히는 인생으로, 한 아기는 발뒤꿈치를 잡는 인생으로 시작했다. 가만히 보면 갈등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까운 관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본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형제자매 사이, 친구나 동료와의 갈등, 교회 성도간의 갈등이다.
왜 갈등이 시작되는가? 나와 다른 점이 상대방에게 있고, 그 다른 점이 내게는 틀린 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름이 불편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르다’는 것의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토바이 소리를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다고 한다. 스님은 ‘부다! 부다!’, 목사님은 ‘부흥! 부흥!’하고 들린다는 한다.
한 고대 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아름다움을 만든다. 한 가지 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지 못하고, 한 가지 색은 찬란한 빛을 이루지 못하며, 한 가지 맛은 진미(珍味)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갈등은 어떤 면에서 기회가 된다. 나와 다른 점이 만났기 때문이다. 협주곡이 듣기 좋은 이유는 여러 악기가 서로 자웅을 겨루면서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 싶다. 크리스천은 이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나는 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기 죄를 감추는 사람은 잘되지 못하지만 누구든 자기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끊어버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잠언 28: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말씀을 분명히 믿고 고백한다. 갈등의 해결은 갈등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것에 우리는 순종하는 것이다. 갈등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은 문제가 없다. 어쩌면 이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뛰어난 것을 넘어 탁월하다. 진짜 문제는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갈등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내가 먼저 상대방의 손을 잡기를 원하신다. 내가 먼저 사랑과 용서와 용납의 순종을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이 요청에 순종하는 것이 ‘나는 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라는 고백의 진짜 믿음의 행동이 된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안에서 깨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새끼 나오는 것을 돕기 위해 바깥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자신도 노력하지만 함께 돕는 손길이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갈등의 껍질을 깨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의 껍질을 깨면 또 하나의 껍질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 혼자 그 껍질을 깨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손잡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는 순종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란의 테헤란 왕궁에 가면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운 빛을 반사하는 모자이크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작품을 기획했던 건축가는 원래 그 자리에 큰 거울을 붙이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거울을 주문했는데 거울이 깨져서 도착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깨어진 유리를 보며 건축가가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거울 조각을 아주 작게 부수어 일일이 벽에 붙였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자이크로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 인생에 뜻하지 않게 거울이 깨지는 것 같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깨진 유리조각을 보며 후회하며 낙망하는 인생을 살 것인지 하나님께 그것을 가져갈 것인지. 내 아버지께서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깨진 조각들을 모아 반짝이는 별들로 만드시는 분이다. 우리는 가망없고 희망없는 인생이 되었다고 말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산산조각난 삶의 파편들을 사용해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보다, 우리의 결점보다, 우리의 좌절이나 절망보다 훨씬 큰 분이시다.
기도할 때, 순종할 때 갈등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기도하며 순종함으로 갈등의 파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김소리 목사(평택 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