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으로 부르는 부활의 노래
노래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사와 곡조를 담아 부르는 것을 말한다. 노래는 시대와 민족과 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소유하거나 혹은 나누는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성경에 가인의 후손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은 조상이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 시기는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일 것이다.
목소리에는 음의 높고 낮음, 길고 짧음, 강함과 약함, 그리고 숨소리까지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다. 그런 다양한 변화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생을 보아도 때로는 높은 곳에 처할 때가 있고, 때로는 낮은 곳에 처할 때도 있다. 어떤 고통의 경험은 너무 길어 견디기 힘들 때가 있고, 어떤 행복의 경험은 너무 짧아 아쉬울 때도 있다. 어떤 경우는 커다란 장벽에 담대하게 맞설 때가 있지만 다른 경우는 별것 아닌 공격에 맥없이 무너질 때도 있다. 삶의 어느 순간 달릴 때가 있지만 가끔은 숨을 고르며 멈춰야만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 인생에서 겪는 경험들과 많이 닮아있다.
목소리가 노래의 중요한 일부라고 본다면 삶의 경험 또한 삶의 노래의 중요한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노래를 들을 때에 기쁨이나 슬픔, 밝음이나 어두움 등 다양한 감정을 노래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목소리가 높은 음이라서 기쁜 느낌이 들고 낮은 음이라서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기쁨의 웃음소리도 높은 음이지만 슬픔에 외치는 소리도 높은 음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강한 소리라도 어둡게 느껴질 수 있고 약한 소리라도 밝게 느껴질 수가 있다.
하지만 노래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목소리를 제외한 가사와 곡조를 살펴보면 그것들은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두움, 나아가 긍정과 부정까지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기쁨의 내용을 담은 가사는 기쁜 노래가 되고 밝은 느낌의 곡조는 밝은 노래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노래가 기쁜 노래인지 슬픈 노래인지, 밝은 노래인지 어두운 노래인지는 우리의 목소리가 아닌 가사와 곡조에서 결정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목소리와 같은 다양한 일상의 경험들을 우리가 어떤 가사와 어떤 곡조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노래는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
애통과 절망의 낮은 곳에서도 주님 주시는 위로의 가사와 흥겨운 곡조를 붙일 수 있다면, 희생과 섬김의 낮은 곳에서도 주님을 향한 감사의 노랫말과 경쾌한 멜로디를 어우를 수 있다면, 그 노래는 믿음의 선진들이 삶으로 부르던 위대한 노래가 될 것이다.
나의 삶은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죽음과 같은 고난’이라는 목소리일지라도 ‘예수님만을 꼭 붙잡는 굳센 믿음’이라는 가사와 ‘승리를 주실 주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라는 힘찬 곡조를 붙일 수 있다면 이 부활절의 아침, 나의 삶으로 부르는 부활의 노래를 듣게 될 것이다.
/ 정장철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