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창조의 그 놀랍고 신비한 비밀

이은일

과학은 한계가 있다 …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무너진다

창조의 신비는 과학이 발전될수록 도리어 더 커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면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는 하나님의 솜씨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우주의 별들, 지구, 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 물질세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법칙들을 통해 우리의 한계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창조의 신비

 

생명의 발생과정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결합하여 한 수정란을 이루고, 이 수정란이 계속 분열하여 세포 덩어리처럼 되더니, 각 세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 차츰 사람의 모습으로 갖춰지는 모습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세포들을 만지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빚어가는 것처럼,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한 사람이 잉태되고 자라서 아기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생명의 발생과정은 사진으로 찍혀있어 누구든지 볼 수 있고, 과학자들은 생명의 발생과정에서 변화되는 수많은 유전자에 대하여 지금도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순간순간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필요한 유전자는 발현되고, 불필요한 유전자는 억제되며, 필요한 세포들은 증식되고 사라져야 할 부분의 세포들은 사멸되는 놀라운 과정들을 모두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포 하나하나, 유전자 하나하나가 충성스럽게 역할을 다 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발생과정을 거쳐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지만, 각 사람마다 독특한 모습을 갖게 된다. 그것은 DNA 유전정보가 같은 사람의 설계도이면서 동시에 각자 다른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DNA 유전자를 조사해서 범인을 찾기도 하고, 친자를 확인하기도 하는 것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다름이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다양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독특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태어나도록 하셨다.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각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따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람을 통해 태어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가장 독특한 방법으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인 생육하고 번성하는 방법이 아닌 성령님으로 인해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2천여 년 전 갈릴리 나사렛에 요셉이라는 청년과 약혼한 마리아라는 처녀가 있었다. 아직 결혼하기 전에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 사람들은 이 임신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믿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이것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과 이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창조의 신비를 무시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믿지 못하면서 인간이 과학기술로 생명복제를 할 수 있다고 하면 다 믿는다. 생명복제라는 것은 사실 복제수정란을 만드는 기술이다. 정자와 난자와 결합하여 수정란이 되는 것을 모방하여 핵을 제거한 난자와 일반 세포의 핵을 결합시켜 수정란과 동일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후의 모든 과정은 수정란이 정상적인 발생과정을 통해 생명이 되는 것과 동일하다. 사람의 기술로 복제 수정란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 수정란을 창조하셔서 마리아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가?

 

바로 내가 창조의 신비 주인공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부활을 믿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나 이성을 초월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히브리서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이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된 말씀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도 정말 놀라운 말씀이다. 물질은 물질로부터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예를 들어 이 말씀을 설명할 수 있다. 비행기는 수많은 금속으로 만든 부속품으로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는 금속으로 되어 있으므로 금속들이 우연히 모여서 비행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비행기는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비행기가 만들어진 것은 정교한 설계도가 있기 때문이고 그 설계도를 만든 설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설계도에 따라 각각의 부속품들이 만들어지고 조립되어 비행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비행기는 보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설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 때문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고, 자신의 삶 전체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셨다. 예수님처럼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 한 명 한 명 서로 다른 유전정보 설계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비행기를 만드는 설계자가 특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비행기를 설계하고, 그 목적대로 비행기가 각각 만들어져서, 전투기, 수송기, 여객기 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행기가 설계목적에 따른 쓰임새가 있듯이 각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목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 목적에 합당에게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 나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위대한 존재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거의 모든 과학프로그램과 공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인간은 물질과 동물로부터 진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명체의 설계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체의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프로그램이 변화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그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다시 고쳐서 유전정보 프로그램이 망가지지 않고 잘 보존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돌연변이가 되면 진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암세포가 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진화론이 진리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쉽게 가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학 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를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열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사회가 인간 사회에도 이뤄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며 누군가를 짓밟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녀 교육의 목표는 오직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일 뿐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예비하신 자신들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창조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이 가라고 하신 좁은 길을 선택할 용기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창조는 우리가 볼 수 없었고, 우리의 이해와 능력을 초월하는 과거의 사건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는 만물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반면에 부활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이뤄진 사건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미래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가 믿어지면 부활도 믿어진다. 창조의 신비 앞에서 겸손해지면 부활의 신비를 기대하게 된다. 창조의 신비를 인정하지 못하고 과학과 이성의 잣대로 창조를 해석하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스스로 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 높아질 수 없다. 돈과 명예로, 과학과 지성으로, 사람의 칭찬으로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신다. 인간은 물질이나 동물로부터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실 만큼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부름을 받았다는 감격과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매일 매일 주님을 닮아가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된다. 바로 나 자신이, 우리 이웃 한명 한명이 ‘창조의 신비’의 주인공이며, 증인들이 되는 것이다.

 

모두 한 부모로부터 나왔다

 

창조와 부활을 믿으면서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역사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오직 사람만이 사람을 낳을 수 있으므로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면 우리는 한명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자손들인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의외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인류가 한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어머니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진화론 과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분들은 성경의 아담과 이브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Y염색체 아담,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성경의 이름과는 다르게 부른다. 모든 남성의 조상이 한 명이라는 것을 연구할 때 Y염색체를 사용했고, 모든 여성의 조상이 한 명이라는 것을 연구할 때 미토콘드리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인류는 한 쌍의 부부로부터 출발하였다.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과거로부터 살았던 사람들을 모두 더하면 더 엄청날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두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다. 한 부부의 유전정보의 조합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는지를 알면 이런 의문은 많이 해소될 것이다.

우리의 유전정보는 23쌍의 염색체로 구성되어 있다. 23쌍의 염색체 중 23개는 아버지로부터 23개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 부모가 얼마나 다양한 자녀들을 낳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가진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23개가 선택되어 자녀에게 전달되므로, 23쌍 중에 23개가 선택되는 경우의 수는 223(=8,388,608)이다. 좀 풀어서 계산해보자. 한 쌍의 염색체에서 한 개씩 선택하면 23쌍의 염색체에서 각각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오게 된다. 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23번 곱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번부터 23번까지의 쌍으로 된 염색체에 번호를 1-1, 1-2, 2-1, 2-2…..22-1, 22-2, 23-1(X), 23-2(Y)등으로 붙인다면, 어떤 자녀는 1-1, 2-1, 3-1, 4-1…22-1, 23-1(X)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자녀는 1-2, 2-1..22-1, 23-1(X) 등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23쌍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조합하면 223 즉, 8백만이 넘는 다양한 염색체의 조합이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23쌍의 염색체에서 23개가 선택될 염색체의 조합은 8백만이 넘는데, 동일하게 어머니의 23쌍의 염색체에서 23개가 선택되는 경우의 수도 마찬가지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염색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서로 곱하면 한 쌍의 부모로부터 태어날 수 있는 염색체의 조합 전체 숫자가 나온다. 그 수는 70조가 넘는다(70,368,744,177,664). 즉, 한 쌍의 부모가 무한대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70조가 넘는 다양한 아기가 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유전정보를 각각 23개를 받아 23쌍의 염색체를 갖게 된 아기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전자의 일부를 서로 교환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준 23쌍의 염색체 유전정보와는 또 다른 유전정보를 갖게 된다. 따라서 한 쌍의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전해지는 염색체는 거의 무한대의 다양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창조과학 사역을 하다보면 다양한 질문을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담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황색인종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떤 대답이 최선인지를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다양한 인종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 대답이 쉬어졌다. 사람들은 흑인, 백인, 황색인과 같은 다양한 인종들이 엄청나게 다른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미 생명과학자들은 인종간의 유전정보 차이는 개인 간의 유전정보 차이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인종 간에 유전정보가 큰 차이를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종 간의 차이라는 것은 개인 간의 차이보다도 작다는 것이다. 각 개인마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있듯이 피부색도 각 사람의 특성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부부로부터 백인, 흑인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흑인 부부가 백인 아기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의 유전정보의 조합이 70조가 넘으니 얼마든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수 있다. 더욱이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어떤 인종이었느냐는 질문은 알 수 없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

지역적으로 피부색이 유사한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것은 바벨탑 이후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소수의 사람들끼리 결혼하여 피부색의 다양성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유전적 조합, 돌연변이 등으로 새로운 특성들이 생길 수도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게 태어나는 사람들을 배척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부색의 다양성이 지역적으로는 더욱 감소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마다 특정 피부색이 지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똑같이 한 부모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모두가 한 가족이다. 성경적이면서 과학적인 이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민족보다 내 민족이 중요하고, 다른 가족보다 내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은 가족이 아니었는데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가족이었는데 모르고 살다 이제 다시 가족임을 알게 된 것이다. 진화론을 믿으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 내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진화론 교육을 받은 세대는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다. 과학의 한계와 창조 신비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면 비과학적인 어리석은 주장을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창조의 신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인간의 지적 탐구로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은 항상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 자체가 얼마나 제한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학은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과학은 항상 사실과 해석이 함께 존재한다. 또한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 과거 천동설이 사실이라고 믿었던 시대에도 나름대로 별자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설명을 했고, 미래의 움직임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단지 지동설로 예측하는 것보다 이론이 복잡했을 뿐이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등장했듯이 잘못된 사실을 기반으로 정립된 과학이론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과학은 그런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2013년 유전자가 이중나선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Nature 학술지에 ‘Celebrate the unkowns (모르는 것에 대한 축제)’라는 제목의 글이 기고되었다. 유전자의 구조를 밝힌 기념비적인 연구 이후 유전자에 대한 엄청난 지식이 쌓여갔지만, 유전정보의 조절이 상상을 초월한 복잡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전정보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알게 되어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이다.

2011년 노벨상은 우주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가속팽창이론을 만든 과학자들이 수상하였다. 기존의 인플레이션 빅뱅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더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는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학 이론은 우주는 모르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 72%와 모르는 암흑 물질(dark matter) 23%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별들, 블랙홀 등을 다 합쳐도 우주의 5%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에서도 우주과학에서도 과학이 발전될수록 ‘창조의 신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창조의 신비’가 더 커지고 있다. ‘창조의 신비’를 인정하는 것은 무지를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 질서를 밝히면 밝힐수록 그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영광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창조의 신비는 고도의 연구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백합화가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보시면서 그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왕의 옷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꽃의 아름다움이 더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백합화를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우리 눈에는 꽃의 아름다움보다 화려한 왕의 의상이 더 훌륭해 보일 것이다.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의 신비’는 이 세계에 가득 차 있지만 열린 눈과 열린 귀가 없다면 그 신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창조의 신비를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의 눈이 멀었고 귀가 막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이 보는 방식으로 보고, 주님이 듣는 방식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할 때 피조세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며 소망과 기쁨에 충만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주 예수여 우리의 눈을 띠워 보게 하소서.

/ 이은일 장로(창조과학회 회장)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