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심에 라틴어판 <생명의 삶>이 있다
아마존에서 시작된 큐티운동 중남미 15개 국으로 확산
15년 동안 큐티책 제작, 큐티운동에 헌신한 김주태 선교사
아마존에서 시작된 큐티운동이 중남미(라틴아메리카) 15개국으로 퍼졌다. 15년 전 손으로 오리고, 일일이 글자를 붙여 만든 큐티책이 이제는 매달 10만 부씩 팔리고 있다. 중남미에 큐티 운동의 바람이 불고 있다. 중남미 큐티운동의 중심에 라틴어판 두란노 <생명의 삶>이 있다. 그것을 만든 장본인은 김주태 선교사(라틴두란노본부장)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2000년 11월 스페니쉬(Spanish) 큐티운동이 시작되었다. 페루 북부 툼베스(Tumbes)주 아마존에 위치한 이키토스(Iquitos)마을에서다. 김주태 선교사는 2000년 평신도 사역자로 페루 아마존으로 파송됐다. 당시 아마존에는 인쇄기가 없었다. 페루 수도인 리마에서 큐티책을 인쇄해 매달 비행기에 실어 아마존으로 보냈다. 매월 100부씩 인쇄했는데 일손이 없어 김주태 선교사와 아마존 교회 담임목사 등 세 명이 큐티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라틴어판 <생명의 삶>의 초판본 ‘띠엠꼰디오스(Tiempo con dios)’다. 띠엠꼰디오스는 스페인어로 ‘하나님과의 시간(Time with God)’이라는 뜻이다. 당시 <생명의 삶>이라는 이름을 번역하기가 어려워 ‘띠엠꼰디오스’라는 이름으로 매달 100부씩 발행했다.
일 년 동안 매달 비행기로 큐티책을 배송하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이때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온누리교회 한 성도가 후원해 중고 인쇄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종이를 자르고, 글자를 일일이 풀로 붙이면서 큐티책을 제작했다.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힘은 들었지만 아마존에서 직접 큐티책을 만든다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큐티책이 10개, 20개 교회로 퍼졌나갔다. 큐티책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는 손길들도 늘어났다. 여러 목회자들의 신학적 도움을 받아 큐티책의 질도 높여갔다. 김주태 선교사는 그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2년 넘게 수작업으로 큐티책을 만들었어요.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아마존 땅에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감동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귀한 사람들을 세워주셨고, 여러 손길을 통해 도우셨어요.”
중남미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큐티운동
수십 개의 아마존 교회에 퍼진 큐티운동은 페루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김주태 선교사는 큐티는 교단에 제한받지 않고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페루 교회 전역을 다니며 큐티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큐티운동이 3~4년이 지나자 중남미 전역으로 퍼졌다. 2003년부터는 큐티운동이 페루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을 지나 멕시코와 미국, 스페인까지 확산되었다. 지난해에는 큐티운동이 스페인 문화권을 벗어나 브라질 언어권까지 퍼졌다. 2014년부터 포어판(TEMPO COM DEUS, 브라질어판) <생명의 삶>이 발행되고 있다. 100부씩 인쇄하던 큐티책이 지금은 매달 10만 부씩 팔리고 있다.
김주태 선교사는 처음 맨발로 교회를 찾은 아마존 청년들에게 큐티책을 전했다. 그 청년들이 하나님을 만났고, 큐티운동을 돕는 동역자로 거듭났다. 이제는 아마존뿐 아니라 중남미 15개 나라가 큐티운동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과 미국 4천여 개의 교회에서도 초교파적인 큐티운동을 하고 있다. 라틴어판 <생명의 삶>에는 중남미 15개 나라 성도들의 간증이 매달 실린다. 말씀과 큐티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중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남미 5억 인구에 비하면 매달 10만 부의 <생명의 삶>이 팔리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티끌, 모래알 같지만 이들이 큐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중남미 국가에는 문맹률이 높은 국가가 많아 책을 사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들이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말씀과 성령이 중남미를 변화시키고 성도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라틴두란노본부장 김주태 선교사
김주태 선교사는 1.5세 선교사다. 그는 한국에서 출생해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아르헨티나에서 의과대학을 다녔다. 어릴 적부터 한인교회에 다녔던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운 조국을 찾았다. 1993년 한국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왔다. 그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 한국에 남아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으며 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1995년에 온누리교회에 오게 되었다. 매년 아웃리치와 의료선교팀 사역으로 바쁘게 지내던 중 ‘중남미로 가야 한다’는 비전을 받았다. 2000년 3월 서빙고 온누리교회의 파송을 받아 아마존으로 갔다. 그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아마존에서, 2007년 말까지는 페루 리마에서 사역했다. 아마존 사역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두란노해외선교회에서 장기선교사로 다시 파송을 받았다.
그가 아마존에서 큐티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온누리교회 성도라면 큐티와 일대일이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매일 하던 큐티를 선교하러 간 땅에서 그대로 했을 뿐이었다. 2007년 말부터는 두란노본부와 협력해 큐티책을 발간하게 됐다. 이때 띠엠꼰디오스가 <생명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지금 김 선교사는 라틴두란노본부장이다. 그는 라틴두란노를 통해 큐티운동과 일대일 사역을 중남미 15개 나라에 전수하고 있다. 땅 끝까지 선교하기 위한 와이미션과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의 사역도 하고 있다.
라티노, 라티노교회를 위하여
라틴어판 <생명의 삶>의 영향력은 미국에서도 지대하다. 어느 통계에서는 2050년이 되는 해 미국 인구의 절반이 라티노(Latino)가 된다고 했다. 미국에는 4천 만 명의 라티노가 있다. 한국 인구에 버금간다. 지금도 중남미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불법 체류한다. 김주태 선교사가 미국에서 라틴어판 <생명의 삶>을 보급하며 사역하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미국 내에는 라티노뿐 아니라 라틴교회도 많다. 그런데 세상적인 꿈을 꾸고 온 사람들에게 라틴교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꿈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모든 면에서 어렵기 때문이다. 김주태 선교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심겨야지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교회도 변화될 수 있다는 믿고 있다. 지금 라티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영혼 구원과 말씀 사역이다. 그것을 위해 큐티운동을 벌이고, 큐티책을 보급하고 있다.
“미국 내 라틴교회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성도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입니다. 그들은 한 교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직업을 찾는 대로 끊임없이 교회를 옮기죠. 우리는 라틴교회가 말씀 안에서 올바로 설 수 있고 예수만이 길이요 생명임을 깨닫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도구가 바로 큐티입니다.”
문의: director@durannolatino.org
asistente@durannolatino.org
<김주태 선교사의 기도제목>
1. 라틴두란노본부팀의 성령 충만을 위해
2. 중남미 큐티, 일대일, 와이미션, 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 운동을 위해
3. 현지 목회자들을 겸손히 섬기고 리더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4. 중남미 교회를 통한 세계 선교를 위해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