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꼭 돌아갈 그 곳
선교지에서 온 편지
나는 2008년 2월 첫 사역지 시리아로 떠났다. 요르단에서 약 10일 동안 시차 적응을 하고 선임 선교사와 함께 육로로 시리아에 들어갔다. 아랍어 한 마디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요르단과 시리아를 오가는 국경택시에 몸을 실었다. 태어난 지 18개월 된 스라엘과 아내와 나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시리아에서 사역을 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북한과 비슷한 체제를 가진 시리아는 곳곳에 비밀경찰과 정보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치안은 안전했지만 적은 숫자라 해도 모임을 갖는 것은 위험했다. 우리는 시리아의 사회분위기에 위축되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2011년 봄, 심상치 않았다. ‘아랍의 봄’이라고 불린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다마스쿠스 외곽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가 진정되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한번은 부활절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마스쿠스 반대편에 위치한 한인교회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가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다마스쿠스로 들어가는 모든 차량이 통제되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부군이 기관총을 들고 한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들으니 한 선교사 가정이 시위가 심한 지역 가정을 방문하다 심한 검문검색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의 불안감은 더 커져 갔다.
한 달이 지나자 본부에서 복귀할 것을 권고하는 연락이 왔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귀국하게 되었다. 이후 시위는 더욱 극심해졌고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2011년 8월 30일, 시리아는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됐다. 결국 완전히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현지에 남은 짐을 정리하러 시리아를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선교지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또 혼자서 그 많은 짐들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다행히 현지 동료 선교사의 도움으로 살림살이를 정리할 수 있었다.
잘 섬기겠다던 시리아 사람들을 내전 속에 남겨두고 떠나려니 자책감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선교사들의 발걸음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뿐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느 곳으로 보내실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나는 말씀을 통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삶의 여정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지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서쪽으로 109km 떨어진 레바논에 살고 있다.
/ 이빛 선교사(레바논)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