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곧 영성형성 과정
김영배 목사의 신앙에세이 1

▲ /김영배 목사(서초C공동체)
‘영성형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약간 생소하다. 단어의 의미가 생소할지 몰라도 성도들은 이미 자신의 삶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성형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성형성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형성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과정이 더 중요하다. 영성형성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큰 틀 속에 자신을 맡기고, 그 분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도의 인생을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시고,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정으로서의 영성형성을 달갑게 맞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너무 결과중심적인 세상의 문화 속에서 과정에 충실하면 행여나 도태(徒退)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을 주기 때문이다. 소중한 과정을 무시하고, 지나친 결과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즉시만족(instant-gratification)을 갖게 하는 현대문화 역시 과정으로서의 영성형성을 방해한다. 그렇다고 이 세상 문화를 벗어나 존재할 수는 없다. 더 깊은 영적인 통찰력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그분의 임재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대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과정으로서의 영성형성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전인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의 시인 윌리암 헨리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가 내 영혼의 선장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 시대의 정신을 잘 반영해주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전인성을 깨뜨리는 말이다. 하나님의 전인성은 성도 각자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부르셨다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전인성을 인정하면서 삶을 그분께 의탁해야 한다. 특별하고 성공적인 영역만 의탁하는 것이 아니다. 삶 전체를 의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이 잘 풀리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뿐만 아니라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처럼 남편 잃고, 두 자식마저 순식간에 잃어버린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순간마저도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 욥은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의 표상이다. 그는 재산뿐만 아니라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그를 저주하고 떠났다. 그때도 그는 하나님의 전인성을 붙잡았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요즘 우리 주변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이 많다. 함께 손을 잡고 같이 울면서 마음을 나눠도 인간이 해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시고, 온전케 할 그분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나아간다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신앙의 완숙자가 될 것이다. 영성형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