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범 목사와 서찬교 장로의 아름다운 동역
오이도 나눔선교교회를 돕자 … 예배, 중보기도, TV후원
예수님을 바로 보여주는 온누리교회
본지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농어촌 미자립교회, 지역, 기독교 기관 및 단체, 이웃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열다섯 번째 주인공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에서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는 ‘나눔선교교회’다.

▲ 나눔쉼터 앞에서 최삼범 목사(좌)와 서찬교 장로(우)
서찬교 장로(성북공동체)가 2013년 12월8일부터 국내 선교사로 파송되어 섬기고 있는 교회다. 지난 9일 그곳에 다녀왔다.
유모차에 몸을 의지한 어르신이 나눔선교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성도가 부리나케 달려가 어르신을 부축했다.
“어머니, 오늘은 교회가 아니라 오이도 광장에서 모여요. 저랑 같이 가요.”
그 성도는 나눔선교교회에서 오이도 광장으로 가는 그 짧은 길에도 어르신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데 어르신을 부축하고 있는 성도가 낯익다. 그는 2013년 12월 8일부터 국내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눔선교교회를 섬기고 있는 성북공동체 서찬교 장로다. 반갑게 인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바빠 보였다. 오늘 이곳에서 ‘ 오이도 경로잔치’ 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이도 광장에는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와 있었다. 오이도에 거주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고, 맛있는 음식이 지천이었다. 나눔선교교회 최삼범 담임목사와 서찬교 장로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오이도 나눔선교교회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자주 개최한다. 그렇다고 행사를 자주 개최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교회가 아니다. 나눔선교교회는 성도가 20여 명에 불과하다. 아주 작은 교회이다. 작은 교회가 이렇게 큰 행사를 어떻게 개최할 수 있었을까. 최삼범 목사와 서찬교 장로의 아름다운 동역이 그 원동력이다.
“7년 된 성도는 떠나라”
2013년 12월 8일, 장로 7명의 은퇴식이 있었다. 장로은퇴를 앞둔 서찬교 장로의 감회가 남달랐다. 서 장로는 장로은퇴와 동시에 국내 선교사로 파송되기 때문이었다. 그가 국내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시작은 새벽예배였다.
서 장로가 성북구청장으로 공직생활을 하던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나갔다. 지역사회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지역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렸다. 성북구 일대 300개가 넘는 교회를 일일이 찾아 다녔다. 서 장로는 지역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사정이 어려운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사와 사모 단 둘이 예배드리는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지역교회가 살아야 지역이 복음화 된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마음이 아팠다. 8년 동안의 성북구청장 임기가 끝나고, 19대 총선에도 출마했던 서 장로가 2013년 2월 은퇴를 선언하고 오이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바다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서 장로가 오이도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새벽예배를 드릴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당시 오이도에는 교회가 3개 있었다. 서 장로가 첫 번째 들린 교회는 50명, 두 번째로 들린 교회는 20명이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세 번째 들린 교회가 바로 나눔선교교회다. 3명이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눔선교교회 문을 열었는데 3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네가 예배드릴 교회가 바로 여기다’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새벽예배를 드린 던 3명 중 2명은 목사님 가족이었고, 한 명은 80세가 넘은 권사였다. 서 장로는 평일에는 나눔선교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서빙고 온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당시 오이도는 복음의 황무지였다. 나눔선교교회 소속 성도가 10명도 안됐고, 교회건물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었다. 서 장로가 오이도에 오자마자 두 번째로 들린 교회는 어느 순간부터 십자가에 불이 꺼졌다. 인구 8천명이 넘게 살고 있는 오이도에 교회가 단 두 곳 밖에 남지 않았었다. 긴박감 때문이었는지 서 장로는 나눔선교교회에 올 때마다 ‘이교회를 섬기고 싶다’ 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님의 뜻이다 싶었어요. 망설일 것도 없이 교회에 국내 선교사로 파송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로은퇴를 앞둔 서찬교 장로가 이재훈 담임 목사에게 국내 선교사 파송을 요청했고, 2013년 12월 8일 장로은퇴와 동시에 국내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띠를 두르고 예배안내부터 시작했어요. 교인이 10명인 교회에서 무슨 안내냐, 장로가 안내도 하냐며 놀리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더라고요.”
나눔선교교회에서 서 장로는 성실한 일꾼으로 통한다.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회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봉사한다. 나이가 칠십이 넘었지만 어느 청년보다 힘이 넘친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할 때 보다 열배는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역하는 맛이 난다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왜 ‘ 7년 된 성도는 떠나라’ 고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온누리교회에서 키운 신앙과 사역 노하우를 지역교회와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지역교회가 살고, 그 지역이 복음화 되기 때문입니다.”
나눔선교교회와 최삼범 목사
“목사님 제가 나눔선교교회를 섬기겠습니다.”
거의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예배를 드리던 한 성도가 최삼범 목사에게 건넨 말이다. 그 성도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온누리교회 장로였다. 그동안 나눔선교교회를 섬기겠다고 한 성도들이 종종 있었지만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때문에 최삼범 목사는 서 장로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교회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장로 한 명 생겼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서 장로는 달랐다. 성도가 몇 없는 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안내를 하더니, 목사보다 교회에 더 오래 머물렀다. 예배가 끝나면 교회 구석구석을 돌며 청소를 했다. 서 장로와 머리를 맞대면 어려운 고민도 술술 풀렸다. 20년 동안 목회 하면서 이렇게 즐거운 적은 처음이었다. 서 장로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최고의 동역자였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분명했다.
최 목사는 20년 전 폐결핵 3기로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오이도에 들어왔다. 네 살배기 딸과 생이별을 했다. 교회개척을 하면서 진 빚도 많았다. 일을 해서 갚고 싶어도 망가진 몸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즈음 IMF가 터지면서 오이도에 포장마차 촌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보자는 생각으로 차를 담보로 600만원을 빌려 칼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한지 3일 만에 구청의 단속으로 포장마차가 허물어졌다. 눈앞이 캄캄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보다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때 깨달았다.
“목사는 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 목회를해야 한다.”
최 목사는 컨테이너에 ‘ 빈민선교교회’ 를 열고 목회를 시작했다. 10여 년을 컨테이너에서 목회했다. 2000년 초반이 되자 오이도에 원룸들이 많이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어르신들 인구가 늘었다. 방세가 저렴한 영향이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버림받듯이 오이도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최 목사는 어르신들을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그런데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2001년 어르신들과 여행을 다녀오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르신 2명이 사고현장에서 돌아가셨다.
“그 순간 목회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나눔선교교회를 열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가족들과 같이 살기 시작했다. 1년 동안은 성도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회가 경매에 넘어갈 뻔한 일도 수 차례였다. 그 어려운 와중에도 최 목사는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섬겼다. 교회 옆 공터에 ‘나눔쉼터’ 를 만들어 매주 금요일마다 어르신들께 국수를 삶아 대접했다. 시간 날 때 마다 노래자랑, 노인대학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복음을 전했다. 재정이 없을 때에는 공사장에서 일을 해가며 충당했다. 쉼터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최 목사가 나눔선교교회를 열 때만 해도 오이도에 교회 7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두 곳뿐이다. 나눔선교교회에 성도가 많아서, 헌금이 많아서 나눔선교교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든든한 동역자 서찬교 장로가 있고, 복음을 전해야 할 어르신들이 있는 이상 목회를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성도들이 최삼범 목사와 서찬교 장로에게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눔선교교회와 최 목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주자. 매주 금요일 점심 무료급식을 도와주는 것도 좋다. 또한 거동이 불편해서 2층에 있는 나눔선교교회에 예배드리러 오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 어르신들을 위해서 ‘ 나눔쉼터’ 에 TV를 설치해주면 정말 좋
겠다.
문의 : 최삼범 목사(나눔선교교회) 010-4274-3927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