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가 전도자를 만나다
온누리전도학교, 섬마을로 방문전도를 다녀오다
온누리전도학교가 전남 신안군 지도읍으로 방문전도를 다녀왔다. 신안군 지도읍은 전도부인 문준경 전도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전도자가 전도자를 만나는 뜻 깊은 여행에 동행했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지난 19일 서빙고 이천만광장에 온누리전도학교 소속 41인의 전도특공대가 모였다. 초등학교 3학년 박시후 어린이부터 70세가 넘은 이정자 권사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전도부인 문준경 전도사의 숨결이 서려있는 전남 신안군 섬마을로 방문전도를 가기 위해서다. 뜻 깊은 여행을 앞둔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원들의 각오가 남달랐다. 이재화 성도는 어르신들께 선물할 돋보기 120개를, 윤혜경 집사와 전도특공대원들은 전도팔찌 400개를 만들어왔다. 김진양 성도는 이번 전도여행에 동행하고자 제주도에서 왔다.
문준경 전도사 하면 대부분 신안군 증도면을 떠올리는데, 온누리전도학교가 방문전도 여행을 간 신안군 지도읍도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지도읍의 인구는 4,726명인데 복음화율이 64%나 된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지도읍은 김준곤 목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김 목사의 아내 인정진 사모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인정진 사모는 1950년 10월 3일, 신안군 지도읍 지도봉리교회 뒷산에서 학생들을 주일학교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토착 공산당들에게 순교를 당했다. 지도읍은 전도열정과 순교의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곳으로 온누리전도학교 소속 41인의 전도특공대원들이 방문전도를 간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 나이에 천국 가겄소”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는 신안군 지도읍 9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분주한 일정으로 지칠 법도한데 누구하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예수 전하는 재미와 기쁨만이 가득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이재화 성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와 전도팔찌를 건넸다. 곁에서 취재하던 기자에게도 한 움큼 나눠주면서 지금 이 순간 전도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뜨거운 전도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전도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된 전도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해 전도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이찬주 장로와 이재화 성도는 ‘ 안경 검안 사역’ 을 맡았다. 그 지역 어르신들의 시력을 일일이 측정해가며 돋보기 120개를 선물했다. 김재흥 집사는 매트를 깔고 침술봉사를 했고, 김진양 집사는 발마사지 봉사를 했다. 주민들은 물론 지역교회에서도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를 크게 환영했다.
“아따~ 반가운 사람들 아니셔잉~! 서울서 다섯시간 차 타고 왔담시”
특히 지도봉리교회 김정희 권사가 일행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올해 60세인 그녀가 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 그만큼 열정도 대단하다.

▲ 대실마을 주민들과 김진양 성도(왼쪽에서 두번째).
대실마을 주민 대부분은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 이미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있는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복음을 전했더니 열매가 더욱 풍성하게 맺혔다. 김진양 성도가 조유진 할머니(80세)께 전도팔찌를 선물하면서 예수를 소개했다.
“어머니, 이 팔찌 예쁘죠? 예수님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하나님이 어머니를 만드신 특별한 목적이 있어요.”
조유진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복음을 받아들이자 그 옆에 있던 윤순예 할머니도 관심을 보였다.
“나 교회는 한 번도 안 나가봤소. 예수가 누구여, 내 나이에 천국 가겄소? 혼자 살아보니까 불안하데. 오늘 밤에 갈지, 내일 밤에 갈지어찌 알어”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들은 윤순예(80세) 할머니의 구원을 위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했다. 윤순예 할머니도 그 기도를 따라하셨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예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이 시간 저에게 오셔서 구원자와 주님이 되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는 포작도에서도 전도했다. 포작도는 11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지도읍에서 배를 타고 5분 정도 더들어가야 한다.
포작도에서 만난 장경섭, 박영희씨 부부
온누리교회 전도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포작도 이장이 바로 옆 이어도에 살고 있는 장경섭, 박영희씨 부부를 초대했다. 그들 부부는 자녀를 잃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는 그들 부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품어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그들 부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황성모 집사가 그들 부부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겨 주자 박영희씨가 눈물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하였다.
온누리전도학교 41인의 전도특공대는 지도읍 구봉동, 구심동, 구원동, 구서동, 구황금동, 구취동, 구죽곡, 구참도, 포작도까지 9개 마을을 돌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 열매로 주민 93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전도부인 문준경 전도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답게 열매가 풍성했다. 문준경 전도사의 뜨거운 전도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았다는 것을 온누리전도학교 전도특공대가 증명한 현장이었다.
복음과 용서 그리고 사랑

▲ 문준경 전도사(왼), 김준곤 목사(오)
전도부인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6월 2일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났다. 1908년 17세에 증도에서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면서 시아버지께 한글을 배웠다. 그녀는 1927년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928년 6월 세례를 받고, 1931년 서울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1935년에는 증도에 증동리교회를 개척했다. 나룻배를 타고 다니면서 전도하러 다녔다. 그녀는 탁월한 입담꾼이었다. 찬송도 잘 부르고, 설교도 재미있게 했다. 1943년 일제는 그녀를 탐탁치 않게 여겨 고문을 일삼았다.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1950년 10월 5일 증동리 앞 백사장에서 공산당에 의해 수양딸 백정희 전도사를 대신해 총살당했다. 그녀의 나이 59세였다. 그녀가 천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선한 영향력이 계속 이어졌다. 증도에만 11개, 신안군 일대 100개 교회가 세워졌다. 그녀가 양육한 성도 중에서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만성, 이봉성 등 30여 명이 넘는 목회자가 나왔다. 김준곤 목사가 7살 때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처음 복음을 들었다. 신안군 지도읍에 김준곤 목사의 생가와 김 목사의 아내 인정진 사모와 그의 부모의 묘가 있다. 김 목사 부부는 네 살 된 어린 딸을 데리고 고향인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로 내려와 사역했다. 당시 김 목사의 고향은 공산당이 죽창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죽였다. 인정진 사모는 1950년 10월 3일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공산당들에게 순교를 당했다. 김준곤 목사의 부친도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 김준곤 목사도 죽음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구출됐다. 그러나 김준곤 목사는 아버지와 아내를 죽인 공산당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했다. 공산당 120명을 용서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