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일 기획_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장애인 차별’
‘장애인과 관계없다’는 생각부터가 오해이자 편견
장애와 비장애 구분 말고,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어야
장애인이라고 해낼 수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두 다리가 없는 수영선수 김세진 군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연소 2위를 차지했다.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연주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장애인들을 차별하고 오해하고 제한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한 행동일지라도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51만 명(201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인구 100명 당 5명이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장애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12.3%를 차지한다. 8가구당 1가구에 장애인이 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장애인의 약 9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누구나 장애인이나 그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장애인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부터가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자 편견이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말과 행동
박사랑 자매(가명, 33세)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장애인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무시하게 되더라고요. 그 부모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장애인들과 마주치면 왠지 내게 해코지 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장애인과 같이 있는 게 싫을 때도 있어요. 이런 생각이 안 좋다는 건 알겠는데 쉽지 바뀌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이런 생각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실제 상당수 비장애인들이 장애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장애인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시선과 차별은 장애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예수사랑부 A 집사는 장애가 있는 자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카페나 식당에서 장애가 있는 내 아이를 외계인 쳐다보듯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그렇게 쳐다보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어른들이 그런 시선으로 내 아이를 쳐다보면 너무 화가 나요. 큰 상처가 되고요.”
자녀가 사랑챔버 단원인 B성도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늘 보호자와 함께 다니지는 않아요. 직장, 학교, 교회에 혼자 갈 때도 많아요. 한번은 우리 아이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세우지 않고 그냥 가더래요. 보호자가 없으니까 그냥 지나친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말(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속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표현이 ‘장애우’다. 장애인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장애우(友)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식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 인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용어라는 비판이 거세다. 따라서 ‘장애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좋다.
또한 장애인의 반대 개념으로 ‘정상인’ 혹은 ‘일반인’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표현이다. 정상인이나 일반인의 반대말이 장애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굳이 장애인에 대한 반대말을 써야 한다면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옳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를 딛고’ 등의 표현도 주의해서 써야 한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장애를 가진 이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게 좋다. 사람보다 장애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지 않다.
성경에도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용어들이 많다. 특히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성경에 손 마른 자, 절뚝발이, 저는 자, 앉은뱅이, 병신, 중풍병자, 문둥병자, 소경, 눈먼 자, 벙어리, 곱사등, 난장이, 간질하는 자, 귀머거리 등 장애인 비하 용어가 많다. 절뚝발이, 앉은뱅이 등은 지체장애인, 중풍병자는 뇌병변 장애인, 간질하는 자는 뇌전증 장애인, 장님, 소경은 시각장애인,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 벙어리는 언어장애인, 곱추, 난장이는 지체장애인, 문둥병자, 나병환자는 한센인으로 바꿔 부르고 써야 한다.
가장 큰 차별은 동점심이나 우월감을 가지고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의 뜻과 상관없이 도와주는 일을 삼가야 한다. 사랑챔버 C성도는 과잉 친절을 경계했다.
“우리 아이가 교회 카페나 식당에서 ‘빵 하나 사 달라, 저거 먹고 싶다’고 하면 성도님들이 좋은 마음으로 사주세요. 그런데 그 행동이 아이한테는 좋지 않아요. 비만이 될 가능성이 있고, 끊임없이 실시하고 있는 사회화 교육이 사람들의 과잉친절로 인해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옆에 있던 예수사랑부 D 집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카페에서 사랑부 아이들 몇 명이 줄을 서 있는데 앞에 계시던 성도님이 갑자기 돌아보면서 ‘앞으로 갈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과하게 다가오는 배려는 오히려 장애인들이나 보호자들이 자격지심을 느끼게 만들어요. 장애인들도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질서와 에티켓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무시하게 되더라고요. 그 부모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장애인들과 마주치면 왠지 내게 해코지 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장애인과 같이 있는 게 싫을 때도 있어요. 이런 생각이 안 좋다는 건 알겠는데 쉽지 바뀌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이런 생각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실제 상당수 비장애인들이 장애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장애인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시선과 차별은 장애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예수사랑부 A 집사는 장애가 있는 자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카페나 식당에서 장애가 있는 내 아이를 외계인 쳐다보듯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그렇게 쳐다보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어른들이 그런 시선으로 내 아이를 쳐다보면 너무 화가 나요. 큰 상처가 되고요.”
자녀가 사랑챔버 단원인 B성도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늘 보호자와 함께 다니지는 않아요. 직장, 학교, 교회에 혼자 갈 때도 많아요. 한번은 우리 아이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세우지 않고 그냥 가더래요. 보호자가 없으니까 그냥 지나친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말(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속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표현이 ‘장애우’다. 장애인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장애우(友)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식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비주체적이고, 비사회적 인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용어라는 비판이 거세다. 따라서 ‘장애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좋다.
또한 장애인의 반대 개념으로 ‘정상인’ 혹은 ‘일반인’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표현이다. 정상인이나 일반인의 반대말이 장애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굳이 장애인에 대한 반대말을 써야 한다면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옳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를 딛고’ 등의 표현도 주의해서 써야 한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장애를 가진 이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게 좋다. 사람보다 장애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지 않다.
성경에도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용어들이 많다. 특히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성경에 손 마른 자, 절뚝발이, 저는 자, 앉은뱅이, 병신, 중풍병자, 문둥병자, 소경, 눈먼 자, 벙어리, 곱사등, 난장이, 간질하는 자, 귀머거리 등 장애인 비하 용어가 많다. 절뚝발이, 앉은뱅이 등은 지체장애인, 중풍병자는 뇌병변 장애인, 간질하는 자는 뇌전증 장애인, 장님, 소경은 시각장애인,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 벙어리는 언어장애인, 곱추, 난장이는 지체장애인, 문둥병자, 나병환자는 한센인으로 바꿔 부르고 써야 한다.
가장 큰 차별은 동점심이나 우월감을 가지고 장애인을 대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의 뜻과 상관없이 도와주는 일을 삼가야 한다. 사랑챔버 C성도는 과잉 친절을 경계했다.
“우리 아이가 교회 카페나 식당에서 ‘빵 하나 사 달라, 저거 먹고 싶다’고 하면 성도님들이 좋은 마음으로 사주세요. 그런데 그 행동이 아이한테는 좋지 않아요. 비만이 될 가능성이 있고, 끊임없이 실시하고 있는 사회화 교육이 사람들의 과잉친절로 인해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옆에 있던 예수사랑부 D 집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카페에서 사랑부 아이들 몇 명이 줄을 서 있는데 앞에 계시던 성도님이 갑자기 돌아보면서 ‘앞으로 갈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과하게 다가오는 배려는 오히려 장애인들이나 보호자들이 자격지심을 느끼게 만들어요. 장애인들도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질서와 에티켓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 타고난 존재,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통로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통로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 중에도 장애인이 많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다 환도뼈가 위골되어 지체장애인이 되었다(창 32:31).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 사람 3천 명을 죽인 삼손은 시각장애인이었다(삿 16:21). 평생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했던 사도 바울 또한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후 12:7). 예수님 또한 장애인이었다. 의심 많은 제자 도마를 위해 영광의 부활체를 포기하고 영원한 장애의 몸을 입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요 20:27).
예수님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질문하는 제자들의 선입견을 단호하게 배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난 존재이고,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부터, 우리부터, 교회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이 살기 편한 사회가 비장애인도 살기 편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질문하는 제자들의 선입견을 단호하게 배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난 존재이고,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부터, 우리부터, 교회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이 살기 편한 사회가 비장애인도 살기 편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랑부(지체, 발달장애인) 예배공동체
봉사, 섬김 문의: 02-3215-3268
봉사, 섬김 문의: 02-3215-3268
*함께하는 작은 배려, 장애인 에티켓!
시각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① 길을 설명할 때는 “오른쪽으로 1m 간 다음 왼쪽으로 2m 가세요” 등으로 정확한 숫자와 방향을 알려주는 게 좋다.
②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음식물을 주면 안 된다. 음식을 주거나, 쳐다보고 쓰다듬는 행동은 안내견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① 길을 설명할 때는 “오른쪽으로 1m 간 다음 왼쪽으로 2m 가세요” 등으로 정확한 숫자와 방향을 알려주는 게 좋다.
②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음식물을 주면 안 된다. 음식을 주거나, 쳐다보고 쓰다듬는 행동은 안내견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반말하는 것은 안 된다. 예의를 지키자.
② 수어를 모를 때는 필담이나 제스처로 대화를 시도하고, 글로 대화를 나눌 때는 가급적 명확하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① 발달장애인을 대할 때는 이웃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대해야 한다.
② 길을 잃은 것 같으면 가까운 경찰서에 데려가거나 신고하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옆에서 함께 기다려줘야 한다.
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반말하는 것은 안 된다. 예의를 지키자.
② 수어를 모를 때는 필담이나 제스처로 대화를 시도하고, 글로 대화를 나눌 때는 가급적 명확하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① 발달장애인을 대할 때는 이웃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대해야 한다.
② 길을 잃은 것 같으면 가까운 경찰서에 데려가거나 신고하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옆에서 함께 기다려줘야 한다.
지체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① 돕고 싶을 때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꼭 물어봐야 한다. 장애인을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은 편견이다.
② 편의시설(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은 장애인이 먼저 사용할 수 있도록 양보해야 한다.
① 돕고 싶을 때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꼭 물어봐야 한다. 장애인을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은 편견이다.
② 편의시설(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은 장애인이 먼저 사용할 수 있도록 양보해야 한다.
<기고>
장애인 ‘이해’에서 ‘동행’으로
얼마 전 장애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두 번째 부인이 발달장애인이었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퇴계는 두 번 장가를 갔는데 첫 번째 부인 김해 허씨가 아들 둘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일찍 죽었다. 그는 31살에 둘째 부인인 안동 권씨와 재혼했는데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당시 안동으로 귀양 온 권질이 퇴계를 찾아와 과년한 딸이 정신이 혼미해 출가하지 못했다면서 맡아줄 것을 부탁하자 퇴계가 거리낌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하루는 부인 권씨가 흰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 조금 태워버렸는데 하필 붉은 천을 대고 태운 곳을 기웠다. 그럼에도 퇴계는 아무렇지 않게 그 옷을 입고 외출했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경망스럽다고 탓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붉은 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색이라는데 우리 부인이 좋은 일이 생기라고 해준 것인데 어찌 이상하단 말인가.”
퇴계는 권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로 감싸주며 살았다고 한다. 후에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퇴계는 전처소생인 두 아들에게 친어머니와 같이 시묘살이(부모의 상중에 3년 동안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일)를 시켰고, 자신도 권씨의 묘소 건너편 바위 곁에 양진암을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면서 아내의 넋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퇴계 선생의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둘째,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독질’, ‘폐질’, ‘잔질’처럼 일종의 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단순히 몸이 아픈 개인적 차원으로 봤지 오늘날처럼 쓸모없고 격리되어야 하는 사회적 차원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장애가 있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정1품 관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장애인 보호법이나 장애인 인권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덜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붉은 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색이라는데 우리 부인이 좋은 일이 생기라고 해준 것인데 어찌 이상하단 말인가.”
퇴계는 권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로 감싸주며 살았다고 한다. 후에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퇴계는 전처소생인 두 아들에게 친어머니와 같이 시묘살이(부모의 상중에 3년 동안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일)를 시켰고, 자신도 권씨의 묘소 건너편 바위 곁에 양진암을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면서 아내의 넋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퇴계 선생의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둘째,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독질’, ‘폐질’, ‘잔질’처럼 일종의 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단순히 몸이 아픈 개인적 차원으로 봤지 오늘날처럼 쓸모없고 격리되어야 하는 사회적 차원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장애가 있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정1품 관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장애인 보호법이나 장애인 인권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에 대한 편견
세계보건기구(WTO)는 “장애란 개개인의 신체 특성과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특성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신체의 ‘기능상 결함’이나 ‘물리적 행동에 제약을 받는 개인의 특성’을 장애로 규정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가 속한 사회의 특성도 장애의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낯설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는 개인에게만 원인을 돌릴 수 없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느냐의 문제까지 포함해서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장애인이나 그 가족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은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적 차원에 인한 것이 훨씬 심각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에 대한 이해부족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고, 편견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져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상으로 분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중에서 몇 가지만 바로잡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 첫 번째 편견은 장애인과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청각장애인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도 대화할 수 있다. 농아인(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글로 적거나 수화통역사의 도움으로, 난청인들은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입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들도 있다. 또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시각을 잃은 쪽보다 시력이 많이 떨어진 저시력 장애인이 훨씬 많다. 점자블록이 노란색인 이유도 저시력 장애인이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도 동일하다. 물론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발달장애인 중에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가 가능한 청년이 있다. 물론 비장애인과 대화하는 것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얼마든지 장애인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편견은 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발달장애인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고 생각하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거나 발달장애인을 격리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스컴이나 영화의 잘못된 영향이거나 분노조절장애나 망상정신이상 등의 이미지가 발달장애인에게 잘못 쓰인 결과이지 사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2000년도 범죄백서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범죄 발생률이 2.5%인 반면 발달장애인은 1.8%로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편견은 대부분의 장애가 유전적 요인에 의한 선천적 장애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중에서 선천적 장애는 5% 미만이다.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89%나 된다. 대부분의 장애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그 원인으로는 질환에 의한 장애 52%, 사고로 인한 장애 36%를 차지한다.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몇몇 증상들(다운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X증후군 등)만이 염색체 이상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을 뿐 대부분의 발달장애는 약물오남용, 공해, 출산전후 산소부족 등이 원인이다. 이처럼 후천적 장애가 훨씬 많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었을 때 당사자나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네 번째 편견은 의학과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장애인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1953년 소아마비 백신을 발견하자 한때 사람들은 의학이 장애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비록 소아마비는 사라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이 생겼다.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중상을 입었지만 생존할 수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기술발전으로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의족을 착용해 비장애인처럼 걸을 수 있게 되고,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지만 장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애인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편견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초중고 학생 약 3천명에게 장애인을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더니 약 80%가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는 표현보다 ‘장애우’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것도 우리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어렵게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턱대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지는 않는다. 주체의식이 강한 장애인일수록 동정 시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매우 자존심이 상해한다. 장애우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장애우, 즉 장애인의 친구 OOO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또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친구로 소개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말이 무관심이다. 왜냐하면 미움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지만 무관심이야말로 사랑의 반대 개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몰이해를 가져오고, 몰이해는 편견을 낳는다. 편견은 차별로 이어져 결국 장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몰아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장애를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라는 말보다 ‘차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 박철웅 목사(장애인사역본부장)
그 첫 번째 편견은 장애인과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청각장애인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도 대화할 수 있다. 농아인(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글로 적거나 수화통역사의 도움으로, 난청인들은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입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들도 있다. 또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시각을 잃은 쪽보다 시력이 많이 떨어진 저시력 장애인이 훨씬 많다. 점자블록이 노란색인 이유도 저시력 장애인이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도 동일하다. 물론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발달장애인 중에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가 가능한 청년이 있다. 물론 비장애인과 대화하는 것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얼마든지 장애인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편견은 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발달장애인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고 생각하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거나 발달장애인을 격리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스컴이나 영화의 잘못된 영향이거나 분노조절장애나 망상정신이상 등의 이미지가 발달장애인에게 잘못 쓰인 결과이지 사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2000년도 범죄백서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범죄 발생률이 2.5%인 반면 발달장애인은 1.8%로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편견은 대부분의 장애가 유전적 요인에 의한 선천적 장애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중에서 선천적 장애는 5% 미만이다.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89%나 된다. 대부분의 장애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며 그 원인으로는 질환에 의한 장애 52%, 사고로 인한 장애 36%를 차지한다.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몇몇 증상들(다운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X증후군 등)만이 염색체 이상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을 뿐 대부분의 발달장애는 약물오남용, 공해, 출산전후 산소부족 등이 원인이다. 이처럼 후천적 장애가 훨씬 많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었을 때 당사자나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네 번째 편견은 의학과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장애인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1953년 소아마비 백신을 발견하자 한때 사람들은 의학이 장애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비록 소아마비는 사라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이 생겼다.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중상을 입었지만 생존할 수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기술발전으로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의족을 착용해 비장애인처럼 걸을 수 있게 되고,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지만 장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애인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편견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초중고 학생 약 3천명에게 장애인을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더니 약 80%가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이라는 표현보다 ‘장애우’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것도 우리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어렵게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턱대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지는 않는다. 주체의식이 강한 장애인일수록 동정 시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매우 자존심이 상해한다. 장애우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장애우, 즉 장애인의 친구 OOO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또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친구로 소개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말이 무관심이다. 왜냐하면 미움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지만 무관심이야말로 사랑의 반대 개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몰이해를 가져오고, 몰이해는 편견을 낳는다. 편견은 차별로 이어져 결국 장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몰아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장애를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라는 말보다 ‘차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 박철웅 목사(장애인사역본부장)
<발문>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이 몰이해를 가져오고,
몰이해는 편견을 낳고, 편견이 차별로 이어져
장애인을 사회에서 몰아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관심 갖는 것이다.
장애를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몰이해는 편견을 낳고, 편견이 차별로 이어져
장애인을 사회에서 몰아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관심 갖는 것이다.
장애를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