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도약과 부흥을 꿈꿉니다!”
“제2의 도약과 부흥을 꿈꿉니다!”
아버지학교 신임 이사장 최성완 장로의 비전과 포부
아버지학교 신임 이사장 최성완 장로의 비전과 포부


(사)두란노아버지학교 운동본부(이하 아버지학교) 새 리더십이 세워졌다. 1대 이사장 故 하용조 목사, 2대 이철 장로, 3대 김성묵 장로에 이어 4대 최성완 장로(이수공동체)가 취임했다.
최성완 장로는 아버지학교 세계화에 크게 공헌했다. 해외에서 아버지학교가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21일(목) 제2의 도약과 부흥을 꿈꾸는 아버지학교 최성완 신임 이사장을 만났다. 최성완 장로는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소년 같은 해맑은 웃음을 가진 중년의 멋진 신사다. 조곤조곤, 부드러운 말투에서 굳건한 다짐과 포부가 엿보였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아버지학교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최성완 장로는 국제통(國際通)이다.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관으로 32년 근무했다는 이력만 놓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영어 아버지학교’를 만들고 확장한 장본인이다. 해외, 특히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아버지학교가 전파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성완 장로에게 신임 이사장 취임 축하와 더불어 소감을 여쭸다.
“1999년 아버지학교를 접하고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역대 이사장님들이 기라성 같고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이라 정말 큰 부담이 되고, 부족한 제가 감히 이 큰 직분을 맡을 수 있을까 떨렸습니다. 제가 하는 거라면 못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순종의 용기를 냈습니다. 떡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저는 그 떡을 잘라서 나눠주기만 하면 되기에 하나님께만 매달려서 가보자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최성완 장로에게 신임 이사장 취임 축하와 더불어 소감을 여쭸다.
“1999년 아버지학교를 접하고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역대 이사장님들이 기라성 같고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이라 정말 큰 부담이 되고, 부족한 제가 감히 이 큰 직분을 맡을 수 있을까 떨렸습니다. 제가 하는 거라면 못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순종의 용기를 냈습니다. 떡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저는 그 떡을 잘라서 나눠주기만 하면 되기에 하나님께만 매달려서 가보자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나는 빚진 자이자,
20점짜리 아버지였다
20점짜리 아버지였다
최성완 장로가 아버지학교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12월이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그에게 아내가 아버지학교를 추천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제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00점은 안 되더라도 80점은 된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아내가 그렇게 원하니까 해준다는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나머지 20점을 채워서 100점짜리 아버지가 되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술, 담배 안 하고 번듯한 직장에, 교회도 잘 다니는 자신에게는 아버지학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아버지학교에서 최성완 장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학교 첫날 조원들끼리 아버지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기억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조원들이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고…”
최성완 장로는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남성들 속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애정의 눈빛과 미소로 바라봐주시는 분이셨다. 이래라저래라 다그치지 않으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하니?”라며 항상 아들의 의견을 물어 주시는 분이셨다. “안 된다”고 하기보다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항상 기다려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아버지학교에서 만난 남성들은 아버지에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최성완 장로는 자신이 빚진 자임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분들을 보면서 제가 빚진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에 빚진 자(생명을 주신 아버지), 축복에 빚진 자(여러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에 빚진 자라는 것을 아버지학교에서 깨달았습니다. 빚진 자로서 나누고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아버지학교 스태프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80점이 아니라 20점짜리 아버지였음을 깨달았다.
“제가 악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20점이 될까 말까 한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내가 왜 그렇게 아버지학교를 추천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 사춘기 아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아버지가 못 됐을 것입니다.”
어느 날, 김성묵 장로가 최성완 장로에게 ‘영어 아버지학교’를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하용조 목사님이 김성묵 장로님에게 가정사역을 만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김성묵 장로님이 어느 날 저에게 영어 아버지학교를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니까 제안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처음에는 그게 어떤 일인지, 어려운지 쉬운지도 모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영어 아버지학교는 해외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꼭 필요했다. 한국어로 된 교재와 강의(통역)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영어 아버지학교가 인도 ‘첸나이’라는 도시에서 열렸다. 그날 이후 영어 아버지학교가 날개를 단 듯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보츠와나,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갔다. 교인들과 선교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영어 아버지학교가 소개되었다.
최성완 장로는 해외 아버지학교를 하면서 잊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다고 고백했다.
“인도 ‘나가랜드’라는 곳에서 아버지학교를 할 때였습니다. 그곳은 인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그 도시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아버지학교를 했는데 세족식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인도 문화에서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만큼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원래대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들이 깔깔대기도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다가 남편들이 발을 씻기고부터 울음소리로 변했습니다. 또 한번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아버지학교를 했는데 무당이 참여했습니다. 그 지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분이 아버지학교에서 지난 삶을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난잡하게 살았다며 주술 도구를 불태우고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00점은 안 되더라도 80점은 된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학교에 가기 싫었는데 아내가 그렇게 원하니까 해준다는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나머지 20점을 채워서 100점짜리 아버지가 되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술, 담배 안 하고 번듯한 직장에, 교회도 잘 다니는 자신에게는 아버지학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아버지학교에서 최성완 장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학교 첫날 조원들끼리 아버지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기억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조원들이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고…”
최성완 장로는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남성들 속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애정의 눈빛과 미소로 바라봐주시는 분이셨다. 이래라저래라 다그치지 않으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하니?”라며 항상 아들의 의견을 물어 주시는 분이셨다. “안 된다”고 하기보다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항상 기다려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아버지학교에서 만난 남성들은 아버지에게 너무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최성완 장로는 자신이 빚진 자임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분들을 보면서 제가 빚진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에 빚진 자(생명을 주신 아버지), 축복에 빚진 자(여러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에 빚진 자라는 것을 아버지학교에서 깨달았습니다. 빚진 자로서 나누고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아버지학교 스태프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80점이 아니라 20점짜리 아버지였음을 깨달았다.
“제가 악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20점이 될까 말까 한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내가 왜 그렇게 아버지학교를 추천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 사춘기 아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아버지가 못 됐을 것입니다.”
어느 날, 김성묵 장로가 최성완 장로에게 ‘영어 아버지학교’를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하용조 목사님이 김성묵 장로님에게 가정사역을 만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김성묵 장로님이 어느 날 저에게 영어 아버지학교를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니까 제안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처음에는 그게 어떤 일인지, 어려운지 쉬운지도 모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영어 아버지학교는 해외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꼭 필요했다. 한국어로 된 교재와 강의(통역)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영어 아버지학교가 인도 ‘첸나이’라는 도시에서 열렸다. 그날 이후 영어 아버지학교가 날개를 단 듯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보츠와나,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갔다. 교인들과 선교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영어 아버지학교가 소개되었다.
최성완 장로는 해외 아버지학교를 하면서 잊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다고 고백했다.
“인도 ‘나가랜드’라는 곳에서 아버지학교를 할 때였습니다. 그곳은 인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그 도시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아버지학교를 했는데 세족식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인도 문화에서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만큼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원래대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들이 깔깔대기도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다가 남편들이 발을 씻기고부터 울음소리로 변했습니다. 또 한번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아버지학교를 했는데 무당이 참여했습니다. 그 지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분이 아버지학교에서 지난 삶을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난잡하게 살았다며 주술 도구를 불태우고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외 선교와 함께 가는 아버지학교
사회적 멘토 역할 하는 아버지학교
사회적 멘토 역할 하는 아버지학교
최성완 장로가 아버지학교 이사장이라는 큰 직분을 감당하면서 포부와 비전을 밝혔다.
“아버지학교는 온누리교회에서 시작했고, 온누리교회에 뿌리를 둔 성령 운동입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드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온누리교회 해외 선교와 함께 가는 아버지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누리교회 선교사님들이 꼭 아버지학교를 경험하고 개인의 가정회복뿐만 아니라 현지 선교사역과 전도의 좋은 도구로 아버지학교를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온누리교회 선교기관(NGO 더멋진세상, SWIM 등)에서도 영어 아버지학교를 개최해서 현지인 선교와 가정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공동체 해외 아웃리치를 갈 때도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공동체에서는 괌 아버지학교를, 강남B공동체에서는 이라크 아버지학교(온라인)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버지학교가 온누리교회 해외 선교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또 가정에서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아버지 역할에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라는 아이들(보육원, 보호종료아동 등)에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회적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버지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아버지와 가정, 교회와 사회가 오롯이 서도록 재건하는 과정입니다. 아버지학교의 수많은 현장에서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버지학교운동이 계속 아름다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성도가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아버지학교 이사장이라는 큰 직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잘 빚어가며 사용하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아버지학교가 아름다운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국내외 많은 동역자와 함께 아버지학교 제2의 부흥과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아버지학교는 온누리교회에서 시작했고, 온누리교회에 뿌리를 둔 성령 운동입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드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온누리교회 해외 선교와 함께 가는 아버지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누리교회 선교사님들이 꼭 아버지학교를 경험하고 개인의 가정회복뿐만 아니라 현지 선교사역과 전도의 좋은 도구로 아버지학교를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온누리교회 선교기관(NGO 더멋진세상, SWIM 등)에서도 영어 아버지학교를 개최해서 현지인 선교와 가정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공동체 해외 아웃리치를 갈 때도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공동체에서는 괌 아버지학교를, 강남B공동체에서는 이라크 아버지학교(온라인)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버지학교가 온누리교회 해외 선교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또 가정에서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아버지 역할에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라는 아이들(보육원, 보호종료아동 등)에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회적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버지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학교는 아버지와 가정, 교회와 사회가 오롯이 서도록 재건하는 과정입니다. 아버지학교의 수많은 현장에서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버지학교운동이 계속 아름다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성도가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아버지학교 이사장이라는 큰 직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잘 빚어가며 사용하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아버지학교가 아름다운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국내외 많은 동역자와 함께 아버지학교 제2의 부흥과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