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문가 기고

이 시대 교회공동체의 의미와 역할 
 
인류의 역사는 AD(主後)와 BC(主前)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건 전과 후로 나눈다. 예수님이 오신 사건의 중심에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교회)가 새롭게 창조된 역사가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창조되었듯이 교회공동체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는 말씀 위에 세워졌다. 만물은 말씀으로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의 공동체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서 새로워진 영적으로 거듭난(창조된) 성도들로 구성되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모이기를 힘쓰는 아름답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 말고도 사랑이 가득한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깊은 연대를 통해 하나 되어 군대보다 강한 공동체도 있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원한 공동체이므로 없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공동체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 것도 하나님의 공동체는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혁명적인 메시지
 
사람들의 공동체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공동체를 구별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느냐에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선포하였고, 그 말씀에 의해 강퍅했던 이스라엘 백성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말씀에 반응하고 회개하고 믿음의 공동체가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알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말씀으로 세우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매우 정교하면서도 당시 시대의 사상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혁명적인 메시지를 선포한다. 
첫째, ‘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선포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든 신전에 계신 분이 아니고,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행 17:24~26). 일부 기독교인들의 기복신앙(祈福信仰)이 큰 문제인 것은 하나님께 희생과 헌신을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축복의 도구로 여길 뿐 순종의 대상으로 경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낌없이 복 주시는 분이지만, 우리에게 조종당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선포처럼 우리가 기도하기 전부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계시는 분이다. 또한 건물 안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공동체는 가정과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 인류의 모든 족속이 한 혈통이다. 바울의 이 두 번째 메시지에는 당시로서는 정말로 위험한 내용이 담겨있다. 황제, 귀족, 노예 계급이 존재하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혈통이라는 것은 황제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 메시지는 바르고 정확하다. 진리의 말씀은 왜곡된 세상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바울은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담대하게 세상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모든 민족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성경적일뿐만 아니라 과학적이다. 이미 1987년과 1995년 <Nature> 논문들을 통해 모든 여성들이 한 여성의 후손이며, 모든 남성들도 한 남성의 후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 부부로부터 나온 모든 사람들이 흑인, 백인, 황색인종 등 피부색이 다양해졌지만 피부색은 인간의 다양성의 일부일 뿐이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한 부부로부터 나온 형제자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공동체는 아담의 잃어버린 모든 후손들을 대상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서 전 세계 인류로 구성된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교회공동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정신, 창조 원리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그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사도행전은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교회공동체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이 말씀은 후에 윌버포스와 링컨 등을 통해 노예해방의 역사를 일으켰다. 교회공동체는 언제나 시대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혁명적인 메시지를 분노와 폭력으로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죄인인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노예(종)의 신분에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권면하고 있다(엡 6:5). 이것은 세상 자체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능력이 프로테스탄트혁명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기에 비폭력 독립만세운동으로 빛처럼 나타났다. 
 
“나를 본받으라”
신앙의 선배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현재와 같이 어렵고 어두운 시대에 왜 빛처럼 나타나지 못할까? 시대의 사상을 거스르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처럼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대로 사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진리의 말씀이 교회 내에서도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 않는다. 
가장 시급한 일 중에 하나는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신학교에서 창세기를 신화로 가르치고 있고, 아브라함조차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배우고 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지지하는 교단도 있는 실정이다. 자신들의 신학이론을 성경말씀보다 위에 두고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 신학교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진화론을 인정하는 유신진화론(진화창조론)이 성도들 사이에서도 넓게 퍼져있다. 주일학교 교사들 중에서 유신진화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경우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나?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하나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것을 꿈꿀 수 있나? 영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지금 시대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진리의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바울이 “나를 본 받으라”(고전 4:16, 11:1, 빌 3:17)고 권면한 것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가 필요하다. 특히 다음세대에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선배들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부모만으로는 신앙전수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떤 부모가 사춘기 청소년들을 자신 있게 신앙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교회의 조직과 운영으로는 신앙의 선배를 결코 만날 수 없다. 교회공동체 활동이 유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청년부, 성인부로 철저하게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공동체 구조가 필요하다. 다양한 세대와 가정들이 함께 모여 순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면서, 함께 신앙과 지혜를 나누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한부모가정 아이들도 쉽게 또래들을 만나고, 신앙을 가진 어른들의 보호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꿈꾸고 계시지 않을까?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 의과대학)

<발문>

“문제는 진리의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런 사람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