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하나님의 관점
신앙에세이
하나님의 관점
벌써 2020년이 두 달도 채 안 남았다. 2020년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올해는 ‘코로나19의 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모든 뉴스와 관심사가 바이러스에 있었던 한 해였다. 매일 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가 뉴스에 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컨트롤 되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전 세계의 관심사였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에서 보내고 있는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제목을 생각해보았다.
올해 감사제목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자녀 출산이다. 선배 목회자들로부터 “자녀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아가고 있다. 아빠가 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묵상하며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
첫째, 단순한 기도이다. 올해 3월 건강한 사내아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다. 정말 신기하고 오묘했다. 초보아빠인 나는 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을 알아갔다.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필요한 부분을 즉각 채워주는 발전이 있었다. 아들은 때가 되면 배고프다고 울고, 졸릴 때 울고, 무엇인가 불편하면 울었다. 아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울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아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는 우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아들의 울음을 다르게 생각해보니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온종일 울음소리를 낼 뿐인데 부모는 그때마다 알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정적으로 곤고할 때도 있고, 원하는 일이 실패해서 낙심할 때도 있다. 관계의 문제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울기만 하면 된다. 사람 앞에서 울면 잠깐의 위로로 끝나지만, 하나님 앞에 울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신다(시 30:11). 역전의 하나님이시다
둘째, 성장의 기쁨이다. 이제 200일 갓 넘은 아들을 키우면서 새롭게 생긴 취미가 있다. 아들을 보면서 나에게 기쁨을 주는 순간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순간은 신생아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요즘 아들은 울음소리가 제법 커졌고,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도 하고, 뒹굴뒹굴하고, 목에 힘이 들어가 혼자 앉아 있기도 한다. 제법 어린아이처럼 웃음소리를 내는 행동들을 순간 포착해서 담고 있다.
아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나에게 큰 기쁨인데,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정체된 신앙이 아니라 성장이 일어날 때 너무나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의 연수(年數)가 오래되고, 많은 섬김에 능숙하며, 리더라는 타이틀 등 외적 성장이 아니라 내적인 성장이 일어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만을 찬양하며, 일상생활에서 순결한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가는 내적인 성장 말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 안사무엘 목사(SNS청년부)
올해 감사제목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자녀 출산이다. 선배 목회자들로부터 “자녀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아가고 있다. 아빠가 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묵상하며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
첫째, 단순한 기도이다. 올해 3월 건강한 사내아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다. 정말 신기하고 오묘했다. 초보아빠인 나는 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을 알아갔다.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필요한 부분을 즉각 채워주는 발전이 있었다. 아들은 때가 되면 배고프다고 울고, 졸릴 때 울고, 무엇인가 불편하면 울었다. 아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울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아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는 우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아들의 울음을 다르게 생각해보니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온종일 울음소리를 낼 뿐인데 부모는 그때마다 알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정적으로 곤고할 때도 있고, 원하는 일이 실패해서 낙심할 때도 있다. 관계의 문제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울기만 하면 된다. 사람 앞에서 울면 잠깐의 위로로 끝나지만, 하나님 앞에 울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신다(시 30:11). 역전의 하나님이시다
둘째, 성장의 기쁨이다. 이제 200일 갓 넘은 아들을 키우면서 새롭게 생긴 취미가 있다. 아들을 보면서 나에게 기쁨을 주는 순간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순간은 신생아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요즘 아들은 울음소리가 제법 커졌고,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도 하고, 뒹굴뒹굴하고, 목에 힘이 들어가 혼자 앉아 있기도 한다. 제법 어린아이처럼 웃음소리를 내는 행동들을 순간 포착해서 담고 있다.
아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나에게 큰 기쁨인데,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정체된 신앙이 아니라 성장이 일어날 때 너무나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의 연수(年數)가 오래되고, 많은 섬김에 능숙하며, 리더라는 타이틀 등 외적 성장이 아니라 내적인 성장이 일어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만을 찬양하며, 일상생활에서 순결한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가는 내적인 성장 말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 안사무엘 목사(SNS청년부)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