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과 후삼국통일 그리고 남북통일
통일칼럼
/윤영섭 장로(통일위원회)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로 가는 길이 매우험난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없다. 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정치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남북통일이 위협이 되거나 적어도 손해가 되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매우 타당한 말이지만 역사가 말해 주는 통일은 조금 다르다.역사는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또는군사적 힘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민들의 정신적 성숙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우리 역사상 2번의 통일을 겪었다, 신라의삼국통일(676년)이 하나고, 그 260년 후 후삼국통일(936년)이 또 다른 하나이다. 외국의 경우 베트남(1975년)과 독일(1990년)의 통일이있었다. 이 선례들로부터 통일에 대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을 참고해서 정리했다.
삼국통일은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여 비로소 한민족을 형성함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근간을 세운 민족사에 빛날 업적이다. 나라에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벗을 믿음으로써 사귀고, 살생(殺生)을 삼가고,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는 정신이 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부정적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첫째, 삼국통일은 동족이라는 개념이 없던 세 개의 다른 국가를 당이라는 외세의힘을 빌려 정복·통합한 것으로 평화적 통일이아닌 무력통일이었다. 둘째, 삼국통일이 영토면에서는 완전한 통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백제의 영토는 모두 확보했지만 민족사적으로중요한 고구려 영토는 원산과 대동강을 연결하는 선 이하만 차지한 채 대부분을 포기했다.이는 완전한 통일을 이루려는 우리의 염원과다르다.
한편, 고려 왕건의 후삼국통일은 세 가지 긍정적인 특징이 있다고 평가된다. 첫째, 태조왕건은 처음부터 고구려를 계승하고 북방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정신에 뿌리를 두었고, 둘째, 남쪽으로 신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포용정책과 끈기 있는 국력 배양과 주변 대국을 이용하는 책략으로 민심을 얻어 통합을 이루었으며, 셋째, 무력충돌을 최소화하고, 통일 이후신라의 왕족과 유신들을 정치적 보복 없이 받아들였다. 이는 향후 1,000년 이상 우리 민족이 동족 의식을 키워 가는데 큰 역할을 하게되었다. 요약하면 고려의 통일은 포용의 유화정책과 국력배양, 선정과 지략으로 민심을 얻어 이웃나라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들게 만든결과이다.
외국의 예로 베트남 통일은 어떤가? 베트남전쟁은 후반에 월맹군이 개입하기는 하였으나 당초 베트콩 유격대가 부패한 월남정권에대항함으로 시작되었다. 베트콩 전력 8만 명이 열약한 화력과 장비를 가지고 엄청난 첨단무기로 무장한 백수십만의 월남군, 미국군과한국군을 상대로 15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승리했다. 베트콩과 월맹에 의한 무력통일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지만 나름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부패한 월남정권은민심을 얻지 못한 반면 베트콩군은 가는 곳마다 선정을 펴 민심을 얻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독일의 통일은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으로이룬 것이 아니다. 서독정부와 서독국민의 성숙한 도덕성과 문화의식에 의해 무력 없이 이루어졌다. 만약 당시 동독 당과 정부요원, 군경간부들이 서독에 흡수되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대항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독 요원들은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해외탈출이나 망명 또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독일의 통일은 서독의 도덕적 우위가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콜 수상 등 서독의 리더들이 크리스천이었으며, 통일을 주도한 동독의 평화시위가 라이프치히 교회를중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크다.
남북통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북한보다도덕적 우위에 서서 동포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기를바라게 될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사랑과 포용의정신으로 교회가 북한을 끌어안는 일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