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리치특집] 평생 잊지 못할 축복
여호수아청년부-케냐 아웃리치
평생 잊지 못할 축복
나는 늘 재정적인 이유로 아웃리치 지역을 동남아로만 제한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목사님의 한마디가 마음 깊이 꽂혔다. 목사님의 그 말씀으로 인해 평생 갈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케냐 땅을 마음에 품었고, 너무나도 명확한 하나님의 응답과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그 길을 떠났다.
사막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 험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해서도 최북단까지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힘든 여정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도 아웃리치 팀원 중 단 한 사람도 아프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차 안은 찬양과 나눔이 가득했다.
사역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부족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마들과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교제를 나눴다. 나중에 들어보니 마마들은 우리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손에 꼭 쥐고 한참 동안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 거울을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데도 여전히 많은 것이 없다고 불평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는 문명의 혜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울리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문명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며 사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그 생각이 계속됐다. 그러다 두 개의 답이 마음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려온 답은 ‘모든 문명을 누리는 것이 곧 축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답은 저녁 모임 때 목사님이 전해주신 ‘먼저 받은 자들이 나누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사역이 끝나고 사막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크심이 마음 깊이 다가왔고, 서울에서 부딪히고, 안고 있던 고민과 걱정들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광야’라는 단어가 차로 오랜 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길과 현실을 직접 겪으며 내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자리 잡았다.
블레싱 시간에 선교사님의 자녀인 하윤이와 예윤이에게 “언니, 오빠들이 와서 좋아?”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언니, 오빠들이 와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도 좋아요.”라고 답했다. 10살, 11살밖에 안 된 아이들의 이 대답이 아웃리치 기간 내내 내 마음을 울렸다.
선교사님은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 속의 선교사님들처럼, 오직 예수님만 아는 분이었다. 복음 전할 생각으로 가득했고, 강도의 위협이 가득한 곳이지만 가장 복음이 필요한 곳이기에 그곳에서 살고 계셨다. 사막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일주일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아웃리치팀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전선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 또한 아웃리치의 중요한 사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2016년부터 매해 아웃리치를 다녀왔는데, 이렇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은 처음이었다. 우리 팀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자연스럽게 내년에는 어떤 사역을 하고, 어떤 물품을 가져가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니 처음 케냐라는 나라를 품게 하신 순간부터 다녀온 지금까지 여정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 팀에게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광야와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셨고, 우리가 작은 손길로 섬길 때조차 그분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났다. 이 여정을 돌아보며 결심했다. 앞으로 어떠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든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기꺼이 걸어가겠다고 말이다. 하나님이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보여주신 작은 손길과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 축복이다.
/ 전아라 자매(여호수아청년부)
사막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 험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해서도 최북단까지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힘든 여정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도 아웃리치 팀원 중 단 한 사람도 아프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차 안은 찬양과 나눔이 가득했다.
사역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부족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마들과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교제를 나눴다. 나중에 들어보니 마마들은 우리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손에 꼭 쥐고 한참 동안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 거울을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데도 여전히 많은 것이 없다고 불평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는 문명의 혜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울리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문명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며 사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그 생각이 계속됐다. 그러다 두 개의 답이 마음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려온 답은 ‘모든 문명을 누리는 것이 곧 축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답은 저녁 모임 때 목사님이 전해주신 ‘먼저 받은 자들이 나누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사역이 끝나고 사막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크심이 마음 깊이 다가왔고, 서울에서 부딪히고, 안고 있던 고민과 걱정들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광야’라는 단어가 차로 오랜 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길과 현실을 직접 겪으며 내 안에서 새로운 의미로 자리 잡았다.
블레싱 시간에 선교사님의 자녀인 하윤이와 예윤이에게 “언니, 오빠들이 와서 좋아?”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언니, 오빠들이 와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도 좋아요.”라고 답했다. 10살, 11살밖에 안 된 아이들의 이 대답이 아웃리치 기간 내내 내 마음을 울렸다.
선교사님은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 속의 선교사님들처럼, 오직 예수님만 아는 분이었다. 복음 전할 생각으로 가득했고, 강도의 위협이 가득한 곳이지만 가장 복음이 필요한 곳이기에 그곳에서 살고 계셨다. 사막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일주일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아웃리치팀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전선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 또한 아웃리치의 중요한 사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2016년부터 매해 아웃리치를 다녀왔는데, 이렇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은 처음이었다. 우리 팀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자연스럽게 내년에는 어떤 사역을 하고, 어떤 물품을 가져가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니 처음 케냐라는 나라를 품게 하신 순간부터 다녀온 지금까지 여정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 팀에게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광야와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셨고, 우리가 작은 손길로 섬길 때조차 그분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났다. 이 여정을 돌아보며 결심했다. 앞으로 어떠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든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기꺼이 걸어가겠다고 말이다. 하나님이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보여주신 작은 손길과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 축복이다.
/ 전아라 자매(여호수아청년부)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