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바라봄과 하나님 나라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바라봄과 하나님 나라
10년 전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곤 했다. 삼킬 듯 달려들던 파도는 매번 물거품으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 침묵 가운데 파도의 속살거림이 들렸고, 그것은 우주의 찬양 소리로 변했다. 여호와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시간은 영원 속으로, 존재는 그분의 숨결로 가득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바닷가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은 일상이 되었고, 물거품을 삼키던 인적없는 백사장은 어느새 영혼의 기도처가 되었다.
세계관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다. 눈이 밝으면 현상 너머의 본질을 밝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살지만, 정작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잘 안다는 착각과 익숙함에 취해 소중한 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오해를 쌓아간다. 각종 사건 사고의 뉴스를 접하며 분노하고,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SNS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열심히 훔쳐보지만, 채색된 안경을 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기에 왜곡된 감정에 휩싸인다.
21세기 인류는 식량과 물 부족, 양극화, 전염병, 핵전쟁, 오존층 파괴, 대기 오염, 온난화, 미세플라스틱 등 엄청난 도전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이기심과 경쟁심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소외와 비인간화는 깊어졌고, 심각한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나님 자리를 빼앗은 인본주의, 인간 본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냄비 속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창조주의 눈으로 뒤틀린 자연현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타락한 인간을 이해하며,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요동치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구속사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 천국은 이미 왔고, 지금 오고 있으며, 그날에 완성될 것이다. 창조와 타락, 구속과 재림이라는 패러다임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면 해석되지 않던 시간의 흐름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해산의 고통 소리로 들린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권, 그분의 통치를 받는 피조물과 그 영역을 의미한다. 여호와는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온 세상은 모두 그분의 소유로써 그 주권 아래 있다. 인류가 타락해서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이 한 사람을 부르셨고, 새로운 민족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이 사탄에 매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을 성취하셨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처음 계획된 대로 완성될 것이다.
본래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 뜻대로 세상을 다스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마땅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그분이 통치하는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사명’이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분의 통치도 인정하지 않는 불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이 땅에서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하다. ‘바라봄’은 익숙함을 낯섦으로, 뻔한 이야기를 그분의 이야기로 만든다.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여호와의 숨결을 느낀다. 나는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신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창조하고 계신다.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일하셨던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꾼으로 초청하신다.
세계관이란 ‘바라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는 만유를 다스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거대한 손을 보고 있다. 섭리 편에서 인생의 불행과 역사의 부조리를 해석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파했던 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024년이 밝았다. 역사는 전진하고 있고, 천국은 오늘 더 가까이 와 있다. 오늘 우리는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현상 너머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 유현목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세계관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다. 눈이 밝으면 현상 너머의 본질을 밝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살지만, 정작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잘 안다는 착각과 익숙함에 취해 소중한 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오해를 쌓아간다. 각종 사건 사고의 뉴스를 접하며 분노하고,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SNS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열심히 훔쳐보지만, 채색된 안경을 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기에 왜곡된 감정에 휩싸인다.
21세기 인류는 식량과 물 부족, 양극화, 전염병, 핵전쟁, 오존층 파괴, 대기 오염, 온난화, 미세플라스틱 등 엄청난 도전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이기심과 경쟁심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소외와 비인간화는 깊어졌고, 심각한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나님 자리를 빼앗은 인본주의, 인간 본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냄비 속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창조주의 눈으로 뒤틀린 자연현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타락한 인간을 이해하며,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요동치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구속사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 천국은 이미 왔고, 지금 오고 있으며, 그날에 완성될 것이다. 창조와 타락, 구속과 재림이라는 패러다임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면 해석되지 않던 시간의 흐름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해산의 고통 소리로 들린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권, 그분의 통치를 받는 피조물과 그 영역을 의미한다. 여호와는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온 세상은 모두 그분의 소유로써 그 주권 아래 있다. 인류가 타락해서 소망이 없을 때 하나님이 한 사람을 부르셨고, 새로운 민족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이 사탄에 매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을 성취하셨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처음 계획된 대로 완성될 것이다.
본래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 뜻대로 세상을 다스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마땅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그분이 통치하는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사명’이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분의 통치도 인정하지 않는 불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이 땅에서 창조 질서대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하다. ‘바라봄’은 익숙함을 낯섦으로, 뻔한 이야기를 그분의 이야기로 만든다.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여호와의 숨결을 느낀다. 나는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신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창조하고 계신다.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일하셨던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꾼으로 초청하신다.
세계관이란 ‘바라봄’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는 만유를 다스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거대한 손을 보고 있다. 섭리 편에서 인생의 불행과 역사의 부조리를 해석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파했던 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024년이 밝았다. 역사는 전진하고 있고, 천국은 오늘 더 가까이 와 있다. 오늘 우리는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현상 너머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 유현목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