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바라봄과 하나님의 형상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바라봄과 하나님의 형상
19세기 초 백인이 호주로 이주했을 때 원주민을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한 동물로 취급했다. 아이는 잡아 노예로, 여자는 성노예로 부리고, 남자는 짐승처럼 사냥했다. 먼 옛날 일이 아니다. 사람을 태워죽이고, 목을 자르고, 어린 소녀를 납치해 노리개로 삼는다는 뉴스가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 안에 악마성이 잠재해 있다는 점이다.
세계관은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의 포괄적 틀’이다. 그 가운데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인간관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이전에 어떤 존재였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어떤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세계, 타인 그리고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학적 틀이 있어야 한다.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관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 이해할 때 현상계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으셨다. 만물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창조의 꽃이었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을 특별하게 지으셨는데, 남자는 흙으로 빚은 다음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만드셨다.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창조주의 대리자로서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며, 인간은 그 하나님의 반영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세상에 비추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 존재 목적이 하나님을 비춰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세상에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인간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다. 비록 그가 타락한 인간이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손상되었을지라도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기에 여전히 하나님의 한 조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작품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중풍 병자를 일으키고,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고, 사마리아 여인을 품어주고,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다. 죄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셨다. 죄의 바이러스가 영혼을 병들게 해 파괴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백신처럼 감춰진 죄를 무력화시키고, 감추어진 조각을 회복시킨다. 이로써 인간은 창조 본연의 인생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며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했다. 21세기 시장 경제는 엄청난 자본을 쌓아 도시의 번영을 가져왔다. 유토피아를 약속했던 과학기술문명은 오존층 파괴, 이상 기온, 해수면 상승, 대기 오염을 가져왔다. 인류는 양극화, 물과 식량 고갈, 핵전쟁, 전염병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기주의에 빠진 인간은 움켜쥔 손을 놓지 못한 채 여전히 탐욕을 좇고 있고, 인류는 기관사 없는 기차처럼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맹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이 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고, 순자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게 문제의 근본 원인이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만이 해결책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천사가 될 가능성과 악마가 될 위험성을 소유한 이중적이고, 불안정한 존재다. 중생(衆生)을 통해 거듭날 때 인간은 회복할 수 있고, 그것이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해결책이다.
악의 평범성(Banalitat des Bosen)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행할 수 있다. 악을 행하는 자는 가학적으로 변해 양심이 마비되고, 희생양들은 저항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치유하고, 무너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신다. 나는 망가져 버린 인간 안에 빛나는 보석을 보고 있는가?
/ 유현목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세계관은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의 포괄적 틀’이다. 그 가운데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인간관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이전에 어떤 존재였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어떤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세계, 타인 그리고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학적 틀이 있어야 한다.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관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 이해할 때 현상계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으셨다. 만물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창조의 꽃이었다.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을 특별하게 지으셨는데, 남자는 흙으로 빚은 다음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만드셨다.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창조주의 대리자로서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며, 인간은 그 하나님의 반영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세상에 비추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 존재 목적이 하나님을 비춰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세상에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인간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다. 비록 그가 타락한 인간이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손상되었을지라도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기에 여전히 하나님의 한 조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작품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중풍 병자를 일으키고,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고, 사마리아 여인을 품어주고,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다. 죄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셨다. 죄의 바이러스가 영혼을 병들게 해 파괴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백신처럼 감춰진 죄를 무력화시키고, 감추어진 조각을 회복시킨다. 이로써 인간은 창조 본연의 인생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며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했다. 21세기 시장 경제는 엄청난 자본을 쌓아 도시의 번영을 가져왔다. 유토피아를 약속했던 과학기술문명은 오존층 파괴, 이상 기온, 해수면 상승, 대기 오염을 가져왔다. 인류는 양극화, 물과 식량 고갈, 핵전쟁, 전염병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기주의에 빠진 인간은 움켜쥔 손을 놓지 못한 채 여전히 탐욕을 좇고 있고, 인류는 기관사 없는 기차처럼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맹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이 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고, 순자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게 문제의 근본 원인이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만이 해결책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천사가 될 가능성과 악마가 될 위험성을 소유한 이중적이고, 불안정한 존재다. 중생(衆生)을 통해 거듭날 때 인간은 회복할 수 있고, 그것이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해결책이다.
악의 평범성(Banalitat des Bosen)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행할 수 있다. 악을 행하는 자는 가학적으로 변해 양심이 마비되고, 희생양들은 저항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치유하고, 무너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신다. 나는 망가져 버린 인간 안에 빛나는 보석을 보고 있는가?
/ 유현목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