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 6:6).
맛있는 말씀 해설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 6:6).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 6:6).
기도는 신앙의 본질적인 행위이자 성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며, 믿음이 더욱 깊어짐을 누리게 된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다. 기도는 그 형태와 목적, 내용과 표현 방식 등에 따라 통성기도, 침묵기도, 중보기도, 묵상기도, 방언기도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 중 <마태복음> 6장 6절에서는 ‘개인기도’의 본질과 태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먼저 <마태복음> 6장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산상수훈 한 부분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과 경건을 가르친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기도 태도를 지적하면서 진실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그들은 일부러 회당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사람들의 인정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결과 그들의 기도는 장황하고 반복적이며 형식적인 주문처럼 변질했고, 금식할 때조차 초췌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위선적 태도를 꾸짖으시며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는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하며 진실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기도가 외적 형식과 행위에 치중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음의 중심과 내면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본문에서 언급된 ‘방’(개역개정에서는 ‘골방’)은 헬라어로 ‘타메이온(ταμεον)’인데, 창고나 내실, 침실 등 외부와 단절된 은밀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곡식이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방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장소다. 그러므로, 방에 들어가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공간에서 하는 기도를 의미하기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서 가장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따로 기도하시며 이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기도의 태도와 기도하는 자의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지, 공적인 기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이는 기도의 본질과 핵심이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과 내면의 태도임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화려한 언어나 기도의 길이를 보며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살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바쁘고 분주한 삶에 치여서 어쩌면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보다도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줄과 같다. 분주한 삶의 소음을 낮추고, 영혼의 산만함을 잠재우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은밀한 중에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누리게 될 것이다.
/ 박천종 목사(동작공동체)
먼저 <마태복음> 6장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산상수훈 한 부분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과 경건을 가르친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기도 태도를 지적하면서 진실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그들은 일부러 회당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사람들의 인정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결과 그들의 기도는 장황하고 반복적이며 형식적인 주문처럼 변질했고, 금식할 때조차 초췌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위선적 태도를 꾸짖으시며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는 오롯이 하나님께 집중하며 진실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기도가 외적 형식과 행위에 치중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음의 중심과 내면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본문에서 언급된 ‘방’(개역개정에서는 ‘골방’)은 헬라어로 ‘타메이온(ταμεον)’인데, 창고나 내실, 침실 등 외부와 단절된 은밀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곡식이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방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장소다. 그러므로, 방에 들어가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공간에서 하는 기도를 의미하기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서 가장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따로 기도하시며 이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기도의 태도와 기도하는 자의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지, 공적인 기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이는 기도의 본질과 핵심이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과 내면의 태도임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화려한 언어나 기도의 길이를 보며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살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바쁘고 분주한 삶에 치여서 어쩌면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보다도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줄과 같다. 분주한 삶의 소음을 낮추고, 영혼의 산만함을 잠재우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은밀한 중에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누리게 될 것이다.
/ 박천종 목사(동작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