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롬 7:24)
맛있는 말씀 해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롬 7:24)
이 말씀은 독실하고, 믿음 좋은 대표적인 기독교인 바울이 자신의 갈등을 직접 고백하는 내용이다. 성령의 사람이자 사도의 대표이고, 신약 27권 중에서 13권을 쓴 대표적인 크리스천인 바로 그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그런데 이 고백이 사도 바울만의 문제이고 고백일까? 이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자 내면의 갈등이다.
<로마서> 1~6장까지 바울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며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7장에서는 의롭다 칭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백과 갈등을 말한다. 겉으로는 의로워졌지만, 죄라는 야수가 내면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갈등한다.
‘갈등(葛藤)’은 ‘칡 갈’과 ‘등나무 등’자를 사용한다. 한자어 그대로 ‘칡과 등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서로 얽혀 자라는 특성이 있다.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칡의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즉 ‘갈(藤)’은 ‘등(藤)’을 감고, ‘등(藤)’은 ‘갈(藤)’을 감아 올라간다. 이처럼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듯이 까다롭게 뒤엉켜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갈등’이다. 따라서 두 식물은 아무리 길게 뻗어 자라도 화합해서 만날 수 없다. ‘갈등’의 어원은 두 나무줄기의 속성에서 비롯됐다. 사도 바울은 칡과 등나무 같은 신앙적인 모순과 갈등을 고백한다.
분명히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며 의로운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율법은 신령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선한 것을 행하지 못하고, 자신이 증오하는 것을 행하는 모습 즉, 자신 안에 죄라는 야수에게 지배받음을 고백하는 것이다.이 본문을 일부 신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의 모습,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모습을 고백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바울의 이 고백은 현재형으로, 지금 겪는 갈등을 고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글을 쓰는 시점에도 율법은 신령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지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할수록 죄에 붙잡혀 죄의 종노릇 하는 자신만 발견한다. 자신이 겪는 이 신앙적인 갈등과 모순을 말하며 자신이 행하는 것을 자기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갈등은, 바울의 넘어짐은 안 좋은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것은 ‘건강한 갈등’이다. 건강한 갈등이 있기에 인간의 내면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십계명 중에 마지막 계명이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이다. 다른 아홉 개의 계명과 다른 게 있는데, 다른 것은 ‘행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계명은 ‘내 안에 죄성’을 말한다. 마지막 계명은 내가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을 방치하면 다른 죄를 유발하고,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구나, 곤고한 사람이구나”라면서 탄식하고 절규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누가 구해 달라고 SOS를 보낸다. <로마서> 7장의 갈등과 탄식이 있기에 8장의 영광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시편> 22편의 탄식이 있기에 나오는 <시편> 23편의 고백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시 23:1).
탄식 없이는 축복도 없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일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처럼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깨닫고, 알면 알수록 죄를 증오하지만, 그 증오하는 죄와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며 갈등하기를 권면한다. 바울처럼 탄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망의 몸에서 필자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축복한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롬 7:24).
/ 전병천 목사(마포공동체)
<로마서> 1~6장까지 바울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며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7장에서는 의롭다 칭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백과 갈등을 말한다. 겉으로는 의로워졌지만, 죄라는 야수가 내면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갈등한다.
‘갈등(葛藤)’은 ‘칡 갈’과 ‘등나무 등’자를 사용한다. 한자어 그대로 ‘칡과 등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서로 얽혀 자라는 특성이 있다.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칡의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즉 ‘갈(藤)’은 ‘등(藤)’을 감고, ‘등(藤)’은 ‘갈(藤)’을 감아 올라간다. 이처럼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듯이 까다롭게 뒤엉켜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갈등’이다. 따라서 두 식물은 아무리 길게 뻗어 자라도 화합해서 만날 수 없다. ‘갈등’의 어원은 두 나무줄기의 속성에서 비롯됐다. 사도 바울은 칡과 등나무 같은 신앙적인 모순과 갈등을 고백한다.
분명히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며 의로운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율법은 신령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선한 것을 행하지 못하고, 자신이 증오하는 것을 행하는 모습 즉, 자신 안에 죄라는 야수에게 지배받음을 고백하는 것이다.이 본문을 일부 신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의 모습,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모습을 고백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바울의 이 고백은 현재형으로, 지금 겪는 갈등을 고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글을 쓰는 시점에도 율법은 신령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지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할수록 죄에 붙잡혀 죄의 종노릇 하는 자신만 발견한다. 자신이 겪는 이 신앙적인 갈등과 모순을 말하며 자신이 행하는 것을 자기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갈등은, 바울의 넘어짐은 안 좋은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것은 ‘건강한 갈등’이다. 건강한 갈등이 있기에 인간의 내면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십계명 중에 마지막 계명이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이다. 다른 아홉 개의 계명과 다른 게 있는데, 다른 것은 ‘행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계명은 ‘내 안에 죄성’을 말한다. 마지막 계명은 내가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을 방치하면 다른 죄를 유발하고,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구나, 곤고한 사람이구나”라면서 탄식하고 절규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누가 구해 달라고 SOS를 보낸다. <로마서> 7장의 갈등과 탄식이 있기에 8장의 영광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시편> 22편의 탄식이 있기에 나오는 <시편> 23편의 고백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시 23:1).
탄식 없이는 축복도 없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일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처럼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깨닫고, 알면 알수록 죄를 증오하지만, 그 증오하는 죄와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며 갈등하기를 권면한다. 바울처럼 탄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망의 몸에서 필자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축복한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롬 7:24).
/ 전병천 목사(마포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