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맛있는 말씀해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에베소서에서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다(엡 5:22~28).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이 과거 잘못된 가부장적인 문화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베소서 5장 21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피차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복종은 아내의 몫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해야 하는 의무이다.
왜 성경은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고 있을까? 그것은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이 아니다. 여자로서의 아내와 남자로서의 남편이 서로 기질과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내에게 복종을, 남편에게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부부관계에서 서로에게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을 해야 진정한 부부의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종처럼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편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하되,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라는 것이다. 사실 판단과 결정은 여자들이 탁월하다. 여자들의 현실적인 상황 파악과 계산 능력은 남자들보다 월등하다. 남자들은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현실적 문제를 무시하거나 자존심과 의리 등을 앞세워 그릇된 판단을 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아내가 보기에는 어린아이 같은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라고 명령하셨다. 남편이 가정에서 결정권을 가져야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많은 가정은 아내 또는 엄마가 결정권을 행사하고, 남편이나 아빠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남편이 결정권을 행사한다면 아내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남편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저절로 순종을 배운다. 아빠의 모든 결정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지혜로운 엄마가 아빠에게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아빠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가정이 아빠를 중심으로 안정감을 찾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과 같이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사랑을 명령하신 것이다. 마음에 방(room)이 있다고 비유하면 여자의 마음에는 방이 하나지만, 남자는 방이 여러 개다.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것이 사랑의 전부가 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친구도 사랑하고, 일도 사랑하고, 명예도 사랑한다. 심지어 다른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톨릭교회 결혼 교육에서 남편에게 던지는 질문이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느냐?”이다. 많은 남자가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은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 귀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얼마나 많은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고 살고 있는가? 반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만을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어려운 것을 해내야 진정한 부부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아내가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남편을 살리는 것이고, 남편이 아내 외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자기를 포기하고 아내를 살리는 길이다.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해 나를 포기할 때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는 진정한 부부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듯이, 서로를 위해 자기를 포기한 부부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끝없는 성숙과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게 할 것이다.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왜 성경은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고 있을까? 그것은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이 아니다. 여자로서의 아내와 남자로서의 남편이 서로 기질과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내에게 복종을, 남편에게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부부관계에서 서로에게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을 해야 진정한 부부의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종처럼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편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하되,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라는 것이다. 사실 판단과 결정은 여자들이 탁월하다. 여자들의 현실적인 상황 파악과 계산 능력은 남자들보다 월등하다. 남자들은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현실적 문제를 무시하거나 자존심과 의리 등을 앞세워 그릇된 판단을 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아내가 보기에는 어린아이 같은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라고 명령하셨다. 남편이 가정에서 결정권을 가져야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많은 가정은 아내 또는 엄마가 결정권을 행사하고, 남편이나 아빠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남편이 결정권을 행사한다면 아내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남편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저절로 순종을 배운다. 아빠의 모든 결정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지혜로운 엄마가 아빠에게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아빠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가정이 아빠를 중심으로 안정감을 찾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과 같이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사랑을 명령하신 것이다. 마음에 방(room)이 있다고 비유하면 여자의 마음에는 방이 하나지만, 남자는 방이 여러 개다.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것이 사랑의 전부가 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친구도 사랑하고, 일도 사랑하고, 명예도 사랑한다. 심지어 다른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톨릭교회 결혼 교육에서 남편에게 던지는 질문이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느냐?”이다. 많은 남자가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은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 귀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얼마나 많은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고 살고 있는가? 반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만을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어려운 것을 해내야 진정한 부부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아내가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남편을 살리는 것이고, 남편이 아내 외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자기를 포기하고 아내를 살리는 길이다.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해 나를 포기할 때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는 진정한 부부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듯이, 서로를 위해 자기를 포기한 부부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끝없는 성숙과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게 할 것이다.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