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 상처가 축복이 되는 가정

상처가 축복이 되는 가정 
 
룻 4:9~17 
/ 이재훈 목사 
 
내용과 무게가 다를지라도 상처 없는 완벽한 가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상처 입은 가정 속에서도 선한 일을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상처가 축복이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깨어진 그릇은 버리지만, 하나님은 깨진 그릇을 다시 빚으셔서 더욱 귀하고 값진 그릇으로 세우십니다.  
룻기는 나오미라는 여인의 상처가 어떻게 축복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룻기는 사사 시대가 배경입니다. 사사들의 시대는 지도자의 부재의 시대입니다. 국가가 온전히 다스려지지 못했던 때입니다. 정치적인 암흑기입니다.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나오미라는 여인의 가정은 이러한 시대적 고통을 피하고자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모압에서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 흉년보다 더 큰 상처를 겪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이라는 상처입니다.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을 잃고, 10년이 되어서는 두 아들마저 잃었습니다. 모압에서 만난 두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나오미가 상처 속에 괴로워하는 동안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룻기 마지막을 보면 하나님이 나오미의 상처를 축복으로 변화시킵니다. 룻이라는 이방 여인을 통해서 나오미의 상처가 축복이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울 때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말했습니다. ‘내 딸들아, 집으로 돌아가거라. 왜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너희 남편이 될 만한 아들이 내게 더 있기라도 하다면 모를까’”(11절). 
‘오르바’라는 며느리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며느리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나오미가 말합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자기 민족과 자기 신들에게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와 함께 돌아가거라”(15절). 이 말을 들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룻이 대답했습니다. ‘자꾸 저한테 어머니를 떠나거나 어머니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저도 갈 것이고 어머니가 머무는 곳이면 저도 머물 것입니다. 어머니의 민족이 제 민족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저도 죽을 것이고 저도 거기에서 묻힐 것입니다. 죽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어머니와 저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내게 심한 벌을 내리고 더 내리셔도 좋습니다’”(16~17절). 
당시 모압과 유대 민족은 엄청난 적대관계였습니다. 나오미를 따른다는 것은 평생 혼자 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오미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오미가 이방 여인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나름대로 상처를 씻어 보려고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처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면 더 큰 상처가 됩니다. 상처를 스스로 끌어안고 있으면 큰 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하나님 앞에 드리면 상처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 나라로 뛰어든 사건이 나오미의 상처가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가 되는 통로가 되게 했습니다.  룻은 자신의 고백과 결단대로 나오미를 섬겼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룻은 시어머니를 섬기기 위해 이삭을 주우러 다녔습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이삭을 주어 생활했습니다. 룻은 성실하게 일하면서 우연히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에 가게 됩니다. 농장 주인인 보아스가 그 밭에 오면서 룻을 만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났다는 것을 나오미에게 말하자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말라버린 것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보아스가 룻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어로 ‘고엘’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기업을 무른다’, 영어로는 ‘리디머(redeemer)’라는 제도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와 가문의 경제적인 기업을 이어주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친척부터 결혼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의무적인 도덕법에 속하는 제도였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룻과 보아스의 결혼 계획을 세웁니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를 신실하게 섬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룻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룻과 나오미의 가정을 책임지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룻이라는 이방 여인과 보아스라는 한 남자의 선택이 룻기 전체에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사용하십니다. 미래가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이 포함됩니다. 사람이 계획하고 행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섭리를 열어가시는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우리의 선택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놀라운 섭리를 열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상처마저 축복이 되게 하고, 역사를 바꿉니다. 1장에 룻의 선택이 나옵니다. 2장에서는 보아스의 선택이 나옵니다. 3장에서는 나오미가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이끕니다. 그때 룻이 “어머니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라고 또 선택합니다. 4장에서는 또다시 보아스의 선택이 나옵니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지만, 그 친척이 포기했기 때문에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서 나오미의 상처를 씻어주는 선택을 합니다. 두 사람의 선택 위에서 하나님이 섭리하심으로 상처가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장로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했습니다.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의 모든 재산을 나오미에게 산 것에 대해 여러분이 오늘 증인입니다. 내가 또한 말론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을 내 아내로 사서 그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유산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가운데서나 그의 성문에서도 없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 증인입니다!’”(9~10절). 
보아스는 책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의 모든 상처를 씻어주고 새롭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식에서 장로들이 축복합니다.  
“그러자 장로들과 성문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집에 들어올 그 여자를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당신이 에브랏에서 잘되고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 젊은 여자와 당신에게 주실 그 씨를 통해 당신의 집안이 다말이 유다에게서 낳은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기를 바랍니다’”(11~12절). 
보아스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가정을 회복시키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보아스를 축복하는 이야기를 제가 풀어서 다시 써 보았습니다. 
“보아스 당신은 사랑스러운 여인과 결혼했다네. 우리 장로들은 당신이 최고의 축복 된 가정을 살기를 바라네. 장차 당신의 가정에서 어떠한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한 길로 당신의 가정을 인도하고 계시다고 믿기를 바라네. 때로 당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 좋은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 라헬과 레아의 불행해 보이는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족속이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게. 때로는 정말 삶이 온통 뒤죽박죽되는 것 같은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저질렀던 끔찍한 유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삶을 고통 없이 쉽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겪더라도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더 나은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일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쉽게 만들어 주시지 않지만 굽은 길을 곧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에 관여하고 계시네. 라헬과 레아,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보아스와 룻, 당신들이 보여준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로 과거에 있었던 모든 상처를 씻어주는 축복의 결혼이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처 입은 때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하고 계신다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낄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행복을 준비하고 계시네. 우리의 꿈이 무참히 깨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신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네.” 
어느 날 보아스의 집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의 출생을 기다렸던 여인들이 모두 기뻐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자들이 나오미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찬양을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에게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자손을 주셨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가운데 이름을 떨치기를 바랍니다. 그가 당신 인생을 회복시키셨으니 노년에 당신을 보살펴 줄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며느리이자 일곱 아들보다 나은 그 며느리가 그를 낳았으니 말입니다’”(14~15절). 
나오미의 상처를 축복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칭찬입니다. 보아스와 룻을 통해 태어난 후손 가운데 다윗이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아무 상처도 없고, 완벽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예수님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 어떤 가정의 상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지 못할 상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상처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과거의 족보를 중요시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반대로 미래의 족보를 내다보는 인생이 있습니다. 상처가 축복으로 변화된 족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아름다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룻처럼 시어머니를 사랑과 정성으로 섬기는 선택, 보아스처럼 책임 있는 선택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족보가 쓰입니다. 과거의 족보를 바라보면 상처와 아픔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족보를 내다보면 하나님이 모든 상처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것을 내다보게 됩니다. 룻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축복의 무게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 우리의 상처가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