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강단] 심판 너머에 계신 구원자 하나님
심판 너머에 계신 구원자 하나님
<창세기> 7:13~16, 8:15~19
/ 이기훈 목사
오늘 본문에 노아의 홍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가 말씀하신 대로 노아의 여덟 명 가족과 선택된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이 죽고 물이 마르자 그들이 방주 밖으로 나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홍수 심판에서 노아의 가족이 구원 얻은 사실이 어떤 영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창세기> 6장 9절에서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다. 당대 완전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창세기> 7장 1절에서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보면 노아는 구원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홍수 이야기에서 우리가 더 주목할 것은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남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흐르는 사상 중 하나가 ‘남은 자’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부터 짐승까지, 기는 것으로부터 하늘의 새까지 지면에 있던 모든 존재를 쓸어버리셨습니다. 오직 노아와 방주에서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짐승들만 살아 남았습니다”(창 7:23).
‘살아남은 자’를 ‘남은 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싸아르’라고 하고, 영어로는 ‘렘넌트(remnant)’입니다. 렘넌트 사상, 남은 자 사상이 홍수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은 자’는 세상이 타락하고 변질해도 순수한 믿음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자’란 모두가 우상숭배를 할 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알 신을 섬기지 않는 7천명이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란 불신앙에 빠지지 않고 성경 말씀만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불순종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을 향해 갔습니다.
‘남은 자’란 타락한 시대 속에서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했지만, 그 멸망 가운데도 순수하게 믿음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았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남은 자’란 온갖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 로마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 히브리인들을 제거하려고 태어난 어린 사내를 모두 죽이라고 바로 왕이 명령했을 때도 살아남은 모세가 ‘남은 자’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남은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은 자’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 때문에 죄는 개인이든 사회든 나라든 반드시 심판을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의 성품 때문에 심판의 목적이 멸망이 아닙니다. 심판과 징계를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것을 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 의의 성품에 근거한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한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징계와 심판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남겨두셨다가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그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중요합니다.
노아는 ‘남은 자’였습니다. 노아는 세속적 가치관과 세상의 방법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생활했습니다. 노아는 어떤 비난의 말과 경시의 눈초리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사용하셔서 재창조를 위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우리는 ‘남은 자’의 신앙을 발견합니다.
‘살아남은 자’를 ‘남은 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싸아르’라고 하고, 영어로는 ‘렘넌트(remnant)’입니다. 렘넌트 사상, 남은 자 사상이 홍수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은 자’는 세상이 타락하고 변질해도 순수한 믿음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자’란 모두가 우상숭배를 할 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알 신을 섬기지 않는 7천명이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란 불신앙에 빠지지 않고 성경 말씀만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불순종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을 향해 갔습니다.
‘남은 자’란 타락한 시대 속에서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했지만, 그 멸망 가운데도 순수하게 믿음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았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남은 자’란 온갖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 로마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 히브리인들을 제거하려고 태어난 어린 사내를 모두 죽이라고 바로 왕이 명령했을 때도 살아남은 모세가 ‘남은 자’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남은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은 자’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 때문에 죄는 개인이든 사회든 나라든 반드시 심판을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의 성품 때문에 심판의 목적이 멸망이 아닙니다. 심판과 징계를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것을 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 의의 성품에 근거한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한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징계와 심판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남겨두셨다가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그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중요합니다.
노아는 ‘남은 자’였습니다. 노아는 세속적 가치관과 세상의 방법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생활했습니다. 노아는 어떤 비난의 말과 경시의 눈초리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사용하셔서 재창조를 위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우리는 ‘남은 자’의 신앙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남은 자입니다”
“바로 그날 노아와 그의 아들들인 셈, 함, 야벳과 그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과 모든 짐승들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들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것들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들, 곧 날개 달린 모든 것들이 그 종류대로 들어갔습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육체들이 둘씩 노아에게 와서 방주로 들어갔습니다”(13~15절).
“들어갔습니다”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8장에는 두 가지 반복되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생물들, 곧 모든 짐승과 모든 새와 땅에서 기는 것이 다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18~19).
“방주에서 나왔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순종을 통해서 심판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노아를 통해서 ‘남은 자’의 삶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아도 세상이 물로 망할 거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금방 믿어졌을까요? 세상이 물로 망할 거라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아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도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또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모아들이라”는 말씀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조롱했지만 그래도 그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세속적 가치관, 문화, 사상에 동화되지 않고 성경대로 신앙을 고수하며 살았습니다. 여호와가 말씀하시는 대로 들어갔고, 여호와가 말씀하신 대로 나왔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 전부였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삶의 전부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만 따라 사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많은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갈등하며 삽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말씀대로 살 것이냐, 말씀과 상관없이 살 것이냐?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불순종을 선택하면 삶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노아를 보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가장 쉬웠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갈등 없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복이 있습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성도가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 살리는 데 필요한 영적 마중물로 성도들이 쓰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사람으로서 세상을 지키는 믿음의 보루가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남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만, 우리 교회가 남은 자가 되어야만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더욱 ‘남은 자’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구원 얻을 때가 없습니다. 생명을 얻을 때가 없습니다. 소망을 찾을 때가 없습니다. 교회가 남은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그들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만약 크리스천들이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불신자들이 구원을 어디에서 얻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소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이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새 역사를 만들어 가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회가 아무리 타락해도 교회를 통해서 새 역사를 쓰실 것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죄악 가운데 빠져도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서 새 역사를 쓰실 것이기에 크리스천들에게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말씀대로 사는 게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남은 자로 이 땅을 사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이 이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위장된 길이 너무 많습니다. 가짜로 포장된 진리가 너무 많습니다. 모조품 생명이 많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문화가 되고,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 유행과 문화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남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 말씀만 따라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더 이상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기 원하십니다”(벧전 4:2).
하나님은 세상이 악하게 돌아가도 남은 자로서 모든 크리스천이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본질을 지키며 세속화 되지 않고 남은 자로서 인생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남은 자입니다. 나는 세상을 구원할 남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남은 자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들어갔습니다”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8장에는 두 가지 반복되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생물들, 곧 모든 짐승과 모든 새와 땅에서 기는 것이 다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18~19).
“방주에서 나왔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순종을 통해서 심판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노아를 통해서 ‘남은 자’의 삶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아도 세상이 물로 망할 거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금방 믿어졌을까요? 세상이 물로 망할 거라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아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도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또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모아들이라”는 말씀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조롱했지만 그래도 그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세속적 가치관, 문화, 사상에 동화되지 않고 성경대로 신앙을 고수하며 살았습니다. 여호와가 말씀하시는 대로 들어갔고, 여호와가 말씀하신 대로 나왔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 전부였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삶의 전부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만 따라 사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많은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갈등하며 삽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말씀대로 살 것이냐, 말씀과 상관없이 살 것이냐?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불순종을 선택하면 삶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노아를 보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가장 쉬웠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갈등 없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복이 있습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성도가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 살리는 데 필요한 영적 마중물로 성도들이 쓰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사람으로서 세상을 지키는 믿음의 보루가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남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야만, 우리 교회가 남은 자가 되어야만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더욱 ‘남은 자’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구원 얻을 때가 없습니다. 생명을 얻을 때가 없습니다. 소망을 찾을 때가 없습니다. 교회가 남은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그들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만약 크리스천들이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불신자들이 구원을 어디에서 얻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소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생명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이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새 역사를 만들어 가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회가 아무리 타락해도 교회를 통해서 새 역사를 쓰실 것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죄악 가운데 빠져도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서 새 역사를 쓰실 것이기에 크리스천들에게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말씀대로 사는 게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남은 자로 이 땅을 사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이 이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위장된 길이 너무 많습니다. 가짜로 포장된 진리가 너무 많습니다. 모조품 생명이 많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문화가 되고,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 유행과 문화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남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 말씀만 따라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더 이상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기 원하십니다”(벧전 4:2).
하나님은 세상이 악하게 돌아가도 남은 자로서 모든 크리스천이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본질을 지키며 세속화 되지 않고 남은 자로서 인생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남은 자입니다. 나는 세상을 구원할 남은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남은 자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