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 - 겸손의 힘

업그레이드 같은 축제에 올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받습니다. 은혜와 도전, 감동을 받는 것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업그레이드는 교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업그레이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메모리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삼성에서 굉장한 메모리칩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메모리칩도 1년 6개월 후면 구식이 된다고 합니다. 1년 6개월이 지나면 정확히 용량이 두 배로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인격의 업그레이드 먼저 업그레이드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믿음의 업그레이드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인격의 업그레이드가 있어야 합니다. 영성의 업그레이드가 없으면 어떤 업그레이드라도 거품이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영성,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는 업그레이드의 비극적인 예는 괴테가 경고한 바 있습니다. ‘파우스트’라는 소설에 나오는 파우스트 박사는 의사, 법률가, 신학자로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끝없는 업그레이드를 원합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은 언제나 마귀와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래의 마지막은 언제나 파멸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날개로 얼마나 날아 갈 수 있을까요? 날개가 있어도 대기권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날개 있다고 교만하다가 대기권을 벗어나면 추락합니다. 하나님 없는 업그레이드가 얼마나 위험합니까? 하나님 없는 업그레이드의 대표적인 예가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단지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라 세계관이고 가치관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진화론적인 세계관입니다. 교만은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셔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잠언 16장 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끝임없이 높아지려는 야망과 열망 속에서 오늘도 달음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무너뜨리는 큰 대적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업그레이드를 ‘성화’, ‘성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의 업그레이드를 주와 같이 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마지막 날에 그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업그레이드되면 반드시 교만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 안에서 업그레이드 된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겸손입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교회사의 많은 위대한 인물 중에서 겸손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핍박받던 교회가 인정을 받게 되고 국교화 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사백년 만에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로마도 함께 위기를 겪고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이때 쓰러져가는 로마를 붙든 사람이 바로 ‘어거스틴’이었습니다. 그가 바울 이후로 가장 위대한 성자로 추앙받을 때 온 세상 앞에 내 놓은 책이 ‘고백론’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성자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이 우러러볼만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죄인중의 죄인입니다’라는 고백론을 펴낸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첫 번째 덕목이 겸손이고 기독교의 두 번째 덕목도 겸손이며 기독교의 세 번째 덕목도 역시 겸손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났다면, 겸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온 세상에 펼쳐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엄의 한 자락이라도 경험했다면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업그레이드에 산악인들이 오셔서 정상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팔천 미터 이상의 고봉을 타는 분께 ‘산에 가면 무슨 생각을 합니까?’하고 여쭤보니 ‘산에 가면 겸손해 집니다. 산에 가면 살아서 내려와야지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자연 앞에 서면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자녀 삼으시며 자기의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한 것을 알면 우리는 구원의 감격으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있고 신앙 있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겸손해집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하나님과 멀어지면 교만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 보다 내가 잘 되기를 원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쓰시기 원하십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못 쓰시는 이유는 우리의 재산과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겸손 속에서도 겸손하라 우리는 겸손 속에서도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겸손 속에서도 교만이 싹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 테일러콜리치는 ‘악마가 가장 좋아하는 죄는 겸손을 흉내 낸 교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겸손을 자랑하는 것은 거짓된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가운데 결코 겸손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오늘 이 설교는 저를 위해서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제가 겸손한줄 알았습니다. 목사까지 되고 좋은 교회에 와서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아 겸손하게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님들이 제가 여기에서 섬길 때는 말씀이 없으시더니 제가 미국에 가 있으니 말씀들을 하십니다. ‘목사님 그때 은혜도 많이 받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많이 겸손해 지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 누구한테 교만하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고 저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가 교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죄가 무엇입니까? 원죄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섰다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교만의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 죄인지, 교만이라는 것이 겸손 속에도 얼마나 잘 숨어있는가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뽑았을 때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훌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갈릴리 사람이었고 그 중 일곱 명이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의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리리 사람들을 무시했고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어부는 무시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변변찮던 제자들을 예수님이 삼년 동안 사랑하고 가르치고 섬겼습니다. 그러면 교만할 게 하나도 없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 마지막 밤 식사에서 이들에게 축사하시고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 놀랍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을 보십시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교만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제자들보다 나을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선택 우리가 은혜 받을 때, 축복 받고 업그레이드되고 있을 때, 우리가 늘 곁에 두고 읽을 말씀이 오늘 본문 시편 131편 1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이것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위대한 일을 행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10대에 골리앗을 물리쳤고 평생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수도를 예루살렘에 정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왔으며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은 열망으로 모든 것을 준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했지만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에 힘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다윗 된 비결이요 다윗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비결입니다. 다윗은 큰 일을 행한 잘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은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능력도 있고 좋은 일인데 내려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화장실 청소도 맡겼다가 하지 말라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맡긴 여러 가지 사역을 내년에 내려놓으라고 할 때 ‘할렐루야’ 하고 쉽게 내려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 언제나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두 번의 기회가 있었어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다윗이 성전건축 준비를 마쳤는데 하나님께서 ‘너의 마음만 받겠지만 너는 성전을 짓지 못한다’ 하셨을 때입니다. 다윗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사무엘하  7장 18절에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장일치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백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다 풀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아버지도 형들도 무시했던 아무것도 아닌 나를 뽑으셔서 이스라엘을 맡기시고 나를 세우셨다’라고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이에 비해 사울은 스스로 작게 여길 때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 속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교만해지자 결국 자기 뿐 아니라 나라 전체, 그의 가정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겸손과 교만이 드러나는 때 교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싹틉니다. 업그레이드 할 때 늘 겸손하려면 생각 관리,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비판 합니까? 내가 비판받고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면 겸손한 사람이고 ‘당신은 얼마나 잘한다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하냐’고 생각하면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은 어리석음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안 배웁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누구를 충고해 주고 싶으십니까? 따지기 시작하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문제는 티눈이었는데 내 문제는 들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칭찬할 때도 교만과 겸손이 드러납니다. 칭찬할 때 지나치게 겸손한 것은 교만입니다. 또한  남이 잘 될 때 배가 아픈지, 기뻐하는지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겸손한 사람인지 교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일컬음을 받은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나보다 더 잘 한 사람이 나왔을 때 박수치며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겸손한 자입니다. 일본의 간호 지고로라는 사람은 여러 가지 무술을 합쳐서 유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일본의 정신적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가 임종을 할 때 제자들 앞에서의 유언이 ‘나를 묻을 때 도복을 입혀서 묻히되 검정 띠가 아닌 흰 띠를 매서 묻어 달라’였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흰 띠를 맨 사람이 진정한 유단자입니다.  진정한 업그레이드-겸손 교만도 마음에서 시작되고 겸손도 마음으로 시작됩니다. 교만한 마음은 우리의 얼굴 중에서 눈으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눈매가 다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낮은 곳을 살피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살피는 사람, 언제나 낮은 데에 눈을 두는 사람입니다. 미국과 중남미 지역에서 태풍으로 삼천 명이 죽었고 동남아에서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거기 가 있어야 합니다. 고난  당한 사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의 눈이 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잘 관리하고, 우리의 눈을 잘 관리하는 겸손한 자가 받을 가장 큰 축복이 2절에 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겸손한 마음의 가장 큰 축복은 고요하고 평온한 심령입니다. 내 심령이 불안하고 들떠있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해일이 들이 닥쳐도 깊은 바다 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안겨서 만족해하는 고요하고 평온한 심령을 유지합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 품 안에서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그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다짐합니다. 3절에서 다윗은 회중을 향해 돌아서서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겸손을 가르치려면 우리가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 겸손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을 온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세상에서 여러분의 직장의 동료들을 향해서 ‘겸손하십시오’라고 선포할 때 겸손의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우리는 교만해 집니다. 겸손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겸손은 힘이고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겸손은 유약함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능력 중의 능력입니다. 고난을 통과 하는 가운데 빚어지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고난을 빨리 지나가시려면 고개를 들면 안됩니다. 겸손하면 고난을 빨리 통과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에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셔 종의 형체로 오시매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낮추셨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오늘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축복하고 그 겸손한 자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가까이 가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업그레이드는 겸손입니다. - 기도합시다 -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 관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이런 큰 은혜를 주셨습니까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눈을 지켜서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에 힘쓰지 아니하고 언제나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겸손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은혜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