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맏아들

반태효 목사눅 15:25~32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잃어버린 자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소유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이야기, 잃어버린 드라크마 동전을 찾은 여인의 이야기, 탕자 이야기로 이 세 편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2010년 칠레의 광부 33명이 매몰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33명 모두가 구조되었습니다. 그 때의 기쁨은 칠레 사람들만의 기쁨이 아니라 전 세계의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한 사람
양을 잃어버리면 주인과 이웃들이 함께 안타까워하며 슬픔에 동참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양을 되찾았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동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전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함께 안타까워하고, 되찾았을 때에는 모두가 함께 기뻐했습니다. 양과 동전의 경우에도 이런데 사람의 경우에는 오죽하겠습니까.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았을 때에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은 마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큰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 중에 유독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사람의 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양이나 동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양이나 동전은 잃어버려도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잃어버렸던 동생을 되찾았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그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미련한 양이 아니라 똑똑한 양입니다. 오히려 미련한 양이 무리를 떠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입장에서 보면 길 잃은 양은 속을 썩이는 양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불평 없이 잃어버린 양을 다시 찾은 것만으로 기뻐합니다. 아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되돌아온 것만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즐거워해야 할 형은 잔뜩 화가 났습니다.
잔뜩 화가 난 맏아들
“그런데 큰 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음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 물어 보았다. 하인이 대답했다. ‘동생이 왔습니다. 동생이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와서 주인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 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 그를 달랬다”(25~28절).
오랫동안 우울하던 집안에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집안에서는 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좋지 않던 집안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잔치에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온 이웃이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자리에 맏아들만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종들도 기뻐할 만큼 큰 경사가 벌어졌으면 맏아들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와야 옳은 일 아닙니까. 맏아들이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 기쁨을 누구보다 먼저 누렸을 것입니다. 맏아들은 잔치에는 참석하지 않고 화를 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맏아들의 성격이 못되거나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맏아들은 아주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
“그러자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종 노릇 하고 무슨 말씀이든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녀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29~30절).
모범적인 아들이 동생이 돌아와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때 오히려 화를 냈는데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맏아들이 화가 난 것은 오늘 벌어진 이 사건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맏아들의 불만은 오랫동안 쌓여왔습니다. 맏아들은 순종과 성실 속에 분노와 원망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맏아들의 마음속에는 동생을 향한 비교의식과 질투심이 가득했는데 그 감정이 이번 잔치 때문에 폭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맏아들에게 수많은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사는 동생이 부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모범생이 겪는 갈등입니다. 맏아들은 동생이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야단을 맞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환영하는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가 못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은 동생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불만입니다.
우리의 모든 원망과 불만의 시작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뿌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에 대한 원망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더 컸습니다. 우리는 맏아들의 원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31~32절에 나오는 아버지의 대답을 들어보면 맏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축복 중의 축복 임마누엘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31~32절).
문제는 맏아들이 자신과 아버지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맏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입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아닙니까. 천국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 중의 축복인 임마누엘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고 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하는 것이 행복 아닙니까. 아버지는 변함없이 맏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외롭거나 왜 나만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불만이 있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 스스로가 소외시켰을 수 있습니다. 맏아들을 소외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소외되었습니다.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문제는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공동체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눅 15:1~2).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가장 먼저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도 죄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불편해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갈 곳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바로 아무도 찾지 않고 함께 울어주는 이가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32절).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신뢰하게 될 때 비로소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늘 감사하십시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소유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날마다 감사하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