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빌라도의 재판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이재훈 목사

 

선택의 기로에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불의를 선택한 우리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회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라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인이 아닌데 로마에서 가장 높은 직책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가 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혼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티베리우스의 황제의 세 번째 아내인 클라우디아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친족이라는 배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A.D 26년에 유대 총독에 올랐는데 그 자리는 그의 성품이나 능력으로 볼 때 너무 높은 자리였습니다.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임기를 맡은 10년 동안 유대는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잘못된 리더십이 세워지면 공동체나 국가는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빌라도의 성품은 잔인하고 지배적이고 독선적이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처세술에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악을 알고도 묵인한 빌라도

 

빌라도는 성경의 역사에서 4시간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결정으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책임과 리더십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사도신경을 ‘본디오 빌라도 통치하에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번역을 해서 약간 우호적이지만, 개신교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만 예수님에게 고난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게 만든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빌라도라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예수님 죽음의 책임이 빌라도에게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자신에게 넘긴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악한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묵인했습니다. 상급자가 악을 행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은 악에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아랫사람이 행하는 악을 묵인하는 것은 같은 악을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큰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권위로 그 악을 제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악을 제어하는데 사용하지 않은 것이 바로 빌라도의 잘못입니다.

 

예수님을 고소한 세 가지 이유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자신들이 밤새 회의를 해서 내린 죄목과 다른 죄목을 만들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에게 사형이 선고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죄목은 신성모독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라 주장했고, 성전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한 말을 근거로 신성을 모독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신성모독죄로 예수님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로마제국의 법정의 권한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법정에서는 종교적인 죄목으로는 사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피지배국가의 종교에 관대했습니다. 종교를 인정해 줌으로써 로마제국의 통치에 굴복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했어도 결코 그 죄로 사형을 당하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내란과 반란을 주도했다는 덮어 씌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1~2절입니다.  “온 무리가 모두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대한 고소가 시작됐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민족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이사께 세금을 바치는 것을 반대하며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눅 23:1~2절).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군중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과 둘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선동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셋째, 자신이 왕이라고 칭하며 반란을 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왕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네가 말한 대로다’”(2절).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내란을 음모한 것을 시인한 정치적 왕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요한복음을 보면 마가복음보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받은 재판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요한복음 18장 36~37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종들이 싸워 유대 사람들이 나를 체포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지금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거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거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요 36~37절).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대조해보면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고소한 내용을 인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진리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 나라의 왕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그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악을 묵인한 악한 지도자 예수님은 빌라도를 전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재판 과정에서도 빌라도를 구원하기 위해서 짧은 대화이지만 빌라도에게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전하러 왔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 “칼과 세금, 권력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있는데 나는 그 나라의 왕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합당하지 않은 죄목으로 고소한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뜻에 끌려 다녔습니다.

“새벽이 되자 곧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온 공회원들과 함께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1절).새벽부터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관저 밖에서 재판을 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8장 28~30절입니다.      “그때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가야바의 집에서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소하려는 것이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라면 총독님께 넘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28~30절).

당시 재판은 총독 관저 안에서 하는 것이 관례인데, 무슨 일로 빌라도의 관저 밖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을까요. 그것은 유대 지도자들이 빌라도의 관저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유월절 규례대로라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한 사람이 되어 유월절 절기를 지킬 수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율법에 없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저로 끌고 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밖에 재판을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로마의 최고의 권력자가 무슨 이유 때문에 밖에서 재판을 할까요. 빌라도에게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빌라도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부터 무엇인가 음모가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군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했을 때부터 빌라도를 만났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악한 동기와 계획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지도자였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악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악을 묵인한 악한 지도자였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

 

빌라도가 에수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형을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빌라도는 억울한 죄목으로 끌려 온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예수께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너를 여러 가지로 고소하고 있는데 대답할 말이 없느냐?’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히 여겼습니다”(4~5절). 빌라도는 아마 수많은 죄인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다고 변명하는 죄인들도 만났을 것이고, 실제 죄가 없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만났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마치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난 다음에 세 번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첫 번째 선언은 당일 새벽에 예수님을 심문한 직후에 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절입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다.’”(눅 23:4).두 번째 무죄선언은 헤롯에게 조사를 받으러 갔다 온 이후입니다 요한복음 19장 4절입니다.  “빌라도는 다시 밖으로 나와 유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예수를 너희들 앞에 데려오겠다. 이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는 것이다’”(요 19:4).세 번째 무죄선언은 바로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3장 22절입니다.

“빌라도가 세 번째로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일을 했다고 그러느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매질이나 해서 풀어 줄 것이다’”(22절). 14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러느냐?’ 그러나 그들은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14절).

빌라도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실은 잘못된 재판을 하면 로마제국으로부터 엄청난 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명백하게 잘못된 재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열한 성품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확인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외면한 ‘중죄인’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에게로 예수님을 보냅니다. 헤롯은 다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또 그는 예수님을 그냥 풀어 줄수 없어 매를 쳐서 풀어주겠다고 타협안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유월절에 죄인을 풀어 주는 제도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폭동을 일으켰던 ‘바라바’라는 죄인과 예수님을 함께 세웠습니다.  빌라도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예수님을 풀랴나고 바라바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아마 대제사장들도 얼굴을 가리고 군중들의 틈에 서서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더라면 어떠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석방을 했어야 했는데 그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악에 이끌려 가는 지도자들이 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대 지도자들은 악에 이끌리고, 상황에 이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에  순종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선거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입니다. 빌라도는 가장 중요한 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에 역사의 중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말에 순종했어도 역사의 실패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9절입니다.  사도신경에 오른 치욕적 이름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이런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당신은 그 의로운 사람에게 상관하지 마세요. 어제 꿈에 제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마27:19).

빌라도가 아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면 그는 사도신경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단 아내가 의와 불의를 구분할 줄 알고, 믿음과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곁에서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소리일지 모릅니다. 이 소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아내의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도신경에 치욕스럽게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죽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라는 세 번째 이유는 그가 군중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여론과 만들어진 여론

 

“그래서 빌라도는 군중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한 다음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15절).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치고 있는 군중들 속에도 있을 것입니다. 눈앞에 놓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져 군중들의 선동에 넘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대중의 외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 세력에 의해서 선동된 대중의 외침인 경우도 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들이 어리석은 외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군중들 뒤에서 선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군중들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지도자로서 어리석게도 군중들의 부르짖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어리석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합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여론과 만들어진 여론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여론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입니다. 조작된 여론은 악한 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선동되어 만들어진 의견입니다. 북한에서 수십만이 모여 고함을 외친다 한들, 그 고함소리에는 힘이 없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함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

 

빌라도는 이미 너무 많은 실수를 했기 때문에 대중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지도자들이 새벽에 나와 달라고 해도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된 양심을 따랐던 지도자, 정의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도자, 원칙보다는 상황에 따른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도자에 의해  예수님이 처형되셨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비겁한 소리를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것인가, 개인적인 야망을 추구할 것인가, 선을 선택할 것인가.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할 것인가 바로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불의를 선택한 우리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있는 빌라도의 모습을 드러내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시대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빌라도가 보이지 않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