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스가랴 4장 1절~14일

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큰 산이 평지가 되듯 걸림돌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십시오.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열매가 없는데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열매가 맺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드온이라는 사람은 적이 두려워서 포도주 담그는 통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겁쟁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300명의 군사로 수많은 적들을 무찌르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아모스라는 선지자는 양을 치는 이주 노동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왕에게 진리를 전하는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거친 어부였습니다. 그는 영적 지도자로 쓰임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격적인 결함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놀라운 일행하시는 하나님
만약 하나님이 사용할 사람들을 능력에 따라 결정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일들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요셉은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사가, 베드로는 사도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두 가지 질문을 해야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니면 해야 하는 일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냐는 질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에 벗어나는 일과 원하지 않은 일도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임재를 상징하는 등잔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식었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의 환상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영적 정결함을 부어지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 살펴볼 환상은 포로귀환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격려하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환상에는 순금 등잔대가 등장합니다. 등잔대에는 일곱 개의 대접이 달려있고 대접마다 등잔불이 있습니다. 대접아래에는 일곱 개의 대롱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등잔대 좌우편에 두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등잔대는 중요한 성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아직도 등잔대를 유대민족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등잔대는 성소를 밝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빛이었습니다. 등잔대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제사장이 불빛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등잔대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위해 귀 기울이고, 역사하시고, 살아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무너지면서 등잔대의 불이 꺼졌습니다.
결국 실패하는 스룹바벨
하나님은 성전이 재건될 뿐만 아니라 등잔대의 불이 밝혀질 것이라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옛 성전에 있었던 등잔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등잔대를 보여주셨습니다. 옛 성전에 있던 등잔대와 환상에 나오는 등잔대는 세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옛 성전에 있던 등잔대는 기름을 넣는 대접이 따로 있어서 제사장이 기름을 넣어서 불빛을 유지시켰습니다. 환상에 나온 등잔대는 자동으로 기름을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름이 흘러 넘치는 등잔대입니다. 등잔대 좌우에 두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어서 기름을 공급받기에 매우 용이했습니다. 이러한 등잔대를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환상 속에 나타난 것들이 특이했기 때문에 스가랴는 늘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스가랴처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말했다. “이것이 스룹바벨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네 힘으로도 안 되고 네 능력으로도 안 되고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6절).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성전재건이 중단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네 힘과 능력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전재건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으로부터 부여받은 정치적인 힘과 권세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정치적인 힘은 바벨론의 왕이 바뀌면서 끝나버렸습니다. 더 높은 권력에 앞에서 그의 권력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재건 하는 일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자신의 재능과 지혜로 일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성전재건의 이유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서 스룹바벨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름이 없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등잔대와 같습니다. 등잔대는 온 세상에 빛을 발하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등잔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어 그 빛을 온 집안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마 5: 14~16).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촛대를 일곱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등대에 기름이 공급되어야 불을 비출 수 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려는 것은 건물을 재건하려는 목적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빛을 비추는 등잔대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내는 것이 성전재건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등잔대를 만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등장대에 공급되는 기름은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령님은 영혼을 치료하십니다. 때로는 힘을 북돋아주는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새로운 힘과 능력이 생기고, 빛을 비추는 연료가 되기도 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성령의 능력이 교회에 있을 때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은 능력과 지혜,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간구하며 나아가야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고 성령님이 주신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해야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봉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실 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나무는 타서 재가되어야하지만 떨기나무에는 계속해서 불이 붙어있었습니다. 모세가 40에 자신의 재능과 힘을 믿고 민족을 구원하려했을 때에 실패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도망자로 숨어살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소명은 그가 지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어서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기름 부으심을 공급받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십니다. “천사가 말했다. ‘이것들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여호와를 섬기는 기름 부음 받은 두 사람이다’” (14절).두 사람은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와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두 명의 지도자를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하게 공급됩니다. 여기 나오는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공급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 예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에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이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인생입니다. 여러분, 120세까지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를 높이는 인생을 살아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의지하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기름 부으심을 받는 방법
예수님께 붙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재능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역전시킵니다. 하나님은 재능 많은 사람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재능 없는 사람을 부르셔서 사용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여러분,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내가 가진 무엇을 사용할 지를 따지지 말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지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십시오. 우리에게는 없는 능력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일어난 세 가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산과 같은 장애물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뭐냐? 스룹바벨 앞에서 네가 평평해질 것이다. 그가 성전을 지을 머릿돌을 가지고 나올 때 ‘은혜, 은혜가 거기 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7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 큰 산이 평지가 되듯이 걸림돌들이 사라집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치적으로는 바벨론 왕의 반대, 주변 국가들이 훼방과 협박, 경제적으로는 성전을 재건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임재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큰 산이 네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러분,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면 큰 산이 평지가 되지만 자신의 힘으로 일하면 평지가 큰 산이 됩니다. 큰 산 같은 장애물 앞에 놓여 있는 성도님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 앞에서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힘으로는 이 산을 옮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으니 이 산이 옮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손만 움직이면 산은 움직입니다. 큰 산이 평지가 되는 역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에게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일이 완성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장로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면류관을 벗어 주님 앞에 내려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예배의 클라이맥스요,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기 때문에 면류관을 쓸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스스로 면류관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고백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
셋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면 열매가 맺힙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시작이 초라하다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누구냐? 사람들은 스룹바벨의 손에 측량줄이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할 것이다. 이 일곱 눈은 온 땅을 두루 돌아 살피시는 여호와의 눈이다”(10절).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멸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신앙이 없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신앙은 있는데 비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과거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초라하다는 이유로 통곡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스룹바벨의 손에는 지시봉이 아니라 다림줄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의 헌신을 통해서 백성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일하시면 하는 일이 잘되고 사람들은 화합됩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함께 즐거워하는 일이 죕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목적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안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무시당하거나 무시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공동체는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인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속에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십시오. 큰 산이 평지가 되듯 걸림돌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끝마쳤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과도 함께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날마다 아름다운 고백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기 위해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합니다.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