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은혜에 진실함으로 응답하십시오

스가랴 8장 13절~23절

이재훈 목사

 

진실한 삶으로 응답할 때 축복을 경험합니다. 은혜와 진리로 가득한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성실하게 들으십시오,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는 평생 잊지 않으면서 은혜는 쉽게 잊는 모습을 꼬집는 표현입니다. 은혜 받은 후에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 중에서 감사를 잊지 않은 사람은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사를 잊어버린 아홉 명의 사람입니까. 작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지만 오히려 큰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시는 공기, 햇빛, 아름다운 땅은 매우 소중한 것인데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은 은혜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릅니다. 나중에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교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지 마십시오”(고후 6:1).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 분이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갚겠습니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하면서 은혜에 합당한 진실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마음을 돌려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에게 은혜 베풀기로 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너희는 서로 진실을 말하고 너희 성문 재판 자리에서 참되고 정직한 재판을 베풀라. 너희는 서로 악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거짓 맹세하기를 좋아하지 말라. 이런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15~17절).  ‘그러나 이제’라는 단어가 8장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이 백성 가운데 남은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11절), “유다 백성들아, 이스라엘 백성들아, 다른 민족들이 너희를 저주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요, 너희는 복을 받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힘을 내서 손을 강하게 하라”(13절)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저주를 복으로 바꾸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마음을 돌려 은혜를 베풀기로 작정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로 결정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때문입니다.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삶

 

이스라엘의 변화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먼저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변화되지 않은 사람도 변화된 것처럼 축복을 약속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기로 작정한 때부터 변화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그들에게 약속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되는 은혜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으니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릴 것이요,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 불릴 것이다’”(3절).예루살렘이 멸망한 이유는 진리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진실해야 할 법정에서조차  거짓이 넘쳐났습니다. 그들은 거짓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사회가 무너지는 이유가 경제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짓 때문입니다. 거짓은 삶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국가를 무너뜨립니다. 거짓된 사회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예루살렘을 향한 비전은 진리의 성읍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전재건 자체가 하나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진실한 삶이 진리의 삶이 되고, 진리의 성읍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꿈꾸는 우리의 모습이요,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평화보다 진리가 먼저  둘째, 예루살렘이 평화의 성읍이 되는 은혜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길거리에 다시 늙은 어르신들이 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요, 성읍의 길거리에 어린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가득히 뛰놀 것이다’”(4~5절).  이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길거리를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평화롭게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어떻게 평화롭냐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장면은 위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안전한 사회입니다. 전쟁, 기근, 무정부상태 등 국가에 혼란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출입을 삼가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인과 어린이입니다. 연약한 두 세대가 안전하게 길거리를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바로 평화의 성읍입니다. 

 “그날 이전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품삯을 받지 못했다. 적들 때문에 아무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했다. 내가 모든 사람들로 서로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10절). 과거에는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제대로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의 성읍이 됩니다. 평화의 성읍이 되려면 먼저 진리의 성읍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평화는 거짓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여도 진리가 없는 성읍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평화보다 앞서 진리를 찾아야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셋째, 예루살렘이 번영의 성읍이 되는 은혜입니다.   “하늘이 이슬을 내려서 씨앗은 잘 자라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곡식을 낼 것이다. 곧 평안하게 추수를 할 것이다. 내가 이 백성 가운데 남은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갖게 하겠다”(12절). 여러분, 씨앗이 자라고,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곡식을 낸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씨를 뿌리고 땀 흘려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이 곡식을 내려줘야 거둘 수 있습니다. 적절한 양의 비가 내려야하고, 햇빛이 지나치게 강해도 곡식은 자라지 못합니다. 기후와 곡식이 자라는 조건이 맞아야만 비로소 수확할 수 있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곡식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연의 실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씨앗이 전혀 다른 모습의 식물로 자라는 것을 자연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자녀를 낳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번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대하는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심지 않고 거두는 복입니다. 그런데 심지 않고 거두는 복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미국의 한 단체가 지난 10년 동안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추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된 사람 중에 당첨된 이후의 삶이 성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과가 이상합니다. 과연 무엇이 심지 않고 복을 거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을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심은 대로 거두는 복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심은 만큼 거두는 복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학개서 1장에 하나님과 성전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너희 위에 이슬 내리기를 그치고 땅이 열매 내기를 멈췄다. 내가 땅에, 산에, 곡식에, 새 포도주에, 새 기름에, 땅이 생산해 내는 것에, 사람에, 가축에, 너희 손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 위에 가뭄이 들게 했다” (학 1:10~11).이 모습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기 이전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회복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씨앗이 열매 맺게 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진정한 번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꾸는 하나님

 

번영은 진리의 성읍, 평화의 성읍, 번영의 성읍 순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번영의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번영의 성읍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진리의 성읍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진리의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진리가 나라에 임해야 평화가 옵니다. 번영보다 진리가 우선입니다. 진리가 있어야 평화가 오고, 번영도 옵니다. 당시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내용들은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황폐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거짓을 행하는 것이 익숙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하나님이 약속한 모습들은 현재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단어가 자주 반복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임했던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곤 그 은혜를 백성들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실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만난 사건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너희는 서로 진실을 말하고 너희 성문 재판 자리에서 참되고 정직한 재판을 베풀라. 너희는 서로 악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거짓 맹세하기를 좋아하지 말라. 이런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16~17절).은혜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의 수준을 낮추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리의 수준을 낮추고 공의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결코 진리를 무시하거나 그 수준을 낮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는 진리가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희생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진리의 수준을 낮췄습니까. 아니면 거룩의 수준을 낮췄습니까. 아닙니다. 만약 진리와 거룩의 수준을 낮췄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거룩의 기준을 조금도 낮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우리를 향한 그 놀라운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은혜와 진리가 만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요 1:14).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진리를 따르다 보면 은혜를 잊고 은혜를 따르면 진리를 잊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함께 충만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새는 두 개의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라는 날개만 있거나 혹은 진리라는 날개만 있으면 은혜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있는데 진리가 없다는 것은 진정한 은혜가 아닙니다. 진정한 은혜에 진리와 은혜가 공존합니다.

죄의 기준을 낮추는 것은 지나친 관용일 뿐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은 죄의 기준을 낮추지 않으셨습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오히려 죄의 기준을 높이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살인하는 자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 이미 간음한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속의 거룩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속까지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진실, 감사, 사랑 만드는 은혜

 

은혜는 사람을 더욱 진실하게 만듭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 우리의 삶은 진리를 추구하게 되고 진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은혜는 죄를 지기 위한 무임승차권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날마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지옥에 갈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참 모습이 어떤지를 아는 사람은 진실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올바르게 응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 없는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혜는 사람을 진실하게 만들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은혜에 합당한 삶이 진실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거짓 없이 정직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은혜의 축복 누리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에 진실함으로 응답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넷째 달과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과 열 번째 달에 하는 금식의 날이 유다 백성들에게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명절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진실하고 평화를 사랑하라” (19절).금식의 문제가 다시 나온 것을 보면 7장과 8장이 연결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지난주 금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나옵니다. “이제부터 금식이 축제의 명절이 된다”그동안 애통해하던 금식이 축제의 명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더 이상 백서들에게 금식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후에 많은 백성들과 여러 성읍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이 성읍의 사람들이 저 성읍으로 가서 말할 것이다. ‘우리가 빨리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가서 기도하자’ 하면 서로 ‘나도 가자’라고 할 것이다. 많은 백성들과 강한 나라들이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기도하러 예루살렘으로 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이 이르면 다른 언어를 가진 다른 민족 열 명이 와서 한 명의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하신다는 말을 우리가 들었으니 우리가 너희들과 함께 가겠다’’”(20~23절).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진실한 삶으로 응답할 때 축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늘 진실하게 응답하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올바르게 응답한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넘치는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