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요나 4장 1절~11절

이재훈 목사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아끼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이 아끼는 영혼들을 우리도 아껴야합니다. 복음을 듣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십시오.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13년 온누리교회 표어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는 기도로 분별해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우리들 머릿속에는 하나님에 관한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의 거리가 30cm라고 합니다. 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행입니다. 거리가 30cm에 불과 하지만 가장 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가기 힘든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머리로 아는 것을 마음으로 체험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머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마음에서 하나님의 뜻이 기쁘지 않다면 아직도 이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머리는 분명 기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와 마음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가장 큰 영향은 자아분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지식과 마음이 서로 다릅니다. 요나서는 자아분열을 겪고 있는 요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그 하나님의 뜻을 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요나도 자아분열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인간의 분열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나서는 예언서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 예언은 한 구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요나서는 자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는 한 선지자의 참회록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

 

요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루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아주 악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곳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동방의 망나니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비참하게 점령시켰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니느웨를 저주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니느웨를 사랑하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사랑하신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이 사랑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3:16).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은 세상입니다.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절하고,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배척한 사람을 미워하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증오합니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지역은 아마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 가장 심한 지역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악이 가득한 그 곳에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 넘쳐흐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불순종하는 요나

 

선교는 니느웨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교적입니다. 악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첫 번째 시작은 어디일까요. 바로 악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부터입니다.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 프로그램보다 우선이 되어야하는 것이 우리 마음속에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배역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면 어떤 사역을 하더라도 그 사역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의 마음  속에는 불순종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지만 요나는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동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 서쪽으로 갔습니다. 또 하나님은 요나에게 육지로 가라고 하셨는데 요나는 바다로 갔습니다.

요나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요나는 순종적인 선지자였습니다. 요나는 여로보함 2세 때 이스라엘의 승리를 여러 번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예언의 내용은 모두 승리의 예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승리의 예언을 하는 것이 쉬울까요, 아니면 멸망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 쉬울까요. 성공을 예언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요나의 예언대로 승리하자 당시 사람들이 요나를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그는 이미지가 아주 좋은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 한 예언과는 다른 예언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분리된 머리와 마음

 

“그러나 요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이것이 내가 고향에 있을 때 내가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까? 이래서 내가 서둘러 다시스로 도망간 것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롭고 동정심이 많은 하나님이시고 진노하는 데 더디시고 사랑은 충만하시며 재앙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신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제발 내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1~3절).  요나가 불순종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요나는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많고, 동정심이 많고, 회개하는 자는 언제든지 용서하고, 아무리 악한자라도 용서하기를 기뻐하는 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니느웨로 가서 예언을 하면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용서받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악한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죄의 대가를 받아 죽기를 바랐던 것이 그의 마음입니다. 요나는 머리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정반대였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는 요나와 같은 마음이 없습니까. 다른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아도 한 사람 만큼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악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받는 다면 기뻐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머리와 마음이 분리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를 추적해 그가 타고 있는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그리고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가둬 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요나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쓰면 될 텐데 하나님은 끝까지 요나를 포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해서 자녀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목표이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변화됩니다. 선교에 참여하고, 잃어버린 열방을 향해 기도하는 그 사람부터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고 열방을 구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단 한 번의 불순종도 용납하지 않는 분이었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녀들을 버리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 머리와 가슴이 얼마나 많이 분열되어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열방에 복음을 전파는 것이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이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요나서가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

 

요나는 니느웨로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순종을 배웠습니다. 니느웨에 도착한 그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간절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언을 듣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나의 예언을 누가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니느웨 백성들이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는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결단한 순종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지 않았어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야만 그곳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가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그곳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나를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나처럼 머리와 마음이 분리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악하던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요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선교현장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데 복음을 전한 사역자의 마음에는 미움과 분노, 갈등이 가득한 경우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집 나간 동생을 환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동생을 미워하는 형의 모습입니다. 첫째 아들은  머리로는 아버지의 뜻을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품지 못하고 동생을 미워하는 형처럼 요나도 매우 기분이 상하고 화가나 있습니다.

 

주님 뜻이 기쁘지 않은 요나

 

요나가 몹시 화가 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았지만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작은 것에 쉽게 분노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었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이 교훈을 주시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4절). 하나님의 질문에 요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번째 질문을 하셨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 넝쿨 때문에 화내는 게 옳으냐?’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9절). 이 때 요나는 선교를 마치고 성 동편에 올라가서 앉아있었습니다. 니느웨 성이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넝쿨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요나는 넝쿨로 인해 심히 즐거워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 이상한 모습을 보십시오. 수많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시원하게 해주는 넝쿨하나에 심히 즐거워하고 있는 요나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기뻐하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이로운 한 가지에는 매우 즐거워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분열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쉽게 분노하는 이유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폭풍, 큰 물고기, 넝쿨, 벌레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넝쿨을 벌레가 먹게 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화가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자 그때 하나님이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그 넝쿨 때문에 화를 내는게 옳으냐?”모든 종류의 분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사람에게 분노가 많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분노도 많습니다. 지금 요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전하는 사역자가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지 못하면 삶속에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가꾸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넝쿨도 너는 아꼈다.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오른손과 왼손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12만 명이나 있고 가축도 많이 있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11~12절).  요나서는 질문으로 끝납니다. 요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도 침묵했고, 마지막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서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났다는 것은 우리가 대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던지신 질문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지신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내 육신에 시원함을 주는 무엇인가의 유무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나라와 내 삶을 먼저 구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해야합니다.새해 첫 주일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던진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 질문으로 믿고 답변해야 합니다.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멀리 떨어진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악한 성읍일수록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끼는 영혼들을 우리도 아껴야합니다. 복음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주님이 아끼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수많은 종족과 영혼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음성을 듣고 작은 헌신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마음이 온 열방에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한 저희들이,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