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회복의 때를 고대하는 피조물 - 이재훈 목사

회복의 때를 고대하는 피조물로마서 8장 18~27절이재훈 목사

 

 

 

 

기도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령님의 중보기도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성령님이 탄식하며 우리 안에서 간구하고 계신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의 비결은 단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닮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세 단계의 구원

 

사도 바울은 구원을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원입니다. 사실 구원은 하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세 단계로 나눈 것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선언과 선포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인생을 살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문제와 죄에 속해 있던 우리의 인생은 한순간에 구원으로 덮어졌습니다. 여기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과거의 구원은 칭의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구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현재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구원은 성화라고 말합니다. 현재의 구원을 통해 우리는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미래의 구원입니다. 신학자들은 미래의 구원을 '영화(영광스럽게 되는 것)'라고 표현했습니다. 현재의 구원은 아직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광스럽게 되는 구원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18절).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에 무너지고 쓰러집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미래의 영광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필수요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난입니다. 영광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때 진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광을 추구하지만 이 땅의 영광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영광이든 땅의 영광에는 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땅에서 추구하는 영광이 아닌 고난을 추구하는 각오를 다지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의 고난이 아닌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담대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고난과 아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현재의 고난일 뿐입니다. 영원한 영광에 우리의 문제를 대입해보십시오. 아무리 많은 숫자도 0을 곱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어려운 문제와 고난도 영원이라는 숫자에 곱하면 0이 됩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고대하십시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도 소망 가운데 있으니 이는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19~21절).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피조물까지도 우리가 누릴 영광을 함께 누린다고 쓰여 있습니다. 인간 외의 피조물도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나타난 구원은 인간만의 구원이 아닌 만물의 구원과 회복을 의미합니다.

피조물들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9절에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는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피조물들도 고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조물들은 언제나 부차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에만 회복이 됩니다. 피조물이 영광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 때문이었던 것처럼 회복도 인간으로 인해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렇기 때문에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기다립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가장 먼저 자연만물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자연만물의 질서를 연구하며 만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헛되었습니다. 그것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연만물을 모두 안다고 해서 인생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 솔로몬은 육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삶도 바람과 같았습니다. 그는 유한한 인생 앞에서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영원한 영광이 없으면 모든 것은 허사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1절에는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고 싶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 썩어짐은 벌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썩어짐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생겼습니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2절). 피조물들은 마치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출산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설명하려고 피조물을 언급하면서 장황하게 설명하겠습니까. 그것은 피조물들도 고대하고 있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우리는 고대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간절히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

 

“그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조차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됨,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3절).부활이라는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들에게는 탄식하며 기다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탄식하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 문제에 탄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탄식해야 할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뿐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한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24~25절).우리는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구원입니다. 장차 나타날 얼굴은 소망 가운데 나타납니다. 소망은 미래의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미래로 향할 때 그 믿음은 소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26~27절).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는 연약해서 장차 나타날 영광을 사모하지 못하 때문에 우리를 도우로 오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 안에 거해야만 장차 나타날 영광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연약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기도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성령님이 탄식하며 우리 안에서 간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중보기도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기도 덕분에 우리가 살아갑니다. 

이번 40일 특별새벽기도회는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를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성령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기도가 우리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아닌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을 따라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