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육신과 성령의 내적 갈등 -이재훈 목사

육신과 성령의 내적 갈등로마서 7장 13~25절이재훈 목사

 

 

 

감사하는 인생을 살든지 아니면비참한 인생을 사는지는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그리스도 안에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6과 7장에서는 죄와 율법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래 죄는 인간의 밖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는 우연과 실수가 아니라 그들의 선택에 의한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죄는 선택된 불순종이기 때문에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죄와 율법의 상관관계

 

먼저 죄와 율법의 역할에 대해 살펴봅시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율법이 없었더라면 누구도 죄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의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 이방인들은 자연과 양심을 통해 죄를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라는 기준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 율법에 자연스럽게 저항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 의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입니다. 우리가 모든 법을 지킨다고 해고 하나의 법을 어긴다면 죄인이 됩니다. 타락하는 정도에 상관없이 하나의 율법만 어겨도 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평가하시는 분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나타나게 하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고 율법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죄와 율법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 의미는 율법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주는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과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속에서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육체와 죄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언이며,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육체 가운데 있는 이유는 진실과 진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율법을 통해서 나타나는 동시에 육체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여러분,  육체에 대해서 죽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육체 가운데 살기 때문에 갈등과 고민은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온전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완전히 의롭게 되는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육신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14~15절).

사도 바울은 자연과 육신, 성령에 속한으로 부류를 나눴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에는  육신의 본성을 따라 행하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자’라고 쓰여 있습니다.

육신의 상태에 속한 사람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나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 입니다”(16~17절).

사도 바울은 율법은 악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법에 대해 핑계를 대지만 율법 때문에 죄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은 율법이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는 항상 우리의 의지보다 강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불리한 상태로 살아가야 할 것 입니다.

여러분, 죄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지 마십시오. 죄는 인간의 의지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죄는 무서운 실체입니다. 죄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게 합니다.

 

속사람과 겉 사람의 모습

 

“나는 내 안,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압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18~20절).

죄를 구별할 수 있으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나와 죄를 구분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면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분별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내 지체 안에서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21~23절).우리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습니다. 그것은 속사람과 겉 사람입니다. 속사람은 더 이상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속사람과 겉 사람 중 어떤 것을 진정한 자신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속사람으로서의 나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은 옛사람이 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었지만 아직 육체가 살아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옛사람이 살아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삶

 

여러분, 어떤 모습의 나를 원하십니까. 시편 42편에는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네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낙망하느냐’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낙망하는 나’는 ‘악과 함께 있는 나’를 의미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24~25절).

한순간이라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승리를 외칠 때 속사람이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참한 사람이지만 존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비참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이 문제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속사람이 겉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명령에 순종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옛사람의 명령에 따라 살 것인지 선택하십시오. 우리가 감사하는 인생을 사느냐 비참한 인생을 사느냐는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속사람과 겉 사람의 갈등과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황치연 기자  hcy@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