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을 주노라’
요한복음 13:34~35
21년 전에 제 아내를 처음 봤습니다. 물론 그때는 제 아내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저는 이곳 본당 2층 같은 발코니에 다섯 명의 형제들과 함께 앉아있었는데 어떤 자매가 독창하기 위해 초청받은 것입니다.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동시에 다섯 형제 모두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기억이 납니다. 한 형제는 ‘참 예쁘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형제는 ‘청혼할까? 아니면 이름부터 물어볼까?’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농담으로 ‘그녀는 내 여자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말대로 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자매하고 기회조차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바로 끌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신부가 이렇게 매력이 넘쳐 끌리길 원하십니다. 신부가 걸어 들어오자마자 ‘와우’라는 환호성과 함께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처음 교회 성전에 들어와서 ‘이 교회는 너무 아름답다! 서로 사랑하는 것 좀 봐!’하고 감탄하는 것처럼 처음 보는 순간 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성경구절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남들이 보고도 느낄 수 있도록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제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빠져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저한테 바로 이 구절을 놓고 말씀을 부탁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개인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며 선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저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설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하는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는 한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용서하면서 그 용성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천을 통해 형제를 용서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나가서 예수님을 선포하기만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우리 자체가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일 때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끌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자비를 얻지 못했으니 이제는 자비를 얻은 사람들입니다”(벧전 2:9~10).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즉 제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한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 족속과 아무 상관없는 외인이었지만 이제는 이 사람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나님과 이 덕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교회가 어떤 곳인지 성경말씀으로만 설명하라고 하면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성경 하나로만 설명한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정말로 서로 헌신되는 그런 공동체, 가족과 같은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돌볼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책 한 권만 가지고 무인도에서 수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만 읽고 어느 날 배에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으로만 알던 교회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큰 기대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교회처럼 서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가 궁핍하면 자기 것을 팔아서 도와주는 교회를 볼 수 있을까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그런 모임을 기대하며 빨리 가서 자신도 사랑받고 싶고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보십시오. 교회 건물 안에서 이뤄지는 주일예배에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주일예배에서 모든 사람은 한 방향만 보고 설교를 듣고 집에 갑니다. 그가 말합니다. ‘이것이 교회인가?’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로 꿈꾸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깜짝 놀라야 합니다. 서로 너무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하고 놀라야합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그런 교회를 만들어 내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교회 뒤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집에 갔습니다. 이미 교회 바깥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누구를 사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름다운 신부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인생, 함께 걸어 다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을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모두 교회에서 네 가지 방향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모임 가운데 있는데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들어와서 정말 깜짝놀라는 모임을 만들기 원합니다. 그들이 이 모임에 와서 ‘어떻게 이런 모임이 가능할까?’ ‘어떻게 저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감탄하길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서 이런 모습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시각장애인인 성도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몸도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콩팥이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병원에 가서 투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교회를 담당하는 목사님께서 ‘방금 이 분의 아내가 돌아가셨는데 이 분은 매일 새벽 5시에 투석을 받으러 다니셔야 합니다. 이분을 위해 자원봉사로 섬기실 분이 계십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어떤 키스(Keith)라는 성도가 ‘제가 저분을 매일 병원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매일 그 성도 분을 도웁니다. 그분은 개인적으로 알거나 친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새벽마다 병원에 가서 그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키스는 그 길을 모르고, 시각장애인인 성도는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을 가는 동안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우정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투석을 받는 과정에서 키스는 환자와 의사간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되는 사실은 지금은 콩팥을 이식할 사람이 없어서 이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과 이 환자가 혈액형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바로 ‘제 콩팥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환자는 이미 나이가 든 사람이고 키스는 아직 젊고 아내와 자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런 것이기에 그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만약 나에게 옷 두 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옷이 없다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는 자가 이런 것을 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신부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서로를 형제, 자매로 본다면 자신의 집에 문을 열고 초대해야합니다. 그런 사랑이 이 교회 안에서도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랑은 오직 성령님이 부어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을 향한 사랑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랑이 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데 있습니다.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가장 작은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예배하는 것입니다. 옷이 없는 자에게는 옷을, 집이 없는 자에게 살 곳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교회 안으로 들어왔는데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버림받은 고아들이 이 교회 안에서 입양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직접 낳은 아이들과 입양한 아이들이 함께 뛰놀고 웃는 모습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봤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에베소서 5장에 나오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기를 하라’는 말씀처럼 남편들이 아내를 섬겨주고 따뜻하게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이게 되길 바랍니다. ‘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으로 섬기고 자신의 것을 버려가면서 아내를 섬기는 모습을 보이길 원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가 보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충격적인 광경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 인간 앞에 엎드려서 발을 씻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여라’, ‘남편들아, 너희들이 가정의 가장인 것을 알지만 나는 이 우주 만물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나는 발을 씻기고 있지 않느냐. 너는 너희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모습으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놀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게 보이며, 끌리는 것입니다. 다른 한국인들과 온누리교회 성도와 다르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끌리기 시작하고 세상의 빛, 하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마지막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라”(눅 6:27).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희가 2년여 전, 샌프란시스코에 이사를 한 후에 아내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모든 아이가 차에 있었고 마켓을 갔는데 주차를 하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기다렸던 자리에서 한 차가 빠져나왔고 아내가 그 주차공간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어떤 분이 바람같이 나타나서 쏜살같이 들어왔습니다. 아내는 순간 ‘이거 뭐지?’ 하면서 당황했지만, 그것보다 그 남자가 더 흥분한 상태로 아내에게 욕을 하며 주차를 하고 내렸습니다. 아내는 다른 곳으로 차를 옮겼습니다. 그때 저는 거기 없었습니다. 과연 제가 그 광경을 봤다면 가만히 있을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냐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 마켓에서 기프트 쿠폰하나 샀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에게 ‘당신이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 같은데 이 선물을 잘 쓰세요’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왜 그랬냐고 묻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행했다고 답했습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메모를 적은 기프트 쿠폰을 제 딸이 그 사람 앞 유리에 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차에 놔두려는 순간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아까 주차장에서 당신이 주차하려고 끼어들었던 그 차를 운전했던 당신이 욕한 사람이 제 엄마입니다. 저희 엄마가 당신에게 이 기프트 쿠폰을 전해주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당신, 욕을 정말 잘하십니다’라고 제 딸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제 딸은 아내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아내에게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자꾸 사탄이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이겨냈습니다. 정말 제 아내한테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제 아내가 쿠키를 굽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선을 베풀었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기까지 우리 마음이 너무나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행한 그 악한 일들을 붙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떠맡고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쓴 뿌리와 억울함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있기 때문에 늘 화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명령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려고 우리를 사랑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게 하려고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볍게 모든 짐을 지고 가게 하지 않으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수년 동안 이런 쓴 뿌리들을 지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로부터 받은 상처의 벽돌들, 배신, 거짓말한 리더를 저주하는 벽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그것에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벽돌을 다시 돌려주고 상처 대신 선을 베푸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한국에서는 화가 나면 이것을 누르고 산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말해도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하나님 앞에 내놓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축복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진 무거운 짐입니다. 이것은 밥을 먹었는데 한 번도 소화시키지 않고 운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 여러분은 정말 많이 드셨습니다. 과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끝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먹여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행동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자입니다. 제가 그냥 밤새도록 설교하면 사탄이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승리하길 원합니다. 저는 사탄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무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순간 특별히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어떤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신 후에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그들을 기도할 뿐만 아니라 축복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뒤에서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오늘 밤에 축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방법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라고 구하십니다. 집에 가서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그것을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에게 주십시오. 아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냥 ‘당신을 축복한다’고 말하며 건네주십시오.
성경에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정말 매력 있고 끌림 있는 신부가 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깜짝 놀라길 바랍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