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아…”
20140104
이지선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2000년에 저는 사고를 만났습니다. 학교와 집이 멀어서 오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곤 했었는데, 그날도 그렇게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음주운전을 하시던 분이 사고를 내고 도망을 가다가 저희 차를 들이받았고 그렇게 7중 추돌사고가 났습니다. 여기저기 튕기다가 불이나기 시작했고, 저는 정신을 잃었는데, 먼저 정신을 차린 오빠가 저를 꺼냈을 때는 이미 제 상반신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만난 사고
저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신에 55%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몸의 절반 이상의 피부가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피부 대신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폐에 찬 유독가스를 빼기 위한 튜브를 옆구리에 꽂고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가망이 없는 환자였기 때문에 간호사실 맨 앞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의식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저를 데려가주세요’라고 어리석은 기도를 하곤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제 기도가 아니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중보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일주일만에 산소호흡기를 떼고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산소호흡기를 떼고 병원에서 물을 줬는데, 그 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살면서 그 전까지 물이 그렇게 맛있는줄은 몰랐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는 그 때마다 그 물맛을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시원한 물맛같은, 너무나 사소하고 소소한 일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그 시간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붕대를 감고 있지만, 그것이 감염을 다 막아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침마다 굉장히 강한 진통제를 맞고 소독을 하기 위해 화상치료실에 가곤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고통으로 기억하지 않게 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떠나 푸른 초장으로 옮기시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만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앉아서 제 다리를 봤습니다. 누워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다리를 보니까 살색이라고 불렀던 부분이 없고 생닭에서 보던 빨갛고 흐물흐물한 살과 노란 지방덩어리와 뼈의 일부분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난 살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을 먹이러 온 엄마한테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으니까 우리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있었던 중환자실에서 한달동안 16명이 환자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제가 밤마다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 였는데, 엄마는 ‘다시는 상처를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자’고 하시면서 밥을 제 입에 밀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골짜기에서 마른 뼈에 살을 덮으시고 생기를 넣어 군대를 만드신 것처럼 이 밥이 지선이의 살이 되고 가죽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밥을 안먹겠습니까. 살려고 보니까 아픈 것 참는 것하고 밥 먹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참았습니다.
‘이지선 파이팅’
제가 감사를 배운 것은 병원에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엄마가 하루에 한 가지 감사할 것을 찾자고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를 원망하고 싶고, 사람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하고 있던 그 때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 원망할 것 밖에 없어보였는데, 찾아보니 감사할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걸어서 화장실 간 것, 제 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먹은 것, 살아 있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등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제 입술과 제 마음에 진통제는 결코 줄 수 없었던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 감사를 통해 그 상황마저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예전 사진 옆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만 해도 수술이 잘되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화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후에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들이 면적이 줄어들어서 턱도 내려앉고, 입도 다물 수 없게 되고, 침을 흘리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거울을 볼 용기가 없어서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저는 제가 아니라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습니다. 외계인 같았습니다. 저는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23살 여대생으로 살아가기엔 제 삶이 너무 많이 변했고,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절망이라는 것이 찾아왔습니다. 절망이 가득 차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딱 두 가지가 남았습니다. 하나는 아파트 옥상을 찾아 올라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고민하다 제가 엄마한테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한번은 따져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 가서 불도 못 켜고 맨 앞자리에 엎드려서 기도 아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어떻게 하실건가요? 살려주셨으면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나요?’ 몇 시간을 물었는데 하나님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다음날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남들이 볼까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흘러내리는 침 때문에 수건을 갈아끼워 가면서 제가 함께 했던 성가대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다시는 사람들 앞에 설 수 없는 초라한 제 인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싶지도 않았고, 목사님의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제 곁에 오셨습니다. 저를 안아주시면서 기도하시는데 ‘사랑하는 딸아’로 시작되는 기도였습니다. 저조차도 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저를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제 귀로,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해 저를 위로하시면서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다시 세우겠다. 그리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다.’ 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성경 속의 그분이 살아계신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 끝난 것 같은 제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말에 제가 한 번 더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면서 저는 제 얼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모습마저 인정하고, 안아주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포기를 넘어 희망으로
벌써 4년 전이 되었는데, 제가 마라톤을 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재단에서 마라톤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완주가 아니라 그냥 사진을 좀 찍기 위한 마라톤이었습니다. 당연히 연습도 안했습니다. 8km 걸어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전에 버스를 타고 코스를 보는데, 42.195km라는 거리는 제가 뭘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교통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뛰다가 힘들면 지하철을 탈 생각이었습니다. 뉴욕 마라톤 대회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4만 명의 마라토너들이 모여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양 길가에 나온 시민들이 계속 뛰라고 박수를 쳐 주셨는데 마냥 걷기가 민망해서 좀 뛰기도 하면서 제가 준비했던 8km 지점을 지나고, 절반을 지나고, 30km 지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힘들다고 바리케이트를 밀쳐내고 나가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계속 걸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너무 힘이 드는데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인생을 마라톤과 같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그만둬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센트럴파크에서 ‘이지선 파이팅’이라고 써서 기다리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분의 응원을 받고 나머지를 걸어갔는데 저도 모르게 다리가 쭉쭉 나갔습니다. 저도 인생의 마라톤에서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힘내라고 외쳐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7시간 22분의 기록으로 완주했습니다.
그날 제가 깨달은 것은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마라톤은 계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각자의 마라톤을 주셨습니다. 지금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게 42.195km가 기적이었듯이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죽을 것 같은 고비들을 지나고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포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하나님의 품 안으로 기쁘게 뛰어 들어가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고비도 포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은 별 것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지금 이 자리가 끝이 아니라는 믿음인 것 같습니다. 14년 전에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오늘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매일 만나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