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권리포기와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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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챈

마 26:36~46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내용이 담긴 본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슬퍼하신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제 인생 가운데 괴로웠던 것을 기억해봤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 슬퍼서 울 수도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며 통곡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을 지경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9절에는 예수님께서 아예 얼굴을 땅에 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한 번 마음으로 그려보십시오. 누가는 예수님의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흘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실제로 땀을 핏방울처럼 흘린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고뇌를 겪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괴로워하시면서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핏방울을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정말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진노를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자신이 죄 덩어리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 십자가에 못 박혀서 진노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세 번이나 간청합니다.
이렇게 죽을 고통을 겪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저도 제 다섯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애착을 갖게 됩니다. 제 큰 딸은 17살입니다. 우리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 큰 딸이 이런 내용으로 요청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로서 내 딸 레이첼이 저 밑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장면을 봤다면, 예수님처럼 얼굴을 땅에 파묻힌 모습이었다면 죽을 정도 고통을 받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 땀이 핏방울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제가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세상에 어떤 아빠가 자신의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방법이 정말 없겠냐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짖었음에도 ‘하나님, 아버지 이것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정말 제가 아버지의 진노를 받아야합니까? 정말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이런 식으로 지어야합니까?’라고 고통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아버지, 정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 길을 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정말 이 잔을 지나가게 해주시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들을 보시면서 이 방법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복종과 순종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우리 목숨을 내놓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 3:16).
‘우리가 이것을 통하여 사랑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단지 순종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복종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 대해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제는 이것을 통해 사랑을 알았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사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저는 제 부모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지낸 적이 없습니다. 제 형제들과도 한 번도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형제들 간에는 미움과 증오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확실히 못 한 게 있는데 사랑을 받지 못해서 베풀지도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사랑을 받았다고 성경말씀이 증언해주었습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제가 그것을 깨닫고 있는 한 세상에서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당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사랑은 행동과 더불어 희생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합니다. 이것은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형제들을 향해 이런 감정이 있어야겠지만 행동을 향한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그 사랑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그 사랑이 우리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 5:24).
사실은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입니다. 그것은 옛사람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그 순간, 사랑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을 생각해보면 그 육신이 이미 못 박혔습니다. 그것이 이미 옛사람이 못 박힌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더 이상 저를 목사님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저는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늘 지위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도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결정이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명칭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알려지고 싶습니다. 세상에 어떤 호칭가운데 가장 존귀한 호칭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훨씬 더 뛰어난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 성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보혈에 의해 씻음 받은 자, 그래서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우리는 행동을 전제로 하고 나가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는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명령이 깔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환난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약 1:27).
진짜 신앙은 환난 가운데 있는 과부를 돕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우리가 자원이 있다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역사하길 바랍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사신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기까지 사랑한 사랑을 알기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십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입양은 십자가 앞에서는 초라한 것입니다. 순종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내가 살고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미래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가 저기 계시는 데 그가 모든 것을 채워주실 거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자녀들이여, 우리가 말과 혀러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요일 3:18).
한 마디로 그만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을 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입을 다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사랑은 말하고 떠드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진실과 행함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고전 6: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고전 7:23).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해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이 몸은 내 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과 혀를 하나님께 바쳐야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사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으로 내가 말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말을 많이 합니다. 사도요한은 자녀들아 그만 말하자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엄청 먹고 누렸다면 음식점에 가서 왕창 먹으면 실컷 먹고 배가 불렀을 때 어떠한 행동이 현명한 것입니다. 더 먹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운동하는 것입니다. 방금 먹은 칼로리를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교회는 항상 먹는 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더 먹여달라고 합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한 최선이 아닙니다. 먹은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뚱뚱해지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충분히 말씀을 나눈 거 같습니다. 1년 치를 드신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많이 드셔서 구토증세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우리가 먼저 끌어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통계시를 통해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이상, 무조건 행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