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저녁집회 2 캐릭터 매트릭스

 

 

저녁집회 2

 

캐릭터 매트릭스

/ 로마서 12:1~2 /

어윈 맥머너스 목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변화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밤에 인간이 해야 되는 것과 인간이 감당해야 할 변화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시편 41편에서는 하나의 거룩한 존재로 말미암아 내 심장이 자극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더 고귀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꿈을 꾸게 됩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는 장면을 볼 때 다윗의 희열을 함께 맛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유케 해주신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시편 119편 32절을 보면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심령을 자유케 하셨기 때문에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겠다고 합니다.여기에는 상이한 두 개념이 있습니다. 계명과 자유입니다. 보통 이 두 가지가 대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기자가 말하기를 나는 당신의 계명을 따라 달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내 마음의 심령을 자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가 깨달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 안에 우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우리 안에 형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하지 않고는 크리스천 리더십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롭게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있었을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무만은 만지지 말라고 했습지만 그들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에덴동산이 너무 좁아서 그 나무를 안 볼 수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보니 에덴동산에는 경계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전체가 에덴동산이었을지 모릅니다.그런데 하필이면 왜 하나님께서 접근하지 말라는 그 나무 근처에서 놀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거짓말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기로 한 것들에 진짜 생명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신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을 자유케 하실 때 여러분이 그 명령을 따라 달려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그분의 계명위에 세울 수 있다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형성되면 형성될수록 우리가 더욱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하나의 여정이며 하나의 탐구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탐험입니다. 많은 도전과 장애물이 있습니다. 전투도 있고 승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이런 삶을 살 때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고 개발됩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이 여정은 결국 우리가 세 가지 탐험을 하게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명예를 향한 탐구

 

첫째, 명예를 향한 탐구입니다. 우리 모두가 명예롭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명예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용기를 품은 남자와 여자 될 수 있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입니다.용기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방법은 정직함에서 온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살며 그것을 밖으로 표출할 때,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믿음이 될 때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의 삶의 좌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정직한 행동입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불우한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옳다면 행하는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갈등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되 모험적인 행동은 원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를 향한 탐구는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용기는 정직함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모든 것에는 정직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안과 밖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가게에 가서 바나나를 산다면 그 껍데기 안에 바나나가 있을 거라고 전제하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것에는 정직함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밖을 보면 안에 무엇이 들어있지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밖과 안 사이에 우리가 참여하면 전혀 다른 범죄가 생깁니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우리는 안에 있는 것을 치장하기위해 겉을 아름답게 포장합니다. 우리가 겉치장에 애쓰는 이유는 내면을 변화시킬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명예를 위한 탐구, 그것이 바로 우리를 용기 있는 남자와 여자로 만드는데 이런 탐구는 우리 안에 있는 정직함과 함께 자랍니다.그러나 정직함은 오직 겸손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명예를 위한 탐구는 오직 겸손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겸손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2장에서 모세는 바로 왕 앞에 섰습니다. 바로는 당대의 가장 힘 있는 국가의 왕이었습니다. 모세는 최고의 통치자인 바로 왕 앞에 홀로 서서 ‘나의 백성으로 가게 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한사람이 그 엄청난 제국 앞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모세의 온유함은 온 땅에 가장 성하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겸손 안에 거할 때 무슨 일이 닥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신 바에 여러분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명예를 향한 탐구는 결국 여러분을 이 어두움의 세대 속에서 빛의 사자로 세웁니다.

 

고귀함을 위한 탐구

 

두 번째는 고귀함을 위한 탐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안에 형성되도록 우리에게 고귀함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보다 관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을 보면 도적질하는 사람이 더 이상 도적질 하지 않게 하고 자신의 손으로 보람된 일을 하게 해 그가 궁핍한 자들과 함께 나눌 것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도적질을 금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로 도적질을 그만하고 뭔가 보람 있는 삶을 살도록 해 궁핍한자와 나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고귀함을 위한 탐구는 결국 우리를 관대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물질, 시간, 힘,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은사와 재능을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큰 대가를 치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줬다는 사실을 인식하신 순간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만일 모든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한다면 여러분은 섬기는 것을 택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아주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많은 폭행과 문제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언제나 사랑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관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심령과 영혼이 깨어져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생명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쁨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 자체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서 마치 암흑시대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분노를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의 파편들을 주어서 온전케 하시기까지는, 그분의 사랑으로 치유되고 완전해 지기까지는 우리가 먼저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여 완전함을 회복하려고 합니까?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을 때에만이 우리가 그렇게 갈급해 하는 그 생명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잔치를 벌인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가 식사를 하는데 어떤 여인이 초대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들어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그녀가 죄인임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입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 발 앞에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을 머리로 씻습니다. 그리고 향유 옥합을 깨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붓기 시작합니다. 이는 시몬을 화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때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오천불을 빌린 사람과 오만불을 빌린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다면 둘 중 누가 더 감사해 하겠느냐고 시몬에게 묻습니다. 물론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다 시몬아.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내 발에 입 맞추지 않았지만 그 여인은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닦았고 기름을 부었다. 저 여인은 많은 죄를 탕감 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조금 탕감 받은 사람은 조금밖에 사랑할 수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아마도 세상에서 꽤 괜찮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성장했고 선하게 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네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너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더러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면 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약 시몬이었다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교회를 떠날까요? 계명을 어기면서 1년 동안 열심히 방탕해 질까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죄를 짓어 볼까요? 예수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악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여인은 시몬이 은혜를 느꼈던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은혜와 감격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동을 느낄 때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터져 나옵니다.어렸을 때 제 안에는 굉장히 쓴 감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되는 분노로 인해 차가워졌습니다. 저는 저의 생부를 알지 못합니다. 태어나서 5살이 되기까지 저의 어머니와도 같이 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런 가족의 분열을 통해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정신병원에 갔고 수 년 동안 잔인한 악몽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저는 극단적인 우울증과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저의 가정은 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고칠 수 있습니다. 고귀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뿐 아니라 관대한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 고귀함을 위한 탐구는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여러분의 마음에 쓴 뿌리를 준 사람을 먼저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안는 활동할 수 있는 힘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제 삶은 멋진 이야기입니다.제 아내와 몇몇 친구들과 등산을 할 때였습니다. 그들은 다 앞서 나가고 있었고 저는 뒤쳐져 있었습니다. 산속의 바위들이 있었고 그 바위 틈 속에서 꽃 하나가 햇볕을 쬐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외쳤습니다. 여러분 돌아와서 이 꽃 한번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 꽃을 지나가면서 내기를 했답니다. 아마 어윈이 이 꽃을 보면 틀림없이 우리를 불러서 이 꽃을 보라고 할 것이라고 장담 했다고 합니다. 저는 생명의 여지가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생명을 붙잡고 싶습니다.여러분도 주어진 한 순간 한순간을 풍성히 살 수 있습니다. 이 고귀함을 위한 탐구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칠 수 있습니다. 삶을 바침으로 우리가 거룩하고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이 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멋진 이야기를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재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항상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곳마다 생명이 솟아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미래를 보게 하는 계몽을 위한 탐구

 

셋째 계몽을 위한 탐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빛을 볼뿐만 아니라 빛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나의 형제들아 온갖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을 기쁨으로 여겨라 왜냐하면 너희들은 인내를 통해서 완전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것에서도 결핍을 갖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는 너희 성숙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자란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서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그분께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꾸짖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지혜는 오직 인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고 인내는 오직 성실 신실함을 통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명예를 향한 탐구가 겸손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고귀함을 위한 탐구가 감사에서 오는 것처럼 계몽을 위한 탐구는 신실함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더 큰일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엄청난 바보 같은 실수를 한 다음에 지혜를 갈급해 합니다. 여러분이 계몽을 향한 탐구에서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고 해도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보다도 더 무식하게 죽어선 안 됩니다. 지혜가 있을 때 작은 결정이라도 영원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내립니다. 마치 여러분이 미래의 관점에서 미래에서 현재를 경험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현재에 행하는 그 행위가 미래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농담을 잘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상담을 많이 하진 않습니다. 교인들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보게 합니다. 당신이 만약에 이런 선택을 한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당신이 이 길을 선택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한다면 분명히 이런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훨씬 더 힘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의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겠다고 합니다. 수년이 지난 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목사님이 말한 그대로 일어났다고 말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았더니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겪게 되었고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고 고백하며 저보고 어떻게 알았냐고 묻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혜를 위해서 탐구하며 미래를 현재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빛의 사자다, 나의 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 나는 미래 속에서 현재에 살겠다고 선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탐험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은 아주 위대한 탐험입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품이 여러분 안에 형성될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모험과 장애물,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탐험을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 정리: 최문경pink1969@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