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어노인팅 첫날 저녁집회 딘셔먼 영적전쟁

첫날 저녁집회영적 전쟁(딘 셔만)

 

저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어떤 것인지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종교를 창조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행한다”(요 5:19)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이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의도가 아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름부으심의 한 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행한 일을 행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은 행하십니까? 시편 149장 6절을 보십시오.“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이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37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본 것은 그것입니다. 존영과 양날의 검입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에 가면 찬양과 가르침, 예배와 말씀이 있습니다. 집회나 수양회, 세미나, 수련회 등 어디를 가든 예배와 가르침을 받습니다. 예배와 가르침,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목표입니다.이 시대보다 더 많은 예배와 가르침이 존재하는 때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선조는 성경밖에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여러 다채로운 방법을 통해 성경을 배웁니다. 운전을 하며 성경 테이프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순간까지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경관련서적과 수많은 성경공부 모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입니까? 가르침의 홍수 속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우리는 역사 속 어떤 세대보다 가장 지식 많은 세대입니다. 요즘 초신자들은 백 년 전 목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또한 어느 때보다 예배가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침례교든 성공회든 장로교든지 상관없이 세계 모든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신의 백성 앞에 하나님께서 지금 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름 부으심입니다. 기름 부으심이란 하나님 바로 그것입니다.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임재, 능력, 계시입니다. 그냥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성령의 권능으로 읽을 수 있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편 149장 6절이 말하는 것입니다.오늘날 우리에게 왜 이렇게 많은 말씀을 주셨을까요? 우리 예배 가운데 왜 이런 많은 권능과 임재의 강렬함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사실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 149장 7절은 이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기독교는 십자가에 근거해 출발한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나는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그 분의 고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섬기고 너희를 위해 목숨 바치러 온 것이다. 나는 상한 자를 치유하고 억압되고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고 도우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름 부으심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선교적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열방을 향해 보복을 하고 민족을 향해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우리가 예배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강렬함을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보관함은 우리가 받은 축복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는 능력은 단지 지난 번 설교자보다 더 뛰어난 설교하기 위함이 아니라 열방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위해 죽으시러 오신 것입니다. 좋은 모임은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의 인도함을 받은 예배, 성령의 인도함 받은 말씀을 활용하는 방법은 열방을 향해 보급하는 것입니다. 깊은 흑암에서 고통하는 우리 주변의 열방 민족을 위해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안에 이미 있는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나눠야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어노인팅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집회나 수련회, 부흥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받을 때보다 베풀 때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이 축제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임재해 축복하십니다. 왜냐하면 열방을 향해 보수를 하고 민족을 향해 벌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흑암의 권세 속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149장 8~9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거룩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찌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이 영광이라고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나 몇몇 선교사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열방과 민족이 바로 그들의 왕들을 결박합니다. 모든 곳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예언을 하고 기도드릴 때마다 이 영적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예배와 가르침, 찬양과 양날의 검이 존재하고 행해지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왕들을 사슬로 묶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 안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첫째,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시고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 마귀에게 초점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이면 다른 것들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쟁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것이 전쟁이 됩니다.왜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고 행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야 합니까? 왜 목사님들이 설교하기 전에 주의 종에게 기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까? 우리가 목회자의 교육수준이나 지식을 알려고 교회에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말하기 원해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와 골로새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로 가득하기 원하노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설교할 때나 공부하기 전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지식, 신학적 지식도 사람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사랑이란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도움과 영감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더 배울 때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내 이웃을 섬기도록 어떤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신 이유는 죄의 권세를 파괴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입니다.둘째, 예배를 통해 우리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능력이 나타나 흑암의 권세를 물리칩니다. 시편 8장 2절을 보십시오.“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나이다”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찬양할 때마다 원수와 보수자가 잠잠케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복종할 때마다,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살 때마다 흑암의 권세가 파괴됩니다.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 검으로 말미암아 원수 마귀의 결박에서 자유케 됩니다.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학문이 아니요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살아있고 활동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로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흑암 권세도 뚫고 들어갑니다. 어떠한 우울증, 혼돈, 절망도 뚫고 들어가 치유가 있고 능력이 주어집니다. 할렐루야.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수많은 사람 치유 받는 것 목격했습니다. 성경을 인용할 때 원수마귀는 칼에 찔려 비명을 지릅니다. 성경은 정보가 아닙니다. 성령의 검입니다. 살아있고 좌우에 날선 검으로 침투하고 갈라 쪼개놓습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라

디모데는 사도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주변 사람들의 비방 때문에 거절감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1장 18절에서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가르쳐준 예언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너는 그 예언을 통해 선한 싸움 싸우게 될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예언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행하는 일입니다. 제가 오늘 성령 안에서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모든 말이 예언입니다. 바울은 그 예언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는 디모데에게 자신의 경험으로 하지 말고 네 안의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로 사역을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이 모든 일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에베소서 6장 18절을 보십시오.“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예배와 찬양은 기도의 한 종류입니다. 모든 기도, 모든 예배, 모든 찬양을 성령 안에서 하라고 말합니다. 그냥 기도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은 기도하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 따라, 말을 얼마나 잘하고 많이 하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혜 주시기 원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일을 근거로 하나님의 모든 특권과 특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예배드리고 설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인하여 이미 기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미 다 받아주셨고 이미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일 해도 하나님이 더 여러분을 사랑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행한 일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을 완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매번 성령 안에서 예배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9절을 보십시오.“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바울은 이미 명 설교자였고 신약 대부분을 지은 저술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기도가 성령 안에서 행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말하고 성령 안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첫째, 우리 삶 속의 장애물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 속에 죄가 있고 문제가 산적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러분 안에 흘러들어가는 성령의 흐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장애물이 있으면 성령의 흐름을 느리게 하고 결국 막아버립니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잠잠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왕들을 결박하고 귀인들을 족쇄로 묶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파괴하고 멸망케 하는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입니다.여러분 삶 속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죄책감을 버리기 바랍니다. 십자가로 가져가십시오. 믿지 못하는 의심을 제하십시오. 두려움을 제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을 향한 쓴뿌리, 쓴 상처를 다 제거하길 바랍니다. 치유하십시오. 떠나보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오도록 깨끗한 통로를 닦아놓으십시오.

나를 관통해 흐르는 성령

둘째, 자기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신 모든 일은 그분의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구약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는 모든 것은 그것 자체로 초자연적입니다. 이 세상에 자리 잡은 흑암의 권세는 지적일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악은 어떠한 철학적 관념 아닙니다. 악은 파괴하는 힘이요 결박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예배드린다고 되지 않습니다.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우리 안에 흘려보내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맡길 때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을 관통해 흘러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순종을 통해 성령은 어둠의 세력을 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삶 가운데 빛을 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기름부음’이라 말합니다.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신을 내어맡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기름부음을 받을 것입니다.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름부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도, 주일 설교도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를 통해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권능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를 받고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의 설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 계시를 통해 해야 합니다. 계시가 나에게 임할 때 그 계시가 내게 능력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 안에 큰 능력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권능을 줄 것이고 살아있는 생수 강처럼 우리를 통해 흘러나갈 것입니다. 치유가 일어나고 믿음이 주어집니다. 능력과 힘, 은혜가 주어집니다. 초자연적 평강이 임합니다. 초자연적 기쁨이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기름부으심 속에 사는 것입니다. / 정리: 전성희 기자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