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첫째날 선택강의/트랙B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

강의 : 하스데반 선교사 |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

 

 

하스데반 선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은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라며 성도들에게 도전하고 중국에 대한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전을 함께 나눴다. 이날 강의 후에는 참석자들이 강단에 올라 무릎을 꿇고 참된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눈물로 중보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세상에 복음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믿음에 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영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길 원하시고 계십니다.모든 사람은 범죄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그가 지으신 온전한 사람을 통해서 드러나야 하는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고, 잃어버린바 되었습니다.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잃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도,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십자가의 사건, 부활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누구의 사건입니까. 예수님의 사건입니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사건입니까. 세상을 변하게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변화도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 세상에 속해 세상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죄의 삵은 사망이라는 말처럼 아직도 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예배자의 모습

 

이 같이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사건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이들에게 십자가의 사건, 부활의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의 사건일 뿐이지 자신의 사건은 아닌 것입니다.잃어버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바로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예배자란 또 무엇입니까. 예배자란 하나님의 임재, 곧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사건은 성도들이 참된 예배자가 될 때 비로소 성도들 자신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이런 예배자들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태도, 입술의 말, 생각이 변화된 사람입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자신의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예배 드린다는 말은 경배와찬양이 처음 시작될 당시만 해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삶의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레위기를 보면 삶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잘 나와 있습니다. 레위기는 유대인에게는 제일 먼저 읽혔지만 우리에게는 젤 나중에 읽힌 책입니다.레위기는 거룩하지 않은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때 예배자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한 기록입니다.근친상간을 멈추라. 자녀들을 우상으로 바치지 말라. 수간을 멈추라 등 하나님께서는 삶 가운데 지켜야할 것들을 가르쳐 주심으로 오늘날 삶 자체를 예배로 받으시길 원하시는 마음을 징표하고 있는 것입니다.순전하고 흠이 없는 예배를 받고 싶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부활을 체험한 예배자는 선한 청지기로서 삶이 성화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직분을 빼앗긴 가룟유다와 달리 십자가의 사건이 자신의 사건이 된 성도들에겐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무가 있습니다. 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예배자는 거룩해져야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자의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시간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삶의 예배를 드린다, 사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최종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삶의 예배가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에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담대히 말합니다.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에서 나옵니다.마태복음 16장 24절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자의 모습이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전형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고, 마태는 창에 찔려 죽는 등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십자가의 삶, 순교자의 삶을 살아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27년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남은 평생 순교자의 심정으로 살아갈 것입니다.지난 204년 12월 30일에 있었던 사건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제게 엄청난 깨달음과 결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날 서울을 올라오려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세 대의 자동차가 저를 해하려고 고속도로 상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였습니다. 저는 상경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길로 가라는 음성이었습니다.저는 경부고속도로로 올라오다 중부고속도로로 바꿔 탔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됐습니다. 타고 있던 사람의 몸은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팔과 다리는 떨어져나가고, 내동댕이쳐진 피투성이의 몸통은 잇달아오던 차가 정통으로 짓밟고 지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저는 순간 그 고통의 주체가 바로 제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제 자신을 응시했습니다.“오, 하나님. 저토록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을 왜 살려 주시는 지요. 제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생명 드리는 자로 부르심

 

저는 애초 선교사가 될 맘이 없었습니다. 전 목사처럼 일했고, 신학생처럼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축복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의 충격적인 사건이 있고 나서 순교자의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여호와를 선포라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중국에 대한 비전을 오래 전부터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18년 동안 경배와찬양을 통해 예배의 회복을 도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온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중국으로 이끄시며 제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셨고,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강권과 경험으로 저의 비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명을 담보한 순교자로서의 모습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복음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운 곳에 서기를 원합니다.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번 축제가 끝나면 중국에서 큰 집회가 있겠지만,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생명을 각오할 것을 주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저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입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길 원하는 많은 사역자들이여, 머물지 말고 증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난에 동참하는 예배자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정리 차명권 기자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