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의1 |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담임) (열왕기상 18장 1~46절) 우리가 엎드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약속을 이루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요한은 어느 주일 예배할 때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주의 음성이 들리고 한순간 그는 주의 보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18장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체험을 했던 또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입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하고 있는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 년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땅은 이제 모두가 다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이 장면을 기억하며 훗날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에서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저처럼 쉽게 실망하거나 낙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는 순간 하늘은 창문을 열고 비를 쏟아주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뜻 이루는 방편 하늘 문을 열고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기도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릴 수 있는지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의 모범으로 돌아가 그 대답을 함께 찾고 싶습니다. 첫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 성도들은 지나치게 기복적인 기도를 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기복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동기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내 욕심의 충족을 위해서만 하는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사실만으로 엘리야의 기도가 기복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를 찾아보겠습니다. 18장 1절입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엘리야는 무엇에 근거해서 기도했습니까. 바로 비를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판단하셨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기도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기도에 대한 정말 아름답고 적합한 정의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너무나 기뻤던 적이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36절입니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시온 땅에 돌아와 민족적으로 국가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계십니다. 3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여기서 재미있는 단어는 ‘그래도’입니다. 무너진 것을 건축하고 황폐한 자리에 내 민족을 다시 심겠다고 선포하셨으면 스스로 이루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구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주권 속에서 놀라운 약속을 해 놓으시고 기다리십니다.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엎드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그 순간 그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중요한 약속 가운데는 성령강림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요엘서에 나타난 이 성령의 약속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사모했을까요. 그러나 그 약속이 빨리 실현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 엎드려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120명이 성령이 강림하는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36장을 통해 얻은 기도의 정의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이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늘 문을 여는 기도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첫째는 약속을 붙들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둘째로 겸손한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기도일까요. 엘리야의 모범을 주목하십시오. 엘리야가 땅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절에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중요한 영성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피조물성을 나타내는 기도의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엎드려 통회하고 가슴을 찢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기대하면 하는 기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도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면 이 사람의 기도가 진짜일까요. 엘리야가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황무한 땅을 위해 기도하다가 사환을 보내 기도 응답에 대한 징조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보고였습니다. 기도의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엎드려 진실로 간구할 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이 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환에게 가서 보라고 합니다. 일곱 번씩이나 가보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일곱 번 만에 종이 와서 “선지자님, 손바닥만한 구름이 떴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손바닥만한 구름 하나지만 이것이 희망의 싸인 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아직 비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넷째로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기도한 바를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희망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작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합왕에게 “비가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타로 내려가소서"라고 말합니다. 아직 비가 올 징조가 없는데도 비가 쏟아질 것이니 그냥 내려가지 말고 마차로 내려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믿음이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하늘 문이 열렸을 때 엘리야에게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일반적인 비가 아니라 큰 비가 왔습니다. 기도한 것 이상으로, 구한 것 이상으로 큰 비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도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허락하셨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가 진실로 엎드려 성령을 구한다면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넘치도록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구하기에 앞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성령님을 구하고, 성령님의 임재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성경에는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요한은 어느 주일 예배할 때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주의 음성이 들리고 한순간 그는 주의 보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18장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체험을 했던 또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입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하고 있는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 년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땅은 이제 모두가 다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이 장면을 기억하며 훗날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에서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저처럼 쉽게 실망하거나 낙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는 순간 하늘은 창문을 열고 비를 쏟아주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뜻 이루는 방편 하늘 문을 열고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기도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릴 수 있는지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의 모범으로 돌아가 그 대답을 함께 찾고 싶습니다. 첫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 성도들은 지나치게 기복적인 기도를 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기복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동기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내 욕심의 충족을 위해서만 하는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사실만으로 엘리야의 기도가 기복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를 찾아보겠습니다. 18장 1절입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엘리야는 무엇에 근거해서 기도했습니까. 바로 비를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판단하셨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기도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기도에 대한 정말 아름답고 적합한 정의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너무나 기뻤던 적이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36절입니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시온 땅에 돌아와 민족적으로 국가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계십니다. 3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여기서 재미있는 단어는 ‘그래도’입니다. 무너진 것을 건축하고 황폐한 자리에 내 민족을 다시 심겠다고 선포하셨으면 스스로 이루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구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주권 속에서 놀라운 약속을 해 놓으시고 기다리십니다.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엎드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그 순간 그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중요한 약속 가운데는 성령강림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요엘서에 나타난 이 성령의 약속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사모했을까요. 그러나 그 약속이 빨리 실현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 엎드려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120명이 성령이 강림하는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36장을 통해 얻은 기도의 정의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이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늘 문을 여는 기도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첫째는 약속을 붙들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둘째로 겸손한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기도일까요. 엘리야의 모범을 주목하십시오. 엘리야가 땅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절에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중요한 영성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피조물성을 나타내는 기도의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엎드려 통회하고 가슴을 찢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기대하면 하는 기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도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면 이 사람의 기도가 진짜일까요. 엘리야가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황무한 땅을 위해 기도하다가 사환을 보내 기도 응답에 대한 징조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보고였습니다. 기도의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엎드려 진실로 간구할 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이 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환에게 가서 보라고 합니다. 일곱 번씩이나 가보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일곱 번 만에 종이 와서 “선지자님, 손바닥만한 구름이 떴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손바닥만한 구름 하나지만 이것이 희망의 싸인 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아직 비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넷째로 하늘 문을 여는 기도는 기도한 바를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 속에서 희망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작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합왕에게 “비가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타로 내려가소서"라고 말합니다. 아직 비가 올 징조가 없는데도 비가 쏟아질 것이니 그냥 내려가지 말고 마차로 내려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믿음이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하늘 문이 열렸을 때 엘리야에게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일반적인 비가 아니라 큰 비가 왔습니다. 기도한 것 이상으로, 구한 것 이상으로 큰 비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도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허락하셨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가 진실로 엎드려 성령을 구한다면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넘치도록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구하기에 앞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성령님을 구하고, 성령님의 임재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