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저녁집회 3_ 믿음의 단계

■ 저녁집회 3 믿음의 단계  >>> 필립 얀시 (Campus Life, Christianity 저널리스트)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을 공급해주는 영적인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사람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면서 솟구치듯 올라갈 것이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사 40:31)  존 클리프라는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존은 잘 알려진 침례교 설교가지만 이혼을 했습니다. 침례교는 이혼한 목사에 관한 법이 있었기에 존은 성공회 신부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이사야의 이 말씀으로 설교를 했는데 처음 말씀을 읽었을 때는 이사야가 말씀의 순서를 뒤바꿔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분명한데 이사야는 반대로 독수리처럼 나는 것 다음에는 달린다고 하고 그다음엔 걸어간다고 썼습니다. 어느 날 존의 딸이 백혈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10살 밖에 안 된 소녀였습니다. 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독수리가 날개 짓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곳을 다녔고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그리고 달려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제 딸이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아는 의사들 모두에게 달려갔습니다. 신유의 은사로 알려진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도 달려갔습니다. 어느 날 딸의 침상에 앉았을 때, 의사는 제게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앉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발견한 사실은 기독교인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 쉬워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헌신함으로 선교사의 삶을 사는 분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당신을 신앙의 고차원적인 단계로 부른 것인데 말이죠. 믿음의 세 가지 단계  저는 믿음의 단계를 어린아이의 단계, 어른의 단계, 부모의 단계로 구분합니다. 모든 사람은 아이를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아이를 좋아하십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엄마가 자식을 품듯이 들어 안아 품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어린아이 단계의 믿음에서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셨던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의 특징이 우리에게 경고음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사람들마다 크리스천에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것의 기준이 다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자를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랍비들은 무엇이 율법이고, 무엇이 율법이 아닌지 아직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입니다. 여러분이 관광객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으면 안식일이 되었을 때, 호텔의 고층에서 묵지 말고 저층에 묵으십시오. 주말에는 여러분이 아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다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율법주의가 뭐가 그리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엄격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나름대로 엄격하셨고, 바울도 엄격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주의가 가져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비판하신 것 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작은 것에 묵이면 큰 것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리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백인교회는 행동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는 껌을 씹어도 안 되고, 청바지도 입어도 안 됩니다. 껌을 씹느냐 청바지를 입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성을 결정합니다. 인종차별로 점철된 그 지역, 흑인을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했던 사회에서 이 교회는 껌을 씹느냐, 안 씹느냐와 청바지를 입느냐, 안 입느냐에 따라 신앙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가 가져오는 위험성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제가 한 살일 때 아버지가 뇌성마비에 걸리셨습니다. 아버지는 선교사로 헌신했던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전신마비가 와서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공호흡기를 장착했습니다. 아버지가 선교사로 나가게 될 것을 대비해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보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선교사로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결코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합의하에 아버지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냈습니다. 1주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신앙의 오류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코 어떤 문제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고통으로부터 면제되는 자유이용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단계에 머물러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고, 나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맞추려고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우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특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던 것에 대해 개탄했습니다. 육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우유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바울이 좀 더 건강한 교회를 향해 쓴 편지를 보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에베소교회와 빌립보교회로 보낸 편지가 그렇습니다.  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부모의 마음으로 씁니다. 그 교회의 성도 중 한 명이 도둑질을 했다면 편지에 직접적으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쓸 때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새로운 동기를 담아 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은혜와 풍성함에 감사하며 편지를 씁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보증수표가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예술가이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도,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도 행복하고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부모의 단계로서의 믿음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부모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과실을 맺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요 12:24) 크리스천의 삶의 마지막 단계는 내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원리대로 살아간다면 더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서 많은 것들이 추수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정말로 어려운 복음의 불모지로 갈 것이고 그곳에 가면 너무나 힘들어서 찬양을 하며 은혜를 나누었던 것을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이로 하여금 그저 돌만 옮기게 하시고, 어떤 이는 하여금 땅을 파게 하시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물만 주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옥토에 떨어지면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린이의 단계, 성인의 단계 그리고 부모의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 영적인 지도자이며 리더입니다. 여러분은 각각의 사역 현장으로 돌아가서 이 어린아이의 신앙 단계에 있는 사람을 돕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한 어른으로 장성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서 그들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을 공급해주는 영적인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