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예배선교컨퍼런스 - 권준 목사

성도는 서바이벌 아닌 리바이벌(부흥)하기 위해 존재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다닌다는 것과 하나님을 만난 것은 다릅니다. 여기 와 있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떨기나무와 같이 말라비틀어진 그 인생을 살았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 인생에 불이 붙었습니다. 양치는 목자에서 나라와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 나아갔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나보다 의로운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순간 머리로만 지식적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그의 삶에 대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의 사명에 불이 붙었습니다. 바리세인의 의로 교만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는 바울로 변화되는 터닝 포인트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므로 새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므로 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제 알았던 하나님, 이전에 알았던 하나님 그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이 카운트다운 컨퍼런스를 통해서 새롭게 만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리바이벌(부흥)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천부께서 아시나니 너의 삶의 방식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것을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방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르기 때문에 ‘인생고아’이기 때문에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을 내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되는 그러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천부께서 아시나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꼐서 말씀하시는 것에 삶의 방식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열매를 맛보게 하기 위해 그 기쁨을 우리가 누리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그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도 붙여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십니다.

 

사명이 있는 예배자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어야합니다. 돈 버는 이유도 있어야합니다. 사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해도 사명이 있고 직업에도 사명이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우리의 안에 하나님의 꿈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킹덤 드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바로 ‘킹덤 드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너는 본토 친척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가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그리고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떠나는 것입니다. 내 중심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내가 만들어 놓은 편안함과 울타리, 나 중심 여기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섬겨야지 어떻게 세상에게 교회를 섬기라고 말합니까.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나는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을 축복하고 변화시키고자 파송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는 낯선 곳으로 찾아가지만 손님으로 살지 않고 주인으로서 살아갑니다. 주인으로서 그들을 돌보고, 먹이고, 베풀고, 섬깁니다.

 

선교사의 마인드로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심령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내게 부흥의 역사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부흥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부흥은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부흥을 일으키시는 성령 하나님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터치가 있어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새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떻게 내 지식과 재능으로 새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말재주가 있다고 해서 언변이 뛰어나다고 해서 설교를 잘하겠습니까. 목소리가 좋다고 노래를 잘한다고 찬양을 잘하겠습니까.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새 역사와 부흥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을 때, 하나님의 터치가 임하는 순간,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선교

 

예배는 하나님과의 접속입니다. 하나님과 접속될 때 방전된 인생이 충전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터치를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예배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예배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서 그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고 ‘축복의 통로’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놀라운 주님의 구원의 그 사랑 그 사랑 앞에 회개하는 회개의 눈물이 있는 예배, 그리고 나를 축복의 통로로 새 역사를 쓰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회개의 눈물이 있고, 감사의 눈물이 있는 예배는 축제입니다. 예배의 부흥 없이는 어떤 부흥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언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간절함입니다. 기도할 때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쏟아내야합니다. 영혼을 쏟아내는 대표적인 기도의 예가 한나의 기도가 아닙니까? 한나의 기도는 사람의 귀에 들리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파고드는 간절한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싸움을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투를 벌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투를 벌이는 데에 있어서 여호수아가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전투에서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다. 이것은 기도의 싸움 없이는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해야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무능력이 하나님의 능력과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민주적이라기보다 영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의 용광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은 드문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호렙산은 건조했기 때문에 나무끼리 부딪혀서 불이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벼락을 맞아서 불이 붙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나무가 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나무를 자세히 보고자 다가갔습니다. 떨기나무는 천하디 천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도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가치 있는 것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인생이든지, 어떤 삶을 살았건 간에 하나님의 불이 붙으면 여러분 모두가 변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자격이 없다고 할지라도, 내가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불이 붙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 역사로 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면 어느 나무건 새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불이 붙으면 우리가 서있는 모든 곳이 거룩한 곳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하나님과 만남

 

하나님을 만나야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전환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축복의 통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므로 능력이 생기고, 하나님이 영이 임하므로 그 능력을 가지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환상적인 체험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면 내 삶속의 공동체 안에 언어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입술이 거룩한 입술로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사람을 살리는 언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땅 끝까지 갑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고난과 조롱, 비웃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고 땅끝까지 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 떠납시다. 부흥을 위해 떠납시다.

 

/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