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선교컨퍼런스 - 이상준 목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 이상준 목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시편 115편 1~8절
“오 여호와여, 영광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영광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의 이름에 있습니다. 영광은 주의 인자와 주의 진리에 있습니다.”(1절)
예배자의 첫 번째 자세는 인생의 밑바닥에 놓였다고 고백하는 순간 거기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게 됩니다. 나는 무능하다고 고백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합니다. 하나님께 ‘나는 무지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예배자가 가진 특권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인생의 고난을 체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멀쩡하게 땅을 걸어 다닐 때에는 하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구덩이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늘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내 머리 위입니다.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자에게는 인생의 어두움이 짙을수록 찬란한 빛이 비취는 법입니다. 절망이 깊을수록 소망이 강렬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앙망하는 자 여호와 능력 체험해
오늘날 이 시대가 얼마나 사람의 육체를 강조하고 껍데기만을 강조합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자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에게 절망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구덩이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망은 반드시 소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구덩이에서 하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과 같이 비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일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이미 그 분의 영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분의 영광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러분이 예배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많은 길을 찾아봐도 결국 예배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자가 살아야만 내영혼이 살아납니다. 당신이 예배자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배할 때 비로소 내가 살아납니다. 예배자로 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와 진리, 자비와 진리는 사랑과 공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경험으로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와 진리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하늘의 영광을 사람이 알 수도,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랑과 공의라는 속성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 두 가지 속성이 놀랍도록 통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영광이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존재합니다.
자비와 진리는 ‘사랑과 공의’
인자라는 단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인자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베풉니다. 하지만 그렇게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의 인자함이 지나치면 심리적으로는 구원자 콤플렉스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줄로 믿으십시오. 물론 우리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진리의 잣대로만 살고자 하는 사람을 원칙주의자라고 합니다. 어떤 일에도 타협할 줄 모르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 심판자 콤플렉스에 빠지고 맙니다. 스스로 재판석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비난하고 멸시합니다. 겉으로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바른 인생을 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대개 겉으로는 매너있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비난하고 험담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이중적인 모습에 갈등합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가해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만 잘 살려고 하다가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요.
구원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인생을 사랑 안에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악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악에게 지고 마는 결과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선하게 살려고 한 것인데 왜 이러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일까요. 심판자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은 인생을 바르게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반듯하게 살려고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가 되고 완벽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그 완벽주의가 주 안에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완벽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목을 조이고 다른 사람의 목도 조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희망이 없고 온전함과 완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완벽한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 분 안에 완전한 지혜와 온전한 인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읽으면 그 인생이 온전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자비와 진리,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노력해도 찾을 수 없는 그것을 예배와 진리의 말씀 가운데 깨닫게 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답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지막 정답입니다. 세상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 두 가지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영적 비밀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궁극적인 진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답 가진 사람은 질문이 두렵지 않아
“왜 이방 민족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게 하겠습니까?.”(2절)예배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질문에도 답변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도전에 대한 응전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 한 가운데로 나아가서 세상의 도전에 응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변증의 역사는 이단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정통교리도 신학도 이단의 질문에 답변하다 생겨난 것입니다. 세상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세상이 도전할 때 교회는 본질을 회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하나님의 진리와 정답을 가지고 응전해야 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목이 말라 헐떡거리며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목이 말라 주를 찾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목말라합니다. 내가 언제 나아가서 하나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밤낮으로 내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됐습니다.”(시 42:1~3)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나아가는데도 고난의 자리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고 영혼이 메말라 있고 힘들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의 비난이 비수가 되어 꽂입니다. 매일같이 새벽예배를 나가는데도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일까요. 바로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대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문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질문과 의심에 대해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천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아직 당신들은 세상과는 달라야한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난과 질문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무엇이든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3절)이 말씀은 땅에는 해답이 없지만 하늘의 하나님께는 해답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땅에는 출구가 없고 구덩이에 빠지면 앞뒤좌우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합니다. 하지만 하늘로 출구가 열려져 있습니다. 숲 안에 있을 때는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숲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정답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히 알고 계시고 정확한 해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십시오. 예배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시간의 벼랑 끝에서 영원의 시작점과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시간과 영원이 만나고 땅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때 세상이 보이고 세상이 해석됩니다.
영성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능력
“그러나 그들의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잡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그 목구멍으로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4~7절)우상은 인간의 창조물일 뿐입니다. 인간의 창조물을 경배하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쾌락, 활동, 오락이든지 간에 그것을 경배하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왜 이런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일까요.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입니다.
영원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시간과 공간의 세계만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것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내가 만든 것이 어떻게 내 인생을 이끌어간다는 것입니까.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고 세상 만물을 통치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스스로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영성은 내가 하나님께 반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 눈을 열어서 동공에 빛을 비추어 봅니다. 동공이 빛에 반응을 하면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죽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이 여러분의 인생을 비출 때 여러분이 반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반응하는 속도는 신앙의 연륜이나 성경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당신의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세상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상처럼 될 것이요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8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처럼 될 것이고 우상을 섬기는 자는 우상처럼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이 유혹했던 것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속성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예배의 회복은 선교의 완성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형상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반응하고 우상을 경배하면 하나님의 형상만 망가질 뿐입니다. 적당하게 누리며 살고 적당하게 세속적으로 살지 말고 근본주의자로 사십시오. 영성에 있어서는 여러분 세상을 끌어안는 긍휼과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거룩과 마음의 순결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순결을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의 회복은 곧 선교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우리가 주의 보좌 앞에서 주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주를 예배하게 되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예배가 흘러넘치면 선교가 이루어지고 선교의 마지막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회복은 천국이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보좌 앞에서 모든 민족과 열방 가운데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날이 오게 될 줄을 믿습니다.
/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