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식 강의> 건강한 고통 vs 파괴적인 고통
■ 일반성도
김형근 소장(서울중독심리연구소)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 한꺼번에 분출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졸도하게 되는데 강한 충격을 받으면 기절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오면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
우리 주변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나쁜 사람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착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은 일탈을 말합니다. 일탈은 하지 말아야 할 적정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술, 마약, 섹스가 나쁠까요. 이 세상에 나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나쁘게 사용할 뿐입니다.
기대나 부담같은 것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어지면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에서도 같이 작용합니다.
중독자의 마음에는 내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큽니다. 내 뜻, 내 맘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강렬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좌절이 큰 것입니다. 신의 위치로 이 땅에 사니까 좌절과 절망이 심합니다. 이것이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중독은 심리학적으로는 과대적 자기, 신학적으로는 교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 살려고 하니까 그 고통을 안 느끼려고 합니다. 그래서 중독적 행위와 물질을 선택합니다. 중독적 행위와 물질은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임 중독과 도박 중독을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주면 1시간 한 것 같은데 8시간이 지나가 있습니다. 도박은 밤새해도 잠이 안 옵니다. 몸이 아픈 줄도 모릅니다.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그럽니다. 이런 것들은 현실적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마음이 아프면, 즉 내면의 고통이 오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넌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그래서 한쪽에 빠지려고 합니다. 중독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에게 ‘게임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재밌어서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안 하고 있으면 미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동전의 양면, 중독과 우울증
중독 아래에는 우울증이 있습니다. 중독은 우울한 나, 쓸모없는 나를 가리기 위한 방어입니다. 중독만 붙잡고 늘어지면 절대로 치료되지 않습니다. 왜곡된 심령을 바꿔주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내면의 고통은 육신의 고통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의 핵심은 죄책감과 무력감입니다 왜 스스로 쓸모없다는 비판과 비난의 소리를 하게 될까요. 부모가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따뜻한 표정을 보여줄 때 내가 엄마를 기쁘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스스로 사회에 뜻 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칭찬은 안 해주고 비난만 하고 기쁘게 쳐다봐주지도 않는 행동이 반복되면 아이는 스스로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구나’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경험은 뼛속까지 들어갑니다.
건강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중독이라는 씨앗이 떨어져도 중독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 감각을 마비시킬 만한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나 상담사가 아이에게 있어 판사나 검사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판사나 검사는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변호사가 되어야 합니다. 변호사는 그 입장에 서서 이야기해 줍니다. 중독자가 왜 중독자가 될까요. 누구하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항상 부족한 상태입니다. 부족한 상태를 만족할 수 있을 때 범사에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을 만족해야 합니다. 만약 부족함을 결핍으로 느끼고 만족을 계속 좇으려고 하면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중독은 내 마음에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강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내서 내면의 목소리를 바꿔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당신은 귀한 사람이야’ 중독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바꾸려고 말하게 되면 떠나갑니다. 아무리 거울을 보고 ‘나는 귀한 사람이야’라고 암시해도 안 됩니다.
중독의 치료법 ‘사랑’
방법은 ‘경험’입니다. 재 경험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재 경험은 어떻게 시켜줍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중독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고통 중에 들어갔고 그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독에서 회복시키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엄마의 방식이 아닌 자녀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십시오. 성경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을 대주라(마 5:39).” 혹시 이렇게 사실 수 있는 분 있으십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성경적으로 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상담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동반의존증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렇게 산다면 자기학대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않은 고통을 일부러 겪는 것이죠. 이 말씀의 의미는 누가 너를 공격하고 비난하거든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보복하지 말고 선하게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여러분의 말을 잘 들어서 여러분이 좋아서 잘해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말을 안 들어도 들어주고 인내해주고 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중독자는 계속 좌절하고 넘어집니다. 그럴때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중독자 옆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사랑’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맡긴 상태에서 옆에만 서 있으십시오. 그러면 그 상태에서 서서히 사랑이 들어오게 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