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인도자, 하나님”
로봇다리 세진이
다른 사람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로봇다리 세진이’라는 별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칭입니다. 운동선수이자 장애인인 저는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해외 시합과 시험 날짜가 겹쳐서 시험을 놓치기도 했고, 체육시험을 봤는데 축구 드리블을 못한다고 0점을 맞기도 해서, 검정고시를 택하고 교복을 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저런 ‘평범함’조차 가지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부터 제게 주어진 환경에 눈을 감고 목표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과정은 4개월 만에 졸업했고, 고등학교 과정은 3개월 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자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계급장 떼고 공평하게 맞서서 대학을 가라’고 말씀하셔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일반수시전형으로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에 만15세에 최연소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학기 6과목 중에 4과목 A+받으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소개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입양하셨습니다. 제 가족은 장미란 선수같이 힘 좋고 든든하게 생긴 누나와 다른 사람들이 저를 쳐다만 봐도 시비를 거는 쌈닭인 엄마가 계십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집에 와서 시끌벅적 지내는 동생들이 있습니다. 누나가 매형하고 결혼하는 조건 중 하나가 저를 업고 목욕탕에 갔다 오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매형이 콩깍지가 꼈는지 업고 갔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매형에게 절대로 나를 땅 바닥에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매형이 탕에서도 저를 안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아서 민망한 나머지 내려달라고 했는데 누나가 절대 내려놓지 말라고 했다고 끝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예뻐해 주는 매형도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는 누나가 이사를 갔는데 엄마랑 싸우면 언제든지 누나 집에 와서 편히 쉬라고 제 방도 꾸며놨습니다.
눈물과 땀으로 보낸 재활치료 기간
제가 걸어서 이곳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어야 했습니다. 처음 엄마가 저를 낳으시고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선생님보고 우리 아이, 한 번 걸어보려고 하는데 한 번 봐주라고 말했더니 의사선생님이 이 아이는 못 걷는다고, 뱃속에 있을 때 몰랐냐고 되물으시면서 혹시 돈 많으면 좋은 휠체어 하나 사 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엄마는 집에 오는 길에 가장 비싸고 예쁜 신발을 하나 사고, ‘세진아, 엄마가 너 이 신발 신고 반드시 걸어 다니게 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매트를 깔아놓고 매일 넘어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일어나면 넘어지고 또 일어나면 넘어뜨리고 이렇게 피눈물 나는 재활운동이 6개월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재활운동을 하는 동안 잘 넘어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엄마는 저에게 걷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혹여 못 일어날 때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엄마는 4살 밖에 안 된 저에게 이 모든 것을 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내 삶의 인도자,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
처음 걸음마를 내디딘 것은 하나님 덕분입니다. 친구들은 제가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이 피노키오로 만든 거라고, 나는 사람이 아니고 피노키오라고 놀렸습니다. 그때 제 꿈이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울었습니다. 어느 날, 울고 있는 눈앞에 불빛이 보여서 그 불빛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걸음마였습니다.
또 한 번은 첫 수영대회에 나갔는데 50m도 완주하지 못했을 때라 ‘하나님, 완주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물에 뛰어들었는데 상어가 쫓아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헤엄을 쳤습니다. 50m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걷는 연습을 할 때마다 제 꿈에 나타나셔서 제 오른손에 나팔을 쥐어 주시면서 ‘세진아, 언제나 힘들면 나팔을 불어. 내가 달려갈 게’라고 하시며 꿈에 나타셔서 위로해주셨습니다.
‘수영’, 내 인생의 꿈과 목표
재활운동으로 가장 무리 없고 부상이 없던 종목이 수영이었기 때문에 수영을 했지만 물이 라면 질색했을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이런 저를 물에 던지셨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서 수영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 게 배웠던 수영이 지금은 꿈과 목표를 가져다준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수영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로움입니다. 두 다리의 힘을 주고 지탱하며 걷는 것과는 달리, 물에 몸을 띄워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팔 한 번만 저으면 갈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이 금붕어가 마치 어항 속에서 나가서 바다로 헤엄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8월 10일에는 통영바다에서 5km를 완주하는 원영이라는 종목에 200여 명 정도 되는 일반 수영선수 및 엘리트 수영선수와 함께 시합을 했었는데 5등 안에 들었습니다. 그 당시 날이 너무 더워서 해파리가 무척 많았는데도 해파리를 몸에 칭칭 감고 도전했습니다. 이렇게 해파리까지 물리면서 도전했던 이유는 시합장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분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셔서 그분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완주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
오는 9월 17일에는 미국 뉴욕으로 10km 원영종목에 도전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통영바다 5km 시합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2016년에는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일반 선수들이 참가하는 브라질 올림픽에 나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장애인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공평하게 맞서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할 것입니다. 저의 최종 꿈은 IOC위원입니다. 물론 돈도 많아야 되고 공부도 잘해야 되고 능력도 좋아야 되지만 가장 순수한 큰 이유는 ‘태극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해외시합을 나가서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를 땄는데 태극기가 안 올라가고 심지어 애국가도 안 나왔습니다. 엄마가 쫓아가서 물어봤더니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메달을 딸 줄 몰랐기 때문에 준비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시상식을 할 때 울고 있는 모습을 엄마가 보시고 사회자 마이크를 뺏어서 스케치북에 태극기를 그리고 제 등 뒤에서 애국가를 불러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코리아 김세진’이 해외시합에 나간다고 하면 늘 태극기가 걸려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내일은 거울이 내일에 비추는 오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내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더라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나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세진 형제
“상상하지 못할 꿈을 꾼다면, 상상하지 못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온누리교회에 이렇게 서게 될 줄 꿈꾸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저희가 꿈꾸지 않은 것조차도 알아서 만들어주시고 이런 큰 영광스러운 자리에 저희를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안 해요. 못해요. 싫어요.” 이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꿔주기 위해서,“너는 병신이야. 너는 재수 없어. 너는 못 할 거야”라는 말과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 아이야. 너는 예쁘고 가능하고 네가 못 할 것은 없어. 그러나 네가 상상하지 못할 꿈을 꾼다면 너는 상상하지 못할 노력을 해야 할 거야”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키워왔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보다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 김세진 어머니
작성자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