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식 강의> 사역자의 중독 이해와 치유
■ 목회자/사역자
이관직 목사(총신대 신대원 교수)
중독이 있다는 건 그 밑에 욕구가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 욕구가 너무 강하고 왜곡될 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중독자들이 갈등하는 이슈는 ‘이 길은 위험하지 않아, 나는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어’ 등의 방어기제를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마지막에는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행동이 ‘중독’이라는 것입니다.
중독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쾌락을 보장합니다. 이 쾌락은 굉장히 잠정적입니다. 우리에게 오래가지 않는 그 쾌락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고통을 경감시킵니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 고통을 경감시키는데 중독현상이 나름대로 효과가 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죄는 지으면 잠정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잠정적인 것을 알면서도 배가 고프면 먹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방법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구정물인줄 알면서도 먹습니다.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역자의 경우에는 초자아라는 기능이 과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자신을 깎아내리게 됩니다. ‘이래도 사역자 할 수 있나, 성도들 앞에 설 수 있나’ 하고 고민합니다. 사역자로서의 긍지,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자위 문제로 신음하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한 번 시작한 후로 강박적으로 시작되니까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힘들어 했습니다. 자위도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시작하면 끊기 어렵습니다. 민감한 사람일수록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합니다.
중독의 보편성
중독과 죄는 동일하다고 해도 될 만큼 그 역동성이 닮아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중독은 인식하지 못해도 가까이 있습니다. 사역자들조차도 이 시련에 자유로운 분들이 적습니다.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독은 어떠한 사건이 아닌 과정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서서히 들어가고 적응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져있다는 것을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적, 심리적으로 100%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중독은 암세포와 같아서 활동적이냐, 비활동적이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 생활할 때는 중독에 애착하는 자세가 없습니다. 그런데 갈등이 생기고 불안하면 중독 욕구가 생깁니다.
목회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넘어지게 되면 뒤에 있는 성도들은 같이 넘어갑니다. 마귀가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부분이 성의 욕구입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자신을 성적인 존재로 안봅니다. 성도들도 목회자를 남성이 아닌 중성과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도 성적인 존재입니다. 성적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 자체를 부인하게 되면 어려워집니다. 이 부분은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예배 끝나고 집무실로 바로 들어가 버립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실족할까봐 입니다. 그 정도로 실족할 것 같으면 목회하면 안 됩니다. 그 부분에 취약하다보니 두려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일종의 위험한 비즈니스입니다. 상담사도 위험한 유혹을 받습니다. 전이도 있고 역전이라는 현상이 있어서 내담자가 좋게 느껴지고 내담자도 상담자가 좋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위험하다고 상담하지 않으면 상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인식하고 어떻게 나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독의 정의
중독은 특정한 행동이 자신이나 주위에 폐해를 초래해서 이를 조절하려 하지만 통제력을 잃고 반복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중독에 더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입니다.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활발히 보급된 게 10년이 채 안 됐습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중독이 우리 안방까지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청년들, 노인들, 예수 믿는 사람 모두가 손쉽게 포르노를 볼 수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도 마음이 울적하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포르노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은 봉사하고 와서 주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제일 기분이 꿀꿀하고 에너지가 다운된다고 합니다. 사역자들이 가장 기분이 안 좋고 힘든 날이 주일 밤과 월요일입니다.
중독의 특징은 압도적입니다. 또한 욕구가 한번이 아닌 반복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독은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자아의 힘보다 중독이 세기 때문에 자아를 무너뜨립니다. 중독은 통제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중독의 예방
중독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독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지옥의 영원한 심판에 대해 조금 더 실제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권세를 받았음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중독의 치유는 대부분 조금씩 옵니다. 몸으로 적응하고 심리적으로 천천히 적응해야 합니다. 중독도 상실의 과정이기 때문에 슬픕니다. ‘하나님, 조금만 더 죄를 지을게요, 몇 분만 더 볼게요’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중독의 예방책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인식하십시오. 중독을 단기적이기 보다 장기적으로 인식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자족하십시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십시오. 삶의 에너지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십시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