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순교의 땅 ‘나가사키’ 러브소나타로 ‘리바이벌’ 꿈꾼다

▲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 위에 마련된 십자가 처형대를 향해 달려가는 순교자들(나가이타카시 기념관소장) 지금까지 나가사키는 ‘잃어버린 땅’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 했다.  1549년 8월 예수회 자비에르 신부를 통해 복음이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이후 극심한 순교와 박해를 겪으며 나가사키에서 기독교는 고통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러브소나타의 10번 째 개최도시며,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 나가사키가 오는 4~5일 열리는 러브소나타를 전기로 ‘키리스탄(크리스천)의 도시’로 부흥했던 옛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고통의 상징된 나가사키 기독교 올 초부터 러브소나타 준비를 위해 나가사키를 뛰어다닌 온누리 교역자들은 이전 어느 개최지보다 무기력한 나가사키 기독교의 현 주소를 발견하고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인구 45만 명의 나가사키시에 교회가 22개 밖에 없다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교회들 가운데 니키교단에 속하는 7개 교회들이 러브소나타 개최를 위한 연합 제의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유는 일그러진 신학 때문이었다. 7개 교회들은 “러브소나타와 같은 전도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교인들을 잘 목회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신학”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기독교는 이처럼 내부적으로 갇혀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나가사키 시민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심하게 굴절되어 있다. 가장 큰 연례행사 중 하나인 마쯔리(‘축제’라는 뜻)만 보더라도 시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나가사키의 마쯔리는 ‘쿤치 마쯔리’로 일본 3대 마쯔리 가운데 하나다. 놀라운 사실은 쿤치 마쯔리 때 사람들이 십자가를 질식시키듯 밀봉해 비밀스럽게 가둔 뒤 미신 의식인 퍼레이드를 펼친다는 것. 이정호 목사(전 러브소나타 총괄)는 이를 “교회가 퍼져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영적 이지매”라며 어려움에 처한 나가사키 교회의 현실을 전했다.  순교의 영광 깃든 ‘거룩한 땅’ ▲ 기둥에 묶여 화형 당하는 순교자 가족(일본 26성인 기념관) 1549년 복음의 문이 열린 후 나가사키는 오오무라 영주가 세례를 받고, 불교 사찰이 호우쇼우지 교회가 되는 등 크리스천 인구가 6만 명 이상인 부흥의 시대를 맞았지만 1587년 6월 19일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 포교를 금하고 선교사의 추방을 명한다’는 ‘키리스탄 금제의 정서’를 발표한 이후 참혹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이어졌다. 1597년 2월 5일 26명이 나가사키의 ‘골고다 언덕’이라고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하리츠케형(십자가에 매달아 창으로 찔러 죽이는 일본의 극형)을 당했다. 외국인 선교사 6명과 일본인 20명이 이 때 순교했으며, 이 가운데는 14살 토마스 고자키와 13세 안토니오 그리고 12세 루도비코 아바라키 등 세 명의 소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유체는 80일간 십자가에 달린 채 방치되었다. 이로부터 25년 후 1622년 9월 10일에는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들 25명이 기둥에 묶인 채 니시자카 언덕에서 히아부리형(장작불에 천천히 그을려 죽이는 화형)으로 순교했고, 이들을 숨겨 준 31명이 목이 잘려 순교했다. 순교자 중에는 유아세례를 받은 네 살짜리 어린 아이도 있었다. 1657년에는 406명이 참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유해는 부활할 것이 염려 돼 머리와 몸체가 분리돼 매장됐다. 이후 후미에 등 검색이 강화되어 기독교 유물과 묘석 등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지역에서 기독교인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250여 년간의 탄압을 극복하며 생명력을 이어갔고, 금교령 해제 이후 1865년 오오우라 천주당이 세워지는 등 새로운 복음의 세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 시련이 또다시 찾아왔다. 1945년 8월 9일 미국 폭격기가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한 원폭으로 당시 우라카미 천주당에서 모여 기도하고 있던 크리스천 8천 명이 사망한 것. 이처럼 나가사키는 순교의 영광이 깃든 ‘거룩한 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믿는다는 이유로 크리스천들이 당한 시련의 역사는 나가사키 시민들이 기독교를 저주의 상징으로 여기게 하는 빌미가 되었다.  다시 부르는 부흥의 노래…러브소나타 ▲ 외국인 6명과 일본인 20명이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것을 기념해 만든 26성인기념관. 키가 작아지는 부분은 12세~14세 순교자들. 나가사키는 이제 오는 4일 시작하는 러브소나타를 계기로 새로운 부흥을 꿈꾸고 있다. 토모노우 야스시 목사(나가사키 뱁티스트교회)는 “나가사키는 큰 아픔을 경험한 곳이기에 하나님께서 더욱 많은 축복을 주시고 사랑을 밝히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유노하라 목사(나가사키 인터네셔널교회)는 “온누리 성도들의 나가사키를 향한 간절하고 헌신적인 사랑이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면서 “이번 러브소나타를 통해 나가사키가 일본 전체를 변화시키는 부흥의 선두주자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이러한 부흥에 대한 기대는 점차 번져 뱁티스트교회 성도 167명이 777명을 목표로 각자 불신자 5명씩을 러브소나타에 데려 오기로 결단하는 등 나가사키 교회 성도들이 깨어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현재 나가사키현 전체에서 46개 교회가 협력해 1506명이 등록한 상태다.  나가사키를 밟는 온누리 성도들은 450여 년 전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 땅을 처음 밟은 자비에르 신부가 시마츠가의 주지승인 닌지츠를 만나서 한 대답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당시 자비에르는 “한 푼의 이익이 없는데도 일본인의 영혼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 먼 길을 왔단 말이오?”라는 주지승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과 희생을 바칠 가치가 있다.” 김여호수아 목사(러브소나타 총괄)도 지난달 21일 나가사키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 밀가루까지 엘리야에게 다 쏟아 부은 사르밧 과부와 같은 마음으로 나가사키 땅을 향합시다.”/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