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의 아픔’ 교회로 열매 맺어
● 선교지에서 온 편지-요르단 교회 개척 이야기 ●
요르단에서 하루는 옆집에 살던 자키 목사가 몸이 아픈 이라크인 가정에 심방을 가자고 제안했다. 아무런 기대 없이 간 그 이라크인 집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2003년 바그다드에서 지낼 때 자주 만났던 피라스 집사님과 2004년 초 바스라에 정탐을 갔다가 교제했던 이라크 바스라 장로교회의 장로님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둘은 형제지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장로님의 사모님은 암 투병 중이었다. 이라크에서 치료가 어려워 병원을 찾아 요르단을 방문한 것이었다. 심방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피라스 집사님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교회가 없으니 가정예배나 성경공부를 해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부담을 갖고 돌아온 우리는 한 달간 자키 목사와 새벽기도를 하며 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사명을 깨닫고 2006년 8월 15일 첫 예배를 드렸다. 눈물로 가정예배 시작 가정 교회로 첫 예배를 드리기 바로 며칠 전, 임신 4개월째이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유산을 하고 말았다. 죽은 태아를 받아 느보산에 묻으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은 중동 가운데 잉태되었으나 태어나지 못하고 사라진 교회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중동 땅 가운데 건강한 교회들이 많이 태어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첫 예배에는 자키 목사 가정과 우리 가정, 그리고 이라크인 두 가정이 모여서 함께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나누며 조촐하게 드렸다. 가정 예배를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 비밀경찰이 자키 목사를 호출했다. 교회 시작 후 두 번째 시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돕는 손길로 무사히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여러 기도 응답들을 경험하게 하셨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사모님이 기도의 응답으로 나음을 입었고,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분이 무사히 풀려나서 요르단으로 입국해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교회는 불과 몇 달 만에 30명 이상이 모이게 되어 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부흥과 시련 모슬렘들의 임대거절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 가든 스트릿교회는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1년만인 2007년 8월 15일 정식으로 개척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주일예배 중에 과격 모슬렘이 교회 문에 토마토와 계란을 던지는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이라크인 가정들이 난민지위를 획득해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50여 명 모이던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위기도 있었다. 작년 말에는 임대된 교회를 모두 폐쇄시키겠다는 요르단 정부의 지침으로 인해 가슴 조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아직도 가든스트릿교회는 영적 공격을 심하게 받고 있다. 우리 가정이 안식년으로 귀국한 후에도 동료 선교사님들이 자키 목사를 도와 교회를 섬기고 있다.비록 지금은 가든 스트릿교회가 작고 약해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에 요르단과 이라크, 그리고 중동의 많은 영혼들을 살려내는 구원의 방주 역할을 능히 감당할 것이라 믿는다./ 여호수아 선교사(가든스트릿교회 개척, 현재 안식년)
요르단에서 하루는 옆집에 살던 자키 목사가 몸이 아픈 이라크인 가정에 심방을 가자고 제안했다. 아무런 기대 없이 간 그 이라크인 집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2003년 바그다드에서 지낼 때 자주 만났던 피라스 집사님과 2004년 초 바스라에 정탐을 갔다가 교제했던 이라크 바스라 장로교회의 장로님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둘은 형제지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장로님의 사모님은 암 투병 중이었다. 이라크에서 치료가 어려워 병원을 찾아 요르단을 방문한 것이었다. 심방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피라스 집사님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교회가 없으니 가정예배나 성경공부를 해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부담을 갖고 돌아온 우리는 한 달간 자키 목사와 새벽기도를 하며 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사명을 깨닫고 2006년 8월 15일 첫 예배를 드렸다. 눈물로 가정예배 시작 가정 교회로 첫 예배를 드리기 바로 며칠 전, 임신 4개월째이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유산을 하고 말았다. 죽은 태아를 받아 느보산에 묻으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은 중동 가운데 잉태되었으나 태어나지 못하고 사라진 교회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중동 땅 가운데 건강한 교회들이 많이 태어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첫 예배에는 자키 목사 가정과 우리 가정, 그리고 이라크인 두 가정이 모여서 함께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나누며 조촐하게 드렸다. 가정 예배를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 비밀경찰이 자키 목사를 호출했다. 교회 시작 후 두 번째 시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돕는 손길로 무사히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여러 기도 응답들을 경험하게 하셨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사모님이 기도의 응답으로 나음을 입었고,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분이 무사히 풀려나서 요르단으로 입국해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교회는 불과 몇 달 만에 30명 이상이 모이게 되어 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부흥과 시련 모슬렘들의 임대거절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 가든 스트릿교회는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1년만인 2007년 8월 15일 정식으로 개척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주일예배 중에 과격 모슬렘이 교회 문에 토마토와 계란을 던지는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이라크인 가정들이 난민지위를 획득해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50여 명 모이던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위기도 있었다. 작년 말에는 임대된 교회를 모두 폐쇄시키겠다는 요르단 정부의 지침으로 인해 가슴 조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아직도 가든스트릿교회는 영적 공격을 심하게 받고 있다. 우리 가정이 안식년으로 귀국한 후에도 동료 선교사님들이 자키 목사를 도와 교회를 섬기고 있다.비록 지금은 가든 스트릿교회가 작고 약해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에 요르단과 이라크, 그리고 중동의 많은 영혼들을 살려내는 구원의 방주 역할을 능히 감당할 것이라 믿는다./ 여호수아 선교사(가든스트릿교회 개척, 현재 안식년)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