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인천WEB공동체 / 충청도 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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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크신 사랑 깨닫게 된 아웃리치

 

8월 17일(금)부터 19일(주일)까지 떠난 충북증평 아웃리치에서 교사팀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처음 교사팀으로 배정을 받고 나서 설렘도 있었지만 ‘내가 과연 어린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잘 전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아웃리치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공과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움을 교사로 세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바꿔주셨다. 계속해서 공과공부를 하며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웃리치를 떠났다.

 

사랑이 넘쳤던 기도회

 

첫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열심히 전한 후에 둘째 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기도회를 했다. 교사로써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줘야 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여태까지 기도하면서 느껴본 적이 없던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손을 대자마자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또,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직 어리지만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느꼈다. 정말 사랑이 넘쳐흐르는 기도회였다. 사실 기도회가 오전 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나만의 걱정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좋고 나쁜 시간은 없었다. 하나님의 고차원적인 사랑 앞에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다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무엇보다 나의 사명에 대한 확실한 응답을 받았다. 사명에 대한 확실한 응답을 받고난 후 지난 세월동안 겪었던 상처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내가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15년 이상 마약중독자셨다. 그렇기에 아버지께서는 여러 번 교도소에 들어가셔야 했고, 어머니 혼자서 나와 어린 동생을 키우셔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렸을 적에 난 아버지가 늘 그리워했다. 그런 아버지가 여러 번의 수감생활을 하시다가 2001년 10월에 마지막으로 교도소에서 출소를 하신 후 원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던 어머니의 전도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우리 가정이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옛날 아버지와 같았던 분들을 위해 재활사업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같았던 분들을 위해 하나님을 전하러 전국 교도소에 강의를 하러 다니신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른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내가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방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방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서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으셨다는 사실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나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신 이렇게 큰 하나님의 사랑을 나와 같은 가정에서 자란 상처가 많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이 땅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 가정으로부터의 사랑, 누구에게든지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단 1초라도 너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고, 우리 함께 그 분의 사랑을 느끼자고.

 

/ 신주용 형제(인천 WEB공동체)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