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신앙의 선배를 기리며-예수처럼 살다간 ‘손양원 목사’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사업 시작

손양원

손양원 목사(1902~1950)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사업이 4월 24일부터 시작된다. 완공은 9월 말 예정이다. 손양원 목사 기념관 건립본부는 손양원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이번 사업에 한국교회의 기도와 관심, 후원을 요청했다.
손양원 목사가 누구인가? 이 땅에서 예수처럼 살다간 사람이다. 온누리교회 성도들도 손양원 목사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들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렀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고,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그의 삶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28일 일제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 향년 48세. 여러 차례 피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목자가 양 떼를 두고 어딜 가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삶에서 고난을 빼놓을 수 없었다. 여순반란사건 당시 두 아들을 잃었다. 딸의 증언에 따르면 죽은 아들들의 교복을 붙잡고 눈물 흘리던 손 목사의 모습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손 목사는 앞장서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 구명운동을 벌였다. 심지어 그를 양자로 삼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그에게 사람들은 예수의 심장을 가졌다고 했다.

 

‘나환자의 아버지’

손 목사의 사랑실천은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여수 애양원은 그의 터전이었다. 밤낮없이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병이 옮을까봐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한센병 환자들을 제 자식처럼 돌봤다. 한센병 환자들의 환부에 침을 바르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의 끔찍한 한센병 환자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한센병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었다. 전염성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가족들에게도 버려졌다. 그들을 손 목사는 버리지 않았다. 예수님이 보내신 목자가 되었다. 실제로 손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순교할 때까지 날마다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있었다. ‘나환자의 아버지’라고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의 원자탄

그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1977년 개봉한 영화 ‘사랑의 원자탄’ 때문이다. 손 목사의 일대기를 스크린에서 본 사람들은 그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렀다. 이후 연극, 도서에 이어 오페라 무대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공중파에서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는 넌크리스천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손 목사의 일대기를 보고 감동받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는 손양원 목사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예수께서 교회 세우러 오신 거 아니에요. 나를 위해 죽으려고 오셨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나는 죽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신앙의 기본인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렇게 산 사람 아니요?”

손양원목사(왼쪽)가 1939년 7월 애양원에 부임했을때 찍은 사진

손양원목사(왼쪽)가 1939년 7월 애양원에 부임했을때 찍은 사진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