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시모노세키에서 만난 사람들(한국과 일본)

 

한국

한국 국기

 

“내 사랑 일본”
봉사자들이 들려준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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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소나타 집회에 사용된 화관을 여러 달 동안 만든 류석인 권사는 시모노세키 러브소나타에 다른 곳보다 기도를 두 배 더하고 왔다고 한다. 일본은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류 권사가 일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류 권사의 일본 사랑이야기가 궁금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을 맞았어요. 그때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당시 학교에서 모내기를 했는데 한 아이의 다리에 거머리가 붙었어요.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이 일본인이었는데 거머리를 떼어 주기는커녕 한국인을 비하하는 욕을 했거든요.”
그때 그 기억으로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07년. 온누리교회가 러브소나타를 집회를 시작했다. 오키나와였다. 그때 류 권사도 함께했다.
“우리 교회가 일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러브소나타를 생각하면 류 권사의 마음에 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화관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러브소나타에 계속 참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어야 한다.”
시모노세키 러브소나타 참가를 앞두고 회개가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박혀있던 일본인들에 대한 미움은 봉사하는 마음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기도를 두 배했다. 봉사도 더 열심히 했다. 일본인들을 귀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시모노세키가 아베 총리의 고향인 만큼 아베 총리도, 일본의 모든 정치인들도 러브소나타에서 씌어주는 화관을 쓰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봉사했다.
일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성도는 류 권사뿐만이 아니다. 일본을 사랑해서 아름다운 손길을 헌신한 성도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류혜원 자매(여호수아공동체)는 일본을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비전을 이어받아 러브소나타에 참석했다.
“일본에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많다는 것을 확신해요.”
그녀의 할아버지는 암 투병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투병 중에 하나님께 받은 비전이 바로 일본선교다. 할아버지는 생을 마감하셨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그 비전을 이어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러브소나타 봉사자로 참석하기로 했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그녀 혼자 오게 되었다.
그녀의 바람은 하나다. 러브소나타를 통해 예수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일본 사랑이 끝이 없다. 일본을 향한 기도도 계속하고 있다.
김인성 형제(Point5공동체)는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일본인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봉사자로 헌신했다. 그동안 일본을 위해 중보기도하지 않았던 모습을 회개하고 있다고 했다. 시모노세키 러브소나타에 참가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마음도 선물 받았다고 한다.
“일본은 놀러오는 곳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러 오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재훈 목사의 초청으로 러브소나타에 처음 참석한 변창욱 목사(서울 장로신학대학교)는 러브소나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러브소나타는 문화뿐만 아니라 외교적 사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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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국기

“천국을 향해 행진”
러브소나타는 평양대부흥

리키마루 목사
시모노세키 러브소나타 실행위원장 리키마루 츠구오 목사(키타큐슈시온교회)는 러브소나타 집회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시모노세키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러브소나타를 준비하는 내내 그랬다.
리키마루 목사가 러브소나타를 그토록 기대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리키마루 목사의 아버지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1907년 평양대부흥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당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그의 가족들은 후쿠시마로 대피했다. 조선과 평양을 지나 유럽으로 갈 계획이었다. 우연히 평양 대동강 일본인교회에서 개최한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밤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리키마루 목사가 태어나자 그의 아버지는 매일 밤 평양대부흥 이야기를 해주었다.
“천사들이 천국을 향해 행진하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성경을 들고 찬송을 부르며 교회로 빨려 들어갔다고 한다.
리키마루 목사는 시모노세키에서 러브소나타가 열린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아버지가 들려줬던 평양대부흥이 떠올랐다고 했다.
시모노세키 집회에는 37명의 일본인 봉사자들도 함께 했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좋아하는 후지무라 레이코 성도(시모노세키그리스도교회)는 일본인을 사랑하는 한국인을 사랑해서 봉사자로 헌신했다. 이번 집회를 통해 많은 일본인들이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담아왔다.
야마구치 시에서 온 마츠다 씨는 목사인 친구를 따라 러브소나타에 오게 됐다. 그의 고백이 진솔했다.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심수봉을 좋아해서 러브소나타에 왔다는 세노 하츠미 씨는 이번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모노세키 러브소나타는 그 어느 때보다 넓은 범위의 지역들이 협력했다. 키타큐슈를 포함해서 후쿠오카 현과 야마구치 현이 러브소나타를 준비했다. 궐기기도회도 세 번 진행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80여 교회가 협력했다. 교류가 없었던 목회자들이 하나 되어 기도로 준비했다. 러브소나타를 마친 지금 교류회를 만들 예정이다. 러브소나타가 만들어준 기적이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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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