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대한민국 기독교, 그 찬란한 역사를 만나다_대구

 

‘여호와 이레의 땅’, 제2의 예루살렘 대구
대구기독교 발상지,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여기는 대구 서문시장.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옛 이름은 대구장이다. 평양장, 강경장과 더불어 조선 3대 장터로 불릴 정도로 큰 시장이다.
서문시장 맞은편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동산기독병원)이 있다. 동산의료원을 지나 고딕양식 첨탑이 보이는 곳으로 향하면 1900년대 초기에 지은 양옥건물 세 채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이다. 구한말 대구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의 주택이 있던 곳으로, 대구 기독교 발상지가 된 곳이다.
오늘의 기독교 유적 탐방지는 바로 이곳 대구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이다.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에 있는 스윗즈주택. 뒤로 보이는 고딕 첨탑 교회는 현 대구제일교회다. 대구의 첫 기독교회다.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에 있는 스윗즈주택. 뒤로 보이는 고딕 첨탑 교회는 현 대구제일교회다. 대구의 첫 기독교회다.

 

대구지역 기독교의 시초

 

대구 지역 선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담당했다. 1891년부터 부산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미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배위량)가 대구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893년 4월이다. 당시 대구는 경상감영이 있던 행정중심지이자 인구밀집지역이었다. 대구, 상주, 안동, 영천, 경주 등을 둘러보며 경상도 순회전도를 하던 베어드 선교사의 눈에 대구가 들어왔다. 결국 1896년 4월 베어드선교사는 부산에서 대구로 선교거점을 옮겼다. 이때 구입한 한옥 네 채가 영남선교의 중심지가 된다.
대구 선교의 문을 베어드가 열었다면, 기틀을 잡은 이는 아담스(James E. Adams, 한국명 안의와) 목사다. 그는 베어드 선교사의 처남이다. 베어드가 대구로 부임한지 얼마 안 돼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아담스 목사가 후임으로 오게 되었다.
1897년 11부터 아담스는 본격적으로 대구선교를 담당하게 된다. 아담스 목사는 1898년 한옥 네 동을 교회당으로 만들어 남문안교회(대구제일교회 구 예배당)를 설립했다. 대구 최초의 기독교 성전이었다.
아담스를 시작으로 1897년 의료선교사 존슨, 1899년 브루엔, 1901년 바렛 선교사가 합류해 북장로교 대구 경북선교를 이어갔다.
아담스는 교회(대구제일교회)와 학교(대남소학교)를 시작했고, 의료선교사 존슨(Woodbridge O. Johnson, 한국명 장인차)은 병원(제중원)을 열었다. 제중원은 영남지역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으로 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전신이다.

 

제2의 예루살렘, 청라언덕

 

미 선교사들은 남문안 인근의 동산 언덕을 매입했다. 이곳에 선교사 주택과 병원(제중원), 학교를 지었다. 대구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거점으로 거듭났다. 이 언덕이 청라언덕이다.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란 뜻으로, 이 언덕에 세워진 선교사들의 붉은 벽돌 사택을 푸른 담쟁이가 덮고 있는 곳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렀다.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챔니스주택 세 동이 각각 선교박물관, 역사박물관, 의료박물관으로 전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 설립된 교회, 학교, 병원을 중심으로 대구 지역 기독교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브루엔 목사는 당시 대구의 읍성을 바라보며 “다윗의 망대가 서 있는 예루살렘”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구 기독교 유적의 성지라고 할 수 있겠다.
청라언덕에는 선교사 주택 세 채뿐만 아니라, 사과나무 자손목, 은혜정원(선교사 묘지) 등도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윗즈주택 앞에 있는 사과나무 자손목의 시초는 존슨 선교사가 들여온 세 개 품종 72그루다. 사택 뜰에 심어 키운 사과나무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했는데, 이것이 대구를 사과 주산지로 만든 계기가 됐다.
은혜정원은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가족들의 묘비가 있는 곳이다. 제일교회 설립자 아담스 목사의 부인 넬리 딕 아담스를 비롯해 열두 개의 묘석이 있다.
챔니스주택 옆에 가곡 ‘동무생각’ 가사를 적은 기념비도 재미있다. 동무생각은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이 계성학당 학창시절, 신명학교 여학생을 흠모했던 이야기를 듣고 이은상이 가사를 붙인 노래다. 노랫말에 나오는 배경이 청라언덕이고, 백합화는 그가 흠모했던 여학생이라고 한다. 음악시간에 불러보던 기억을 되짚어보며 노래불러보는 것도 괜찮다.
청라언덕과 대구제일교회 사이에 좁은 계단길이 있다. 대구 사람들이 ‘90계단길’이라고 부르는 이 길은 3.1운동 만세시위의 진원지다. 당시 3.1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통과했던 좁은 돌계단길이다.
세 개의 주택 중 블레어주택은 꼭 가보길 추천한다. 교육·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전시관은 특히 대구 3.1운동 자료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구시민들이 어떻게 독립을 외쳤는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2층 전시실 입구에 걸린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함과 기독교적 양심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새 운명을 개척할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그러므로 원수를 용서하되 잊지는 말지어다.”
대구3.1운동길을 따라 내려가니 계산성당이 보였다. 성당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면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임종 때까지 시작(詩作)에 몰두했던 고택이 나온다. 마지막 목적지였다.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시인이다.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깔려진 보도블록을 따라 시를 읊조리며 걸어가 보는 것도 좋다.
대구. 그곳에 가면 옆학교 여학생을 흠모하던 청년의 순수함이 있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시인도 있다. 3.1독립만세운동을 외치던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머나먼 이국땅에 온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의 얼이 남아 있다.
“우리가 선 땅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이레의 땅”이라고 외친 선교사들의 가르침, 그곳에서 피어난 민족의식 정신을 되새겨보자.

대구 3.1운동 길. 대구제일교회와 선교사주택 사이에 있다.

대구 3.1운동 길. 대구제일교회와 선교사주택 사이에 있다.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고택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대구 근대路의 여행

 

대구 시내에는 위에서 돌아본 기독교 유적지 외에 다양한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을 둘러보는 코스도 있으니 참고하자. ‘대구 근대路의 여행’으로 총 5가지 코스가 있다.
-1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 코스로 경상감영공원을 시작, 대구근대역사관, 향촌문화관, 달성토성(공원)으로 이어진다. 3.25km, 탐방소요시간 2시간30분이다.
-2코스는 근대문화골목 코스로 동산선교사주택,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구 제일교회가 주 코스다. 1.64km, 탐방소요시간 2시간이다.
-3코스는 패션한방길 코스다. 교동귀금속거리, 남성로(약령시), 서문시장으로 향한다. 2.65km, 탐방소요시간 2시간이다.
-4코스는 삼덕봉산문화길 코스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김광석 길(방천시장), 대구향교로 이어진다.4.95km, 탐방소요시간 2시간50분이다.
-5코스는 남산100년향수길 코스다. 반월당을 시작,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유스티노신학교, 성모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 주 코스다. 2.12km, 탐방소요시간 1시간40분이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