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나 살겠다고 교회를 버리고 갈 순 없다” – 안길선 목사

안길선 목사

신앙의 선배를 만나다

 

신사참배 반대하고, 신앙의 절개 지킨 안길선 목사(1891~1950)

 

“이곳에는 아직 피난 가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주일강단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길선 목사는 6.25 한국전쟁에서 죽임당한 순교자 중 한 명이다. 목회자 40여 명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끌려간 것이 안길선 목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의 제자들은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한국교회에 더 큰 기여를 했을 것이라며 몹시 슬퍼했다.

 

죽는 날까지 민족복음화 위해 헌신

 

안길선 목사는 1891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우리 민족을 구원할 길은 복음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서는 주기철, 송창근, 손양원 목사 등 한국교회의 기라성 같은 이들과 만났다. 그들과 함께 죽는 날까지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것이 신사참배 문제였다. 안길선 목사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 졸업을 앞두고 퇴학당했다. 할 수 없이 이명직 목사가 운영하던 서울신대의 전신인 경성신학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가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 안수를 받는 데까지 무려 10여 년이 걸렸다.

함북 성진 행정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 안 목사는 명천교회, 응기교회, 조양천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사역하다 1942년 북간도 용정시의 동산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안 목사는 동산교회에서도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다. 그 이유로 교회에서도 쫓겨났다. 직장도, 재정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직해졌다. 만주 지역 교회를 돌며 신사참배 거부집회도 열었다.

 

하나의 열매이자 밀알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을 맞이했다. 안길선 목사는 해방과 동시에 아들 안철호를 남한으로 내려 보냈다. 자신은 청진시에 남아 사역하다가 1948년 남한으로 내려왔다.

1950년 6월 27일 38선이 무너졌다. 인민군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주민들이 피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안 목사의 가족들도 피난을 가자고 했지만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교회를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갈 순 없다. 나는 교회를 지킬 테니 너희 먼저 떠나라.”

인민군은 서울을 휘젓고 다니며 유명한 목회자들을 체포 하러 다녔다. 안 목사는 기도하던 중에 인민군에게 끌려가게 됐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올해는 안길선 목사가 순교한지 65주년 되는 해다. 자신의 생계와는 상관없이 강단 있게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사역했던 안길선 목사. 그의 삶과 죽음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좋은 본을 보인 하나의 아름다운 열매이자 밀알이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정지은